쫑긋하게 솟은 말귀에 돌탑 향기 감돌다 진안 고원길 1구간-마이산길

2015년 10월 08일(목) 19:13

진안만남쉼터에서 진안천을 벗삼아 소박한 농촌풍경을 배경으로 길을 걷는다. 천변에는 고목들이 늘어서 있고 저 멀리에 신령스러운 기운을 간직한 마이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북 사람들은 무주, 진안, 장수를 ‘무진장’이라 부른다. 전라북도 동쪽에서 산악지형을 이루고 있는 무진장은 다른 지역에 비해 고도가 높아 ‘전라북도의 지붕’으로도 일컬어진다. 진안의 경우 전체 면적의 80%가 산지를 이루고 있고, 경작지 비율도 15%에 지나지 않는다.
산의 고장 진안에는 고도 1천m가 넘는 산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진안을 상징하는 산은 마이산이다. 기이한 모양을 한 마이산은 말귀를 닮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런 마이산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 진안 고원길 1구간-마이산길이다.

진안읍내 진안천변에 있는 진안만남쉼터에서 고원길을 걷기 시작한다. 만남쉼터에서 진안천을 건너 천변을 따라서 걷는다. 진안천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도로 건너편으로는 진안읍내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진안천변에는 느티나무 고목들이 늘어서 있고, 느티나무 뒤에 숨어있던 마이산이 살짝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우리는 진안읍내를 벗어나 소박한 농촌풍경을 바라보며 걷는다. 길을 걸을수록 마이산의 기이한 두 봉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우리는 마이산의 신령스러운 기운에 빨려 들어가듯 마이산 품안으로 들어간다.

수마이봉 아래에 자리한 은수사.

익산-포항고속도로 밑 굴다리를 지나면 북부주차장이 나오고, 여기에서 보는 마이산의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 할 만하다. 마이산 앞의 낮은 산봉우리 위로 솟은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의 모습은 막 벙그러진 두 장의 꽃잎을 닮았다. 이런 마이산 풍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꽃처럼 아름답다.

사양제에 올라서니 마이산 두 봉우리가 저수지 위에 떠 있다. 같은 산이라도 보는 장소에 따라 모양이 조금씩 달라지게 마련인데, 사양제에서 보는 마이산은 수풀 속에 몸을 반쯤 감추고 날개를 펼친 한 마리의 나비 같다.

속금산이 불리던 마이산이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조선 태종 때 일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태종이 이 산 아래를 지나다가 산의 모양이 말귀를 닮았다고 하여 마이산(馬耳山)으로 부르라고 했다는 것이다.

길이 갈리는 곳마다 ‘진안 고원길’ 이정표가 세워져 길안내를 해준다. 단풍나무 가로수가 이어지는 임도가 구불구불 곡선을 이룬다. 임도 주변에는 낙엽송·전나무·소나무·산벚나무 같은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어 상쾌하고 포근하다. 넓은 숲길이라 천천히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기에 그지없이 좋다.

임도가 끝나고 좁은 오솔길을 따라가는 길은 정답다. 북부정류장에서 계단을 따라 곧장 올라오는 사람들을 만난다. 천왕문에 도착한다.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사이 안부인 이곳은 은수사와 탑사로 통하는 관문이라 건물이 없어도 천왕문이라 불린다. 천왕문에서 수마이봉으로 150m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화엄굴이 기다리고 있다. 굴속으로 암마이봉이 거대한 부처마냥 다가온다. 많은 스님들이 이곳 화엄굴에서 암마이봉을 부처삼아 수도정진했을 것이다.

천왕문에서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사이 가파른 골짜기를 따라 은수사로 내려간다. 이곳은 고려의 장수였던 이성계가 왕조의 꿈을 꾸며 기도를 드렸던 장소로 전해지는데, 기도 중에 마신 물이 은같이 맑았다고 하여 은수사(銀水寺)라 했다. 은수사는 수마이봉을 등지고, 암마이봉을 옆에 끼고 있어 그 앉음새가 사뭇 신선하다.

마이산 봉우리들은 지상으로 드러난 것만도 수백미터에 이르는 원통형 바위다. 자갈이 진흙이나 모래에 섞여 굳어진 퇴적암인 역암이 거대한 두 개의 덩어리를 이루어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이 됐다.

탑사 옆 암마이봉 절벽을 보면 곳곳에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타포니라고 불리는 이 구멍들은 역암에서 자갈 사이를 메우고 있는 물질인 메트릭스가 자갈보다 빨리 풍화되는 차별침식으로 자갈이 빠져나가면서 생겼다. 수십미터 높이 절벽 위 타포니에도 작은 돌탑을 쌓아놓아 신비감을 더한다.

수박크기의 돌덩이에서부터 엄지손가락만한 작은 돌멩이에 이르기까지 돌에 돌을 포개얹어 크고 작은 외줄 돌탑을 80여개 쌓아 만든 석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 마이산 탑사(馬耳山塔寺).

탑사는 암마이봉 수직절벽 아래 골짜기에 터를 잡았다. 탑사에 들어서자 수박크기의 돌덩이에서부터 엄지손가락만한 작은 돌멩이에 이르기까지 돌에 돌을 포개 얹어 쌓은 돌탑 80여기가 신비한 모습을 하고 있다. 높이가 1-2m되는 작은 것부터 15m에 이르는 거대한 돌탑까지, 원뿔모양이나 외줄기로 쌓은 돌탑들이 옹기종기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탑사 돌탑들은 접착제를 쓰지도 않았고 시멘트로 이어 굳힌 것도 아니며, 더더구나 홈을 파서 끼워 맞춘 것도 아니지만, 100여 년의 비바람 속에서도 견고하게 버티고 서 있다.

이 탑을 쌓은 이갑룡 처사(본명 경의)는 1860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난 효령대군 16대 손이다. 그는 수행을 위해 25세 때 마이산에 들어와 낮에는 돌을 날라 탑을 쌓고 밤에는 기도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이렇게 108기의 돌탑을 쌓는데 무려 3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탑사 돌탑은 현재 80여기만 남아 있다.

기묘한 산의 모양에 탑사 돌탑들이 신비감을 더해줌으로써 마이산은 전국적인 명소가 되었다. 마이산 협곡에서 뿜어내는 탑사 돌탑의 신령스러운 기운은 탐욕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신선한 향기를 내뿜어준다. 대웅전 아래 돌탑 사이에 있는 용궁은 섬진강 발원지 중 하나다.

마이산 협곡에서 뿜어내는 신령스러운 기운은 칠정오욕에 찌든 우리들의 마음에 한줄기 청량함을 전해준다.

탑사 아래 상가 옆길을 따라 다시 산길로 들어선다. 우리는 숲길을 걸으며 탑사에서 받은 향기를 가슴 속 깊이 체화한다. 이렇게 포근한 산길을 30분 정도 걸으니 은천마을에 도착한다. 소박한 은천마을 골목을 따라 걸을 때는 어린 시절 뛰어놀던 개구쟁이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골목길을 걷다가 뒤돌아보면 골목 사이로 뾰족하게 솟은 마이산이 다가온다.

은천마을 앞 천변에는 울창한 마을 숲이 조성돼 있다. 은천마을 숲은 5천600㎡ 면적에 느티나무, 팽나무, 은행나무, 줄사철나무, 개서어나무 등이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다.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 가랑비를 맞으며 걷는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논 뒤로 마이산이 쫑긋 고개를 내밀며 배웅을 한다.

※여행쪽지

▶진안 고원길은 고원지대를 이루고 있는 진안의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로 현재 네 개 구간이 개방돼 있다. 그중 고원길 1구간은 진안읍내 진안만남쉼터에서 시작해 사양제-은수사-탑사-은천마을-서촌마을-중동촌을 거쳐 마령면사무소까지 12.9㎞로 4시간 정도 걸린다.
▶사양제에서 은수사-탑사-은촌마을 구간(4.3㎞)만 산길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평지길이어서 걷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다. 난이도 : 중
▶가는 길 : 장수-익산고속도로 장수IC → 진안읍 방향으로 30번 국도 우회전 → 진안로터를 지나 오른쪽 진안천변을 따라 400m 정도만 가면 다리가 있고, 그 뒤로 진안청소년수련관 건물이 보인다. 우회전해 진안천을 건너면 조그마한 주차장이 있는 진안만남쉼터다.
▶마령에서 진안으로 가는 군내버스가 하루 20회(20-30분 간격)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