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기념관에서 가족을 생각하다 문/화/난/장 이 현 아동문학가 kjdaily.com

2015년 05월 21일(목) 20:07

휴일을 이용해 찾아 간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기념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건 동그란 모양으로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백조자리, 독수리자리 등 별자리가 그려져 있는 돔 천장 아래 각각의 책상에 앉아 학문에 열중하고 있는 다산 선생과 제자들의 모형이었다. 1762년 경기도 광주군 마현에서 태어나 4세에 이미 천자문을 익혔고, 7세에 한시를 지었으며, 10세 이전에 이미 자작시를 모아 ‘삼미집(三眉集)’을 편찬했던 다산 선생. 다리가 없어 강을 건너기 어렵던 시절, 정조임금이 아버지(사도세자) 묘소에 참배하러 한강을 건너야 할 때마다 불편함을 겪자, 수많은 배들을 나란히 엮어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준 배로 만든 배다리의 모형과 설계도. 백성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작은 힘으로도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수 있는 거중기를 만들어 성을 쌓는데 이용했으며, 500여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 등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인 다산 선생의 삶의 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파르르 새가 날아 뜰 앞 매화에 앉네/ 매화 향기 진하여 홀연히 찾아왔네/ 여기에 둥지 틀어 너의 집 삼으렴/ 만발한 꽃인지라 먹을 것도 많단다.”



매화와 새 그림과 함께 시가 적혀있는 다홍치마 앞에선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랑하는 남편을 멀고 먼 강진으로 유배 보내고, 18년이나 되는 길고 긴 유배생활 동안에 홀로 자식들을 키우며 눈물을 삼켰을 다산 선생의 부인 홍씨. 누에치기를 좋아하는 자신에게 시도 지어줬던 자상한 남편을 그리워하다 시집올 때 입고 왔던 여섯 폭 다홍치마에 그리움의 마음을 담아 다산 선생에게 보냈던 홍씨의 마음은 어땠을까. 부인 홍씨가 보내온, 이제는 세월이 흘러 붉은 빛이 바랜 여섯 폭 다홍치마를 받아든 다산 선생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부부의 추억이 스며있는 여섯 폭의 치마를 두 폭씩 잘라 두 아들에게는 교훈의 글을 써주고 외동딸에게 건네 줄 치마폭엔 파르르 날아 뜰 앞 매화에 앉은 새처럼, 파르르 날아 올 것만 같은 딸을 기다리며 시를 적었을 아버지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며 애태웠을 가족들의 마음이 절절히 전해지는 것 같아, ‘매조도’ 앞에 한참을 서서 가슴을 저미다 말고 문득 웃음이 나왔다.



‘괜찮아요. 한 달에 한번 씩 만나니까 좋아요. 남편도 자식도 함께 사는 것보다는, 남처럼 떨어져 살면서 가끔씩 만나는 게 더 좋다고 하잖아요. 간섭할 것도 없고, 신경 쓸 일도 없고’



어떤 이의 말처럼…, 그런 걸까?

기념관을 나와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으로 향하는 숲길을 걸으면서도 생각이 끝나지 않았다. 어린이날에 어버이날에 부부의 날까지. 기념일도 많은 가정의 달 오월. 나이를 먹고 또 먹으며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가족에 대한 의미 또한 더해지는 것 같다. 시시 때때로 필요할 때마다 말없이 챙겨주시던 부모님 밑에서 살아갈 때의 가족은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 가족이었다. 뭐든지 해결해주고 칭찬해주며 감싸주는 가족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가족들을 섬기며 챙겨야 하다 보니 생각만으로도 힘이 되며 위안이 되는 가족만은 아닌 것 같다. 상처는 친밀할수록 커간다는 말처럼 이제는 가족이 때론 아픔이 되고 때론 상처도 되는 것 같다. 가족뿐 만이 아니다. 가까이 지내는 사이일수록 무심코 던지는 한 마디의 모난 말에 가슴이 에인다. 그래서 생각한다. 보다 더 행복한 오월이 되기 위해선, 내가 만든 의(義)의 기준에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맞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 사람은 모두 다 제각각. 70억도 넘은 수많은 사람 중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나 한명 뿐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