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세련된 백제문화의 향기를 따라 걷다

공주 ‘고마나루명승길’

2015년 12월 03일(목) 19:30
웅진백제의 64년간 왕성이었던 ‘공산성’. 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산성으로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 석성으로 고쳤다.
백제는 서기 475년 고구려에게 수도 한성이 함락되고, 제21대 국왕인 개로왕이 살해되는 비운을 겪게 된다. 이로써 백제는 한성을 떠나 지금의 공주인 웅진으로 천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구려에 쫓긴 백제는 금강이 북쪽을 가로막고 있는 강변 둔덕에 공산성을 쌓고 그 안에 왕궁을 앉혔다.

공북루가는 길에서 본 연지.
수도를 옮긴 백제는 성왕 6년(538년) 부여로 다시 천도할 때까지 64년 동안 웅진시대를 영위했다. 백제가 신라에 패망해 백제의 흔적들이 지워지고, 오랜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백제의 문화유적은 많이 사라졌지만 공주의 공산성과 송산리고분군만은 웅진시대 백제의 영혼을 후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고마나루명승길’은 백제의 숨결을 느끼며 걷는 길이다. 고마나루명승길 걷기는 공주 한옥마을을 출발해 국립공주박물관으로 향하면서 시작된다. 국립공주박물관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건립된 박물관이라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이 주요 전시물을 이루고 있다.

1971년 공주시 송산리고분군에서 발굴·조사된 무령왕릉에서는 18종 4천600여점의 유물이 나왔으며 그중 12점이 국보로 지정됐다.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묘지석(국보 제163호)이다. 무덤 속 주인공이 무령왕릉임을 알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이 묘지석 덕분이다.

공산성의 금서루.
계속해서 만나게 되는 유물은 금이나 은으로 만든 세공품들이다. 국보 제154호와 제155호의 무령왕 금제관식과 무령왕비 금제관식은 아름답고 우아한 불꽃 모양으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탄식을 자아내게 한다. 무령왕 금귀걸이(국보 제156호)와 왕비 금귀걸이(국보 제157호), 왕비의 소장품인 용장식 은팔찌(국보 제160호)를 보면서도 백제인들의 우아함과 세련미, 정교한 금세공 기술에 감탄한다. 금제뒤꽂이(국보 제159호), 금제목걸이(국보 제158호)와 청동거울(국보 제161호)에서도 백제문화의 화려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우리는 국립공주박물관을 출발해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고분군으로 발길을 돌린다. 송산리고분군은 백제 웅진 도읍기간에 재위했던 왕과 왕족들의 무덤으로 무령왕릉을 포함해 7기의 무덤이 모여 있다. 무령왕릉은 다른 고분들과는 달리 도굴되거나 전혀 훼손되지 않아 수많은 유물이 출토될 수 있었다.

송산리고분군 모형전시관 입구-송산리고분군은 송산 남쪽자락에 조성된 고분군으로 백제 웅진 도읍기의 왕과 왕족들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모두 7기가 있다.
송산리고분군을 지나면 황새바위성지다. 황새바위 주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천주교 신자가 순교한 곳으로 1984년부터 본격적으로 성지를 조성했다. 현재 공식적으로 알려진 순교자 숫자만 해도 248위에 달한다.

황새바위 성지순례를 마치고 고개를 들어보니 제민천 건너에서 공산성이 손짓한다. 공산성 서문인 금서루 위로 올라가 성곽길을 걷기 시작한다. 가슴에 안겨오는 성곽은 곡선을 그으며 이어지고, 금서루와 봉우리 위에 우뚝 서 있는 공산정은 구불구불 이어지는 성곽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공산성과 송산리고분군은 부여, 익산에 분포된 백제역사유적과 함께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공산성은 총길이 2천660m로 동서남북에 네 개의 문루가 있고, 동서가 길고 남북은 짧다. 백제 때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중기에 석축으로 새로 쌓았다. 산줄기를 따라 부드럽게 이어지는 성곽길은 두런두런 얘기하며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혼자서 백제의 향기를 맛보며 걷기에도 더없이 좋은 길이다.

금서루에서 쉬엄쉬엄 성곽을 따라 올라가니 넓은 공터가 나온다. 백제의 왕궁지로 넓은 터와 인공적으로 만든 둥그런 백제연못이 남아 있다. 왕궁지 북쪽 언덕위에는 쌍수정이라 불리는 정자가 있다. 1624년 조선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머물다가 평정 소식을 듣고 나무 두 그루에 벼슬을 내렸던 자리에 정자를 짓고 그 이름을 쌍수정이라 했다.

성곽 주변에는 주로 참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성곽 아래로 공주의 구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동문인 영동루를 지나면서부터 공산성은 잠시 토성으로 바뀐다. 석성을 따라 걷다가 토성 위를 걸으니 내 마음도 훨씬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방향이 북쪽으로 바뀌면서 공산성은 금강변 가파른 비탈 위로 이어진다. 성곽에서는 세종시를 지나 흘러온 금강이 공주를 지나 부여 방향으로 내려가는 모습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강 주변은 높지 않은 산들이 붕긋붕긋 솟아 부드럽고 평온하다. 금강 건너편으로 공주의 신시가지가 펼쳐진다.

가파른 비탈 아래에서 금강이 흘러가고, 성 안쪽 숲속에서는 새들이 노래를 한다. 성곽은 산줄기를 따라 고도를 낮춰간다. 방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산성은 이제 귀중한 문화유산이 되고 아름다운 예술이 됐다. 공주 금강변의 공산성은 진주 남강변의 진주성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강변 성이다.

성곽을 가파르게 내려가니 영은사라는 사찰과 연지 만하루가 강변 낮은 평지에 자리를 잡고 있다. 영은사 앞에서 암문을 통하여 성 밖으로 나가면 인공으로 만든 연지(蓮池)가 있다. 연지와 금강 사이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만하루가 강물 위에 떠 있는 배처럼 앉아 있다.

공북루로 내려선다. 공북루는 공산성 북문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를 갖추어 동서남북 네 개의 문루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공산성 북서쪽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공산정에 올라서니 사방이 확 트여 최고의 전망대 역할을 해준다. 수원화성처럼 장수가 부대를 지휘하는 장대가 있다면 공산성에서는 이곳 공산정 자리가 될 듯하다.

우리는 공산성을 뒤로 하고 금강교를 건넌다. 금강교를 건너면서 공산성을 바라보니 공산성이 유려하게 곡선을 긋고, 그 모습 그대로를 금강에 비춰 또 하나의 성을 만들어낸다. 이제 고나마루명승길은 금강을 따라 내려간다. 강변에는 갈대가 쓸쓸히 나부끼고 곳곳에는 야외조각품이 설치돼 있어 조각품을 감상하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연미산 자락을 지나 공주보로 향한다. 강 건너편으로 공주의 낮은 야산들이 다가오고, 강변 가로수들이 물위에 잔영을 만들어낸다. 공주보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고마나루가 있던 건너편 솔밭 아래로 백사장이 아름답게 펼쳐졌는데, 지금은 백사장은 없어져버리고 호수처럼 물이 차 있을 뿐이다.

공주보를 건너 한옥마을로 돌아오면서 고마나루명승길 걷기가 마무리된다. 공주 땅을 밟으며 1천500년을 뛰어넘는 긴 시간여행을 하고나니 어느덧 내 마음도 백제의 향기로 가득 채워진 듯하다.

※여행쪽지

▶고마나루명승길은 백제의 흔적을 따라 걷는 길로 한옥마을→국립공주박물관→송산리고분군→황새바위성지→공산성→공주보→한옥마을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총길이 23㎞로 만만치 않은 거리지만 위에서 언급한 핵심코스만 걷는다면 5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 : 논산-천안고속도로 공주JC→당진-영덕고속도로 공주IC→651번 지방도로를 따라 백제큰다리 → 한옥마을
▶한옥마을 안에 공주국밥(8천원)을 하는 새이학식당 2호점(041-856-0019)이 있다. 동해원(041-852-3624)은 짬뽕(7천원)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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