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선과 천정배, 그리고 ‘신당’ 김진수 서울취재본부장 jskim@kjdaily.com

2015년 10월 27일(화) 18:31

무소속 박주선 의원. 1949년 보성에서 출생해 광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지독하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피를 팔아 등록금을 보탠 모친, 형을 위해 고교진학을 포기한 남동생의 희생에 힘입어 중고교를 다녔다. 그리고 결국 1974년 실시된 제16회 사법시험에서 수석합격이란 영광을 안은 ‘스토리텔링이 되는 천재’이다.

무소속 천정배 의원. 1954년 신안에서 태어나 목포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72년 서울법대 입학 당시 수석 및 서울대 인문계 전체수석을 차지했다. 그는 1976년 제18회 사법시험에 합격, 검사가 되기로 결심했으나 당시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것을 수치로 여겨 인권변호사의 길을 택한 ‘강단있는 천재’이다.

호남의 내로라하는 두 천재 정치인이 ‘신당’을 만들겠다며 움직이고 있다. 나이는 朴이 5살 위지만, 국회의원 선수는 千이 5선으로 2선이나 위다. ‘수석합격’이란 공통된 천재성을 제외하고 이들 두 사람의 인생역정과 캐릭터는 사뭇 다르다.

중앙 정치권에서는 朴보다 千을 좀 더 쳐준다. 중앙 무대에서 잔뼈가 굵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광주에서의 평가는 조금 다르다. 정치인을 평가하는 중앙의 ‘문법’과 광주의 ‘문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보스 기질은 朴이 앞선다는 말들을 한다. 지지자들의 로열티도 朴측이 더 강해 보인다. 어찌됐건, 스타일이나 경력을 고려할 때 두 사람은 대체재라기보다는 상호 보완재 성격이 강하다.



신당창당 나선 두 천재



달포 전보다는 분위기가 가라앉았지만, 광주는 여전히 ‘신당’ 얘기로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시민들은 국가와 민족이 어려울 때 시대적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른바 호남정신을 드높일 수 있는 정당을 만들자고 말한다. 호남정치·호남개혁정치 복원을 기치로 그동안 근대화 과정에서 고착화된 지역간 불균형발전 구조를 타파할 수 있는 똑똑하고 야무진 정당을 하나 탄생시켜보자는 것이다.

‘신당’과 관련, 각자 도생중인 박주선·천정배가 함께 가야한다는 목소리는 도처에서 들린다. 멀지 않은 미래에 두 사람이 경쟁할 수 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한다. 지금은 상대의 약점이 아니라 장점을 봐야 할 때라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을 대체하는 새로운 ‘신당’의 출현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千과 朴이 함께 해야 시너지효과가 클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우리 정당사에서 서로 다른 2명의 지도자가 함께 나섰던 지난 1985년 신한민주당의 창당은 잘 알려진 성공사례다. 혹자는 성공한 창당과 실패한 창당의 차이로 강력한 지도자의 유무를 꼽는다. 신한민주당 창당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김대중(DJ)과 김영삼(YS)이라는 강력한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강력한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에 신당이 성공한 것이 아니라 신당 창당에 성공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강력한 지도자가 됐다는 시각도 있다. 이는 현재 신당을 추진 중인 박주선·천정배 의원에게도 당연히 동일하게 적용된다.



‘지도자’와 ‘창당 성공’의 관계



언제부턴가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의 ‘친노 패권’은 그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상관없이 호남 출신 대권주자의 등장을 막는 기제로 작동해왔다. 호남은 3선 이상이 되면 예외 없이 물갈이 대상이란 소문이 돌았다. 공천 ‘칼자루’는 통상 영남 중심의 ‘친노’가 쥐기 마련이어서 호남 정치인들은 자존심을 접고 영남 정치인들의 하부구조에 만족하거나, 당을 떠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 千과 朴은 정치적으로 자각한 호남 민심이 차려준 밥상과 마주하고 있다. 이른바 ‘민심의 밥상’이다.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고, 힘내서 정권을 되찾아오라는 것이 그 밥상의 진심일 터다.

하지만 ‘민심의 밥상’을 대하는 朴과 千의 행동은 차이가 있어 보인다. 朴은 가급적 빨리 함께 마주앉아 식사하자는 입장이다. 둘 뿐만 아니라 ‘박준영 신당’과 원외정당 ‘민주당’까지 합석도 좋겠다는 눈치다. 반면 千은 현시점에서 朴과의 겸상은 별로 마뜩치 않은 것 같다. 당연히 ‘박준영 신당’이나 원외정당 ‘민주당’까지의 합석은 더욱 용납이 안 되는 모습이다.

어떤 선택이 진정 승리하는 길이 될 것인가에 대한 심사숙고가 필요하고, 타 세력과의 결합을 비판하는 지지자들의 목소리도 들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정치인의 신중함에 대해 섣불리 뭐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누군가 장고를 거듭하는 사이 호남인들이 만들어 준 ‘민심의 밥상’은 식어간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모처럼 맞은 소중한 기회를 또 놓치는 것은 아닐까 나는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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