흐르고 싶은 ‘물결 맴돌아 세차며 맑고 환했던’ 여강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 여주 여강길 1코스 (옛나루터길, 여주시외버스터미널-도리마을회관) kjdaily.com

2015년 05월 14일(목) 20:07

단현마을 앞 강변길. 여주읍 단현리 부라우마을과 남한강 건너편 강천면 가야리를 연결하던 부라우나루터가 있었던 그곳엔 이제 300년생 느티나무만 남아 무상한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꽃피는 봄날, 나는 여주로 간다. 여강길을 걷기 위해서다. 여주는 예로부터 질 좋은 쌀의 산지로 유명하다. 조선왕조의 궁중에서 사용되는 그릇 등을 생산했던 사옹원의 분원이 있어 도자기로도 이름난 곳이다. 여주에서 생산되는 이런 물품들은 주로 남한강을 운항하던 배편을 이용해 서울로 실어 날랐는데, 이포나루와 조포나루가 그에 맞춰 발달한 포구들이다.
여강은 남한강이 여주 땅을 지날 때 부르는 이름이다. 여강은 고려시대부터 이규보, 이색을 비롯한 많은 시인묵객들이 머물렀고 나루터 12군데, 정자 10여 곳이 자리할 정도로 경관이 수려한 곳이었다. 요강길은 역사와 문화가 오롯이 서려있는 여강을 따라 걷는 길이다.

여강길 네 개 코스 중 오늘은 1코스, 옛나루터길을 따라 걸으려한다. 영월루로 오르다가 누각 바로 아래에 있는 삼층석탑 2기를 만난다. 여주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삼층석탑은 여주하리삼층석탑(보물 제92호)과 여주창리삼층석탑(보물 제91호)으로, 고려시대 중기에 만들어진 석탑이다.

일자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언덕 위에 영월루가 우뚝 서 있다. 영월루는 남한강과 여주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위치한 여주의 대표적인 누정이다. 영월루 앞에 서니 앞으로 흐르는 여강과 여주시내뿐만 아니라 여강 건너편으로 신륵사도 바라보인다.

강변길을 걷기 위해 영월루가 있는 언덕을 내려온다. 강변길을 걷다가 뒤돌아보면 여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영월루의 모습이 근엄하다. 달을 맞이하는 누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영월루에 올라 여강에 비취는 달빛을 감상하면 환상적일 것 같다.

강 건너에는 천년고찰 신륵사가 둥지를 틀고 있다. 신륵사는 강가에 가람을 배치한 우리나라 유일의 절이다. 지금은 일주문이 새로 나있어 육로로 들어갈 수 있으나, 옛날에는 배로 진입해야 신륵사로 들어갈 수 있었다. 신륵사 앞 강변에는 조선시대 4대 나루의 하나인 조포나루가 있었다.

강변둔치에는 유원지가 조성되어 황포돛대선착장도 있고, 잔디밭도 조성되어 있다. 자전거도로 안쪽으로는 금은모래강변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금은모래강변공원에는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와 수련 등 여러 습지식물들이 서식하는 생태연못, 독특한 테마파크가 조성되어 있다.

강 건너에 둥지를 튼 천년고찰 신륵사. 신륵사는 강가에 가람을 배치한 우리나라 유일의 절이다. 지금은 일주문이 새로 나있어 육로로 들어갈 수 있으나, 옛날에는 배로 진입해야 신륵사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강천보 쪽으로 걷는데, 강 건너에 산처럼 쌓여 있는 모래 산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곱고 부드러운 여강의 모래를 파내어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것이다. 드디어 강천보가 보이기 시작하고, 강천보 아래쪽에 한강문화관이 들어서 있다. 유유하게 흘러가야할 강물은 고여 있고, 자연스럽게 형성된 강줄기의 유현함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단현마을길을 지나자 강변옛길이 이어진다. 옛길로 들어서자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강변에 외롭게 서 있다. 부라우나루터가 있었던 곳이다. 부라우나루는 여주읍 단현리 부라우마을과 남한강 건너편 강천면 가야리를 연결하던 나루터였다.

인근의 능현리는 명성황후의 생가가 있는 여흥 민씨의 집성촌이다. 주로 건너편 강천면 주민들이 여주장을 가기 위해 부라우나루를 건넜고, 이쪽의 단현리 부근 주민들은 남한강 건너 강천면에서 땔나무 채취를 하기 위해 나루를 이용했다고 한다.

부라우나루터를 지나 강변숲길을 걷는다. 숲길을 걷다보면 논길이 나타나고, 논길을 지나면 다시 숲길이 나타나곤 한다. 숲길 아래로는 푸른 강물이 출렁인다. 봄기운을 타고 연둣빛 새잎이 돋아나고, 땅에서는 푸릇푸릇 새 생명이 움터온다.

우만리나루터에 도착한다. 300년생 느티나무만이 이곳이 옛 우만리나루터라는 사실을 알려줄 뿐 나루터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우만리나루는 여주읍 우만리에서 남한강 건너편의 강천면 가야리를 연결했던 나루이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마을주민 한분을 만났다.

영월루 바로 아래에 자리한 삼층석탑 2기. 여주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삼층석탑은 여주하리삼층석탑(보물 제92호)과 여주창리삼층석탑(보물 제91호)으로, 고려시대 중기에 만들어진 석탑이다.

“옛날에는 모래가 정말 좋았어요. 오죽했으면 금은모래라고 했겠어요.”

“물이 맑아 모래 위에서 놀고 있는 고기가 다 보였지요. 다슬기도 많았구요. 물이 적을 때는 걸어서 넘어 다니기도 했어요.”

“4대강 사업 이후에는 어떤가요?”

“겉으로 볼 때는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아도 속은 다 썩었어요. 강 다 버렸지요.”

강변의 둔덕 같은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걷고 있으면 새들이 노래를 불러주고, 나무 사이로 강바람이 살며시 다가와 봄기운을 전한다. 강 가운데 있는 강천섬도 바라다 보인다. 강천섬은 본래 늪이었다. 4대강 사업 이전만 해도 강의 수위가 낮아지면 다리 없이도 사람과 야생동물들이 오가던 자연 습지였다. ‘바위늪구비’라 불리던 이곳에 땅을 돋아 17만여 평 크기의 섬으로 만들고 다리를 놓아 공원화했다.

참나무 고목과 은행나무 한 그루가 강변을 지키고 있는 흔암리나루터에 도착한다. 과거 흔암리나루에서는 떼배가 묵어가고 짐배가 정박했다. 사공들이 묵거나 목을 축였던 주막도 2곳이 있었다고 한다. 흔바위나루는 일제강점기 말부터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1940년대 이후 흔바위나루는 여주장으로 가기 위한 교통수단 정도로만 이용됐다.

여주시 점동면 흔암리 흔바위마을의 남한강 언저리에 해발 123m의 낮은 산이 남북으로 뻗어 있는데, 이 산의 경사진 곳에서 청동기시대의 많은 집터가 나왔다. 흔암리 선사유적지에서는 화덕자리와 토기 안에 탄화된 쌀을 비롯해 조, 수수, 보리, 콩 등이 출토돼 이때부터 농경시대가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흔암리를 지나면 길은 아홉사리과거길로 접어든다. 아홉사리과거길은 흔암리와 도리를 연결해주는 고갯길로 ‘아홉 번 굽이치는 길’라는 뜻이다. 이 고개는 조선시대 과거를 보러 경상도와 충청도에서 여주를 거쳐 서울로 올라가던 길이다.

숲길로 이루어진 아홉사리과거길을 빠져나오니 다시 남한강 제방길이다. 남한강변 산자락에 둥지를 튼 도리마을이 소박하고 정답다. 도리마을에서 강변을 따라 한 굽이만 돌아가면 남한강 본류와 섬강, 청미천이 만나는 세물머리(삼합리)다. 남한강을 여강이라 부르는 시발점이 바로 삼합리다. 삼합리는 물길만 만나는 게 아니고,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과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등 삼도가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문인 서거정은 여강에 대하여 “물결이 맴돌아 세차며 맑고 환하여 사랑할 만하다”고 했다. 그 아름다웠던 강이 지금은 흐르지 못해 아프다.



여행쪽지

▶여강길은 남한강이 여주 땅을 지날 때 이름인, 여강과 함께 걷는 길로 4개 코스, 57㎞에 이른다.
▶여강길 1코스는 여주종합터미널-영월루-금빛모래공원-강천보-부라우나루터-우만리나루터-흔암리나루터-도리마을회관까지 15.3㎞로, 5시간 정도 걸린다.
▶여주에서는 여주쌀로 지은 쌀밥정식이 유명하다. 여러 가지 반찬을 곁들인 쌀밥정식을 하는 쌀밥집은 여주시내에 많이 있고, 1인분에 1만5천원 정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