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서 인생의 지혜를 배우다 해와인문기획 시네필로 ‘의자가 되는 법’과 사물 kjdaily.com

2015년 06월 17일(수) 20:18

시네필로는 철학적 지점에서 영화를, 영화적 지점에서 철학을 말하고 묻는 해와문화예술공간의 인문기획으로 격주 수요일 퇴근길 운림동 숙실마을 해와 소극장에서 해와자유대학 지식강좌의 하나로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이용당할 때, 흔하게는 상대방이 사무적·기계적인 태도로 대할 때, 마음과 인격을 지닌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이 때 느껴지는 불쾌함의 진원은 내가 단순히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다시 말해 아무래도 상관없는 물건과 같은 것으로 취급 당했다는 지점에 정확히 수렴한다.

루카치(G. Lukacs)는 자본주의 사회가 성립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이 상품교환의 형태로 변화됐고, 이를 통해 사람들은 바깥 세계나 사회,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이익을 가져다 줄 ‘물건’이나 거래의 ‘객체’, 기회 계산을 통한 ‘자원’으로만 간주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인생은 성공을 위한 경쟁이다’는 강령이 삶의 지혜가 된 오늘날 ‘우리’라는 낱말은 너와 나를 묶어 지칭하기 위한 추상적 기호가 됐다. 너와 나는 우위를 다투는 경쟁자일 뿐 마음을 나누고 함께 뜻을 모으는 진정한 의미의 ‘우리’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의자가 되는 법’의 손경화 감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영화를 만들게 됐다.

그는 버려지지 않으려 애쓰는 일에 피로를 느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간 가치 있다 믿었던 사회적 잣대들이 진정한 삶의 기준이 아니라는 사실에 혼란을 느껴 방황하던 그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 바로 의자라는 사물이었다. 의자는 가장 축소된 개인적 공간이라는 맥락에서 개인의 권리를 의미할 수 있으며, 생김새와 놓인 위치에 따라 시대 상황이나 사회 계급에 대한 의미를 풍부하게 표현한다.

하지만 ‘의자가 되는 법’이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사회정치적 지평이 아니다. 감독은 어떤 장소에 놓이든, 누가 앉건, 심지어 버려진다 하더라도 자기 위치에서 묵묵히 자기소임을 다하는 의자라는 존재가 보여주는 삶의 태도에 매력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이 영화는 의자가 제작되고 쓰이고 버려지는 여러 양상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의자를 대하는 방식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내레이션이나 자막 등을 사용한 부연 설명 없이 오로지 영상언어에 의존한 화법을 통해 영화는 거칠지만 순수하게 의자의 다층적 생을 비춘다. 재개발단지 거리를 뒹구는 의자,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의자가 여러 검증 절차를 거치는 과정, 작은 디테일을 결정하는 일에 토론을 거듭하는 의자 장인들, 버려진 의자를 모티프로 작업하는 사진가, 졸업 후 경쟁 사회로 진출하는 일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하는 의자 디자인 수업의 학생들, 골목어귀에 의자를 놓고 휴식과 대화를 즐기는 할머니, 버려진 의자의 골조를 떼어 내는 고물상 등 ‘의자가 되는 법’에서는 의자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공명한다.

특히 영화는 버려진 의자가 새 생명을 갖게 되는 과정을 사려 깊게 좇는다. 카메라의 시선에 자주 노출되는 주택가에 방치된 의자나 재개발구역에 버려진 의자 무더기들은 시체더미만큼이나 음산하고, 사각프레임 창문 바깥으로 플라스틱 의자가 떨어지는 오프닝 장면 또한 자살 장면인 듯 섬뜩하다. 이 조각난 플라스틱 의자가 예술가에 의해 나무판이 덧대지면서 새로운 의자로 탄생하는 과정이 영화 전반을 아우른다. 풀숲 가운데서 마디마디 거친 이음새를 드러낸 채 오롯이 네발로 땅을 딛고 서있는 엔딩 장면의 의자는, 원경으로 보이는 건물 숲 속에서 아마 매일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을, 상처를 감싸 안고 다시금 용감하게 일어나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최송아(전남대철학연구교육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