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은 오늘도 백제의 숨결을 품고 흐른다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부여 사비길 kjdaily.com

2015년 08월 20일(목) 18:57

백마강이 반달 모양으로 끼고 도는 부소산 남쪽 마루에 자리한 반월루. 이곳에 서면 부여 시가지를 한눈에 들어온다.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공주와 부여, 익산에 분포된 아홉 곳의 백제역사유적이 우리나라에서 열한 번째의 세계문화유산에 당당하게 등재된 것이다. 공주의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 부여의 정림사지·능산리고분군·나성·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익산의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가 그것이다.

궁남지의 수련. 여름이면 연꽃이 궁남지 전체를 가득 메우며 장관을 이룬다. 수십여종의 연꽃은 각기 개화 시기가 달라 7-9월 어느때 찾아가도 연꽃을 감상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부여 사비길을 걷고 싶었는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는 소식을 듣고부터는 하루라도 빨리 부여로 달려가고 싶었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우리가 부여에 도착할 즈음 약속이라도 한 듯 그쳤다.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나지 않은 여름 날씨라 걷기에는 그지없이 좋다. 부여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사비길을 걷기 시작한다.
부여 시가지를 걷다가 신동엽 생가로 들어선다. 신동엽시인이 어린 시절부터 결혼 이후까지 살던 집이다. 조그마한 시인의 방에는 시인의 사진과 책상이 놓여 있어 시인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궁남지 가운데 작은 섬. 못가에 심어진 버드나무가 한가로이 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생가 뒤편으로 돌아가니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신동엽 문학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문학관 안에는 시인의 일대기와 시인의 육필원고, 시집들이 전시돼 있다. 40세에 요절한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와 장편 서사시 ‘금강’ 같은 시를 통하여 민족의식과 민중의 저항의식을 형상화했다.

백제의 장수 계백장군의 동상이 서 있는 부여군청 앞 로터리를 지나 궁남지로 향한다.

낙화암에서 바라 본 백마강.

궁남지에 도착하자 곳곳에 피어있는 연꽃들이 길손을 맞이한다. 연꽃연못은 4㎞에 이르는 연꽃 길을 따라 조각보처럼 이어진다.

궁남지를 둘러싸고 있는 연꽃정원에 들어서니 순결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50여 종의 연꽃이 우리를 신선의 세계로 인도한다. 조각조각 맞닿아 있는 연꽃길을 따라 걷는데, 연꽃향기가 그윽하고 그 모습이 화사하다.

궁남지는 부여 남쪽에 위치한 백제의 별궁 연못으로 백제 무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궁궐의 남쪽에 연못을 팠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궁남지라 불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20여리나 되는 긴 수로를 통해 물을 끌어들였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연못 가운데에 방장선산(方丈仙山)을 상징하는 섬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의 궁남지도 둥근 연못 가운데에 작은 섬이 있고 못가에는 버드나무가 한가롭게 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백마강 유람선 에서 바라 본 낙화암.

연꽃향기를 품고서 ‘백제오천결사대출정상’ 앞에 선다. 서기 660년 백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18만명의 나당연합군이 동서에서 물밀듯 쳐들어올 때, 계백은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명을 받아 5천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연산벌에서 신라군 5만명을 맞아 싸웠다. 계백과 백제의 5천결사대는 네 차례나 대승을 거뒀지만 중과부적으로 모두가 장렬히 전사했다. 5천결사대의 혼을 기리기 위해 세운 충혼탑 앞에 서니 옷깃을 여미게 된다.

왕포천변을 걷다가 능산리고분군에 도착한다. 입구에는 붉은 연꽃이 피어 있고, 안쪽에 고분군과 절터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에서 국립백제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는 백제금동대향로가 출토됐다.

고분군과 능산리절터를 내려다보며 뒷산으로 오른다. 절터는 발굴조사를 끝내고, 절집들이 있었던 터를 복원해 놓아 과거 이곳 사찰의 평면도를 그대로 볼 수가 있다.

백제가 사비로 천도한 후 여섯 왕이 즉위했는데, 이곳 능산리에 있는 주인을 알 수 없는 고분 일곱 기가 있어 그 중 여섯 기는 사비시대의 백제 왕릉으로 보고 있다.

금성산(121m) 정상에는 2층 누대 형태의 통수대가 서 있다. 통수대는 전란이 발생했을 때 군사를 지휘하고 연락을 했던 곳이다.

국립부여박물관으로 들어선다. 박물관에는 부여 인근에서 출토된 토기와 기와, 청동거울 같은 마한과 백제의 유물들을 볼 수가 있다. 특히 능산리사찰 공방터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와 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 호랑이 모양의 토기 호자 등은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이제 우리는 정림사지로 향한다. 정림사는 백제가 이곳 사비로 천도하면서 백제사비도성의 건설과 함께 세워져 멸망하기까지 123년 동안 왕실과 흥망성쇠를 같이 해온 절이다. 정림사지에는 늠름한 자태로 서 있는 오층석탑만이 사비시대 백제의 흔적을 알려주고 있다.

정림사지오층석탑은 정형화되지 못한 미륵사지 석탑에 비해 정돈된 형식미와 세련되고 완숙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백제문화를 직접 맛보기 위해 선생님과 같이 온 학생들의 천진난만한 표정들이 오층석탑에 스며든다.

우리는 부소산문을 통과해 잘 닦인 산책로를 따라 부소산성으로 향한다. 부소산성길은 아름드리 소나무와 단풍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싱그러운 숲을 이루고 있어 걷는 내내 기분이 상쾌하다. 부소산성의 숲은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숲’으로 선정될 만큼 아름답다.

부소산은 부여의 진산으로 해발 106m 밖에 되지 않는 나지막한 산이지만 북쪽으로 백마강이 흐르고 있어 북쪽에서 내려오는 고구려 군사를 방비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백제는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부소산에 부소산성을 쌓았다. 부소산성은 돌로 기초와 석축을 쌓고 겉은 흙으로 다져 만들었으며, 총길이는 2.5㎞ 정도다.

고즈넉하고 운치있는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영일루, 반월루, 사자루를 거쳐 낙화암에 닿는다. 낙화암 절벽 위 백마강을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백화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낙화암에는 백제의 수도인 사비가 나당연합군에 함락될 때 삼천궁녀가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궁녀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고려시대에 지은 고란사로 내려선다. 고란약수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고란사 마당으로 나오니 바로 아래로 고란사나루터가 발아래에 와 있고, 유유히 흘러오는 백마강이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가깝다.

우리는 나루터로 내려가 유람선에 오른다. 유람선은 백마강을 가르고 우리는 강위에서 낙화암을 바라본다. 40m에 이르는 절벽을 이룬 낙화암이 삼천궁녀의 넋을 담고 있고, 그 위에 백화정이 서 있다. 강위에서 낙화암을 바라보니 마치 백마강에 떠 있는 섬 같다. 유람선에서 흘러나오는 ‘꿈꾸는 백마강’ 노랫가락이 구성지다.

여행쪽지
▶부여 사비길은 백제의 향기를 따라 이어지는 길로, 부여시외버스터미널-신동엽생가-궁남지-능산리고분군-부여국립박물관-정림사지-부소산성-구드래공원-부여시외버스터미널까지 13.4㎞에 이른다. 길을 걸으며 여러 문화재를 차분하게 둘러보려면 6시간 정도 잡고 걸어야 한다.
▶가는 길 : 서천-공주고속도로 부여IC → 부여시외버스터미널
▶부여에는 관광지답게 곳곳에 식당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많이 찾는 곳은 구드래돌쌈밥(041-835-8203)이다.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지는 소박하고 감칠맛 나는 식사를 원하신다면 국립부여박물관 옆에 있는 벌교식당(041-835-8203)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