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휘돌아가는 강물은 오랜 세월 선비문화를 일구고 안동 유교문화길 2코스 -하회마을길 |
| 2015년 11월 03일(화) 19: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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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시내를 지난 낙동강은 산자락을 굽이굽이 돌면서 강변에 충적층을 만들어 크고 작은 들판을 만들었다. 풍산읍과 풍천면 일대의 기름진 평야가 그것이다. 이 지역의 넉넉한 들판은 선비문화를 꽃피우게 한 물적 토대가 됐다.
오늘은 조선시대 우리의 유교문화를 꽃피웠던 안동지역 선비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두 발로 직접 걸어볼 참이다. 소산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넓은 풍산들판을 내려다보고 있는 작은 언덕에 운치 있는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서 있고, 그 가운데에 삼구정이 앉아있다. 정자터 안에 세개의 돌이 거북이가 엎드린 것 같아 삼구정(三龜亭)이라 했다고 한다.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신역천변을 따라 걷는데, 황금빛 들판이 드넓게 펼쳐진다. 억새물결은 황금색 들판 가운데로 은색 띠를 만들어준다. 불어오는 바람에 억새는 쓸쓸하게 노래를 한다. 옛 유행가 가사처럼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이다. 낙동강변에서 병산서원 가는 비포장도로로 접어든다. 멀리 안동의 진산인 학가산을 비롯한 산줄기들과 황금들판이 유유히 흘러오는 낙동강과 만나 한 폭의 그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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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당 마루에 앉아서 만대루를 바라보니 만대루 기둥 사이로 들어오는 풍경이 7폭 병풍을 보는 듯하다. 마루는 넓고, 기둥과 기둥 사이는 툭 터져 시원하다. 만대루에는 오를 수 없지만 시원한 누각에 앉아 병산과 낙동강 물줄기, 모래사장까지를 한눈에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병산서원 현판이 걸려있는 입교당은 원생들이 강학하던 공간으로 가운데에 마루가 깔려있고, 양쪽은 온돌방이다.
병산서원 앞 강변으로 나가니 널따란 모래사장이 가슴을 확 트이게 하고, 백사장을 휘감고 돌아가는 맑은 강물이 내 마음을 씻어준다. 과거 병산서원 유생들도 공부하다가 머리가 무겁거나 여름나절 무더울 때면 강변에 나와 탁족을 즐겼을 것이다. 백사장에 서서 병산을 바라보니 이름 그대로 산 모양이 병풍을 펼쳐놓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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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들판을 가로질러 하회마을로 가는데, 건너편에서 부용대가 미소를 짓는다. 우리는 몇백년 된 한옥고택과 초가가 어우러져 있는 하회마을로 빠져 들어간다. 풍산읍에서 흘러온 낙동강은 병산과 화산 사이 골짜기를 지나 하회마을에 이르러 태극을 그리며 휘감아 돈다. 물이 돌아간다고 해서 ‘물돌이동’이라 하고, 한자로 하회(河回)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화회마을은 풍산 류씨 집성촌이다. 하회마을에서는 조선 중기 이후 겸암 류운룡과 서애 류성룡 형제를 비롯하여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하회마을은 중앙을 가로지르는 큰 골목을 중심으로 북촌과 남촌으로 나뉜다. 우리는 하회마을 안내도를 따라 남촌에서 시작하여 북촌으로 이동하며 답사를 한다. 하회마을 골목길을 걷는데 기와집이 즐비하고, 드문드문 초가도 있다. 초가집은 대개 종가집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나 소작인들이 살았던 살림집이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하동고택-남촌댁-양오당-북촌댁 순으로 답사를 한다. 하회마을에는 골목이 여기저기로 연결이 돼있어 마을길을 걷다보면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다. 하회마을 골목길에서는 사람 키 높이의 담이 인상적이다. 요즘에는 돌담도 더러 보이지만 원래 하회마을에서는 돌담을 쌓지 않고 ‘판담’이라 불리는 흙담을 쌓았다.
하회마을에는 수백년 된 고택들이 많지만 대표적인 건물은 양진당과 충효당이다. 하회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인 양진당(보물 제306호)은 하회 류씨의 대종택이며, 서애 류성룡의 맏형인 겸암 류운룡의 종가로 조선 전기 주택이다. 남향을 하고 있는 양진당 사랑채에 앉으니 대문 너머로 낙동강 건너 산줄기가 다가오고, 뒤편에서는 부용대가 병풍을 펼쳐놓은 것 같다.
골목을 사이에 두고 양진당과 충효당이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충효당(보물 제414호)은 서애 류성룡의 종택으로, 류성룡이 살아있을 때는 작고 조촐했으나 사후에 손자인 류원지가 짓고 류원지의 아들인 류의하가 확장·중수해 오늘의 모습을 갖췄다. 사랑채 대청마루 위에는 조선 중기 명필로 꼽히는 미수 허목이 단아한 전서체로 쓴 충효당(忠孝堂) 현판이 눈길을 끈다. 안채는 사랑채와 붙어있지만 방이나 마루로 연결돼 있지 않아 후원의 문을 통해서 드나들 수 있게 돼 있다.
마을 변방에는 과거 하인들이 살았던 초가들이 많다. 흙담과 초가집이 고향집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이제 골목길을 따라 낙동강변으로 나아간다. 강변에 들어서니 아름드리 적송 숲이 또 하나의 보물로 다가온다. 이 곳 솔숲은 겸암 류운룡이 젊은 시절에 조성했는데, 1만그루에 달한다고 하여 만송정(萬松亭) 솔숲이라 부른다.
만송정 앞에는 낙동강이 휘감아 돌아가고, 강변에는 백사장이 펼쳐진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백사장은 깎아지른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부용대와 어울려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 부용대 기암절벽 위에서 하회마을을 바라보면 연꽃이 물위에 떠 있는 것 같은 신비감을 자아낸다.
날이 어두워지자 마을은 고요해지고 은하수가 하늘을 촘촘하게 수놓는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이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 우리는 250년 세월을 품은 고택 품에 안겨 깊은 잠에 빠져든다.
※여행쪽지
▶안동 유교문화길은 조선시대 선비문화가 살아있는 낙동강변을 따라 걷는 길로 3개 코스에 49.2㎞에 달한다.
▶안동 유교문화길 2코스는 3개 코스 중에서 핵심적인 구간으로 안동한지-소산마을-병산서원-하회마을-현외삼거리까지 13.6㎞로 4시간 정도 걸린다.
안동을 대표하는 음식은 안동찜닭, 간고등어, 헛제사밥이다. 하회탈박물관이 있는 하회장터에는 안동의 대표음식을 하는 식당들이 많다. 하회마을 여러 민박집에서도 안동찜닭과 간고등어정식을 맛볼 수 있다. 특히 작천고택의 음식 맛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