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렌 켈러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보고나서 문/화/난/장 |
| 2015년 09월 03일(목) 1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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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첫째 날에는, 친절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해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앤 설리번 메이시 선생님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얼굴 윤곽만 보고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꼼꼼히 연구해서, 나 같은 사람을 가르치는 참으로 어려운 일을 부드러운 동정심과 인내심으로 극복해낸 생생한 증거를 찾아낼 겁니다. 또한 선생님의 눈빛 속에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었던 강한 개성과 내게도 자주 보여주셨던 전 인류에 대한 따뜻한 동정심도 보고 싶습니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잎사귀들, 들에 핀 예쁜 꽃들과 저녁이 되면 석양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남이 읽어 주는 것을 듣기만 했던, 내게 삶의 가장 깊숙한 수로를 전해준 책들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에는, 새벽에 일어나 밤이 낮으로 변하는 기적의 시간을 지켜보겠습니다. 태양이 잠든 대지를 깨우는 장엄한 빛의 장관은 얼마나 경이로울까요. 나는 이날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세상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일에 바치고 싶습니다. 인간의 진화과정이라는 시대의 만화경을 들여다보고 싶은 바람이랄까요. 그 많은 것을 어떻게 하루 만에 보느냐? 박물관을 찾을 생각입니다. 나는 예술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탐색하는 일에 둘째 날을 바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날.
이 날은 내가 볼 수 있는 셋째 날이자 마지막 날입니다. 비록 상상으로 만들어낸 기적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후회나 아쉬움 따위로 낭비할 시간이 내겐 없습니다. 봐야 할 것이 너무 많으니까요. 나는 아침 일찍 큰 길로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오후에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도 보고 싶습니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 한복판으로 걸어 나가 네온사인에 반짝이는 쇼윈도에 진열된 아름다운 물건들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 사흘 동안이나마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습니다.”
헬렌 켈러의 작품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다.
세상에 태어난 지 19개월 만에 열병을 앓고 난 후 시각에 청각까지 잃어버렸지만, 일반인도 입학하기 어렵다는 하버드 대학을 입학해 졸업하고 전 세계 장애우 들을 위한 활동을 펼쳤던 헬렌 켈러의 자서전으로, 방금 전 숲속 길을 산책하고 돌아온 친구에게 무엇을 보았냐고 물었더니, “글쎄, 뭐 특별히 본 게 없는데?”라는 대답에 충격을 받아쓰게 됐다는 작품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우리는 오늘, 바로 이 시간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있는지. 우리 안에 있는 밝음의 빛을 애써 가리며, 어둠의 끝에 웅크리고 앉아 꺼억꺼억, 울음을 삼키고 있는 건 아닌지. 아침에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손과 발을 움직여 걷고 달리며,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소소한 행복들을 나 몰라라 팽개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희망한다. 이 가을, 나를 위한 희망 노트 하나씩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1, 하루에 한 번씩 나를 향해 함박 웃어 주기. 2, 나를 향해 잘했다 칭찬해 주기. 2, 하루에 한 번씩 하늘 보기. 3, 하루에 한 번씩, 사랑한다 말하기…. 아무리 좋은 풍경도, 보려는 마음이 없으면 보이지 않고, 아무리 좋은 소리도 들으려는 마음이 없으면 들리지 않는 것처럼, 기쁨 또한 내 안에 있기에. 꿈도 희망도 내 안에서 비롯되기에. 보다 더 멋진 우리가 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