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읍 지키던 성곽은 현대도시에 옛 정취 불어넣고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서울 한양도성길 |
| 2016년 01월 12일(화) 1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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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 때 만들어진 한양도성을 따라 걷는 길이 ‘한양도성길’이다. 나는 인왕산구간이 시작되는 돈의문터로 향한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 등 여덟 개의 문이 있었는데, 현재는 여섯 개 문만 남아있고 돈의문과 서소문은 자취를 감추었다.
돈의문터를 출발하자 강북삼성병원 구역 안에 근대건축물인 경교장이 있다. 경교장은 사적 제465호로 지정돼 있지만 고층의 강북삼성병원 안에 있어 병원의 부속건물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홍난파가옥을 지나 인왕산 입구에 도착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성곽길 걷기가 시작된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성곽도 단을 이루며 높이를 더한다. 성곽 너머로 인왕산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성곽은 주변 풍경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다.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는 성곽은 아름답게 솟아있는 인왕산과 북한산, 북악산과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성곽 바로 아래로는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정다움을 더해주고, 주택가 뒤로는 고층빌딩들이 하늘높이 솟아있다. 가깝게는 경복궁과 정부종합청사 등이 내려다보이고, 더 멀리 남산타워가 우뚝 서 있다. 오래된 성곽과 현대식 빌딩들이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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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내려다보면 성곽은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한양도성은 서울의 건물들에 생명수를 공급해주는 듯하다. 인왕산 정상으로 오르면서 구불구불 이어진 성곽과 약간 돌출되어 뻗어나간 곡정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인왕산 정상에 올라서니 서울을 둘러싼 산과 시내의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의 풍경을 안쪽인 내사산과 외곽의 외사산 개념을 가지고보니 과거와 현재의 서울의 경계를 실감나게 파악할 수가 있겠다. 조선시대에는 수도 한양을 인왕산·북악산·낙산·남산 등 내사산이 감싸고 있었지만, 거대도시로 발전한 지금의 서울은 북한산·도봉산·수락산·불암산·아차산·우면산·관악산 등 소위 외사산이 감싸고 있다. 내사산은 한양도성길로, 외사산은 157㎞에 이르는 서울둘레길로 조성되어 서울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산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도성을 바라보며 북악산으로 향한다. 뒤돌아보면 주름 잡힌 치마모양을 한 치마바위가 인왕산 정상을 감싸고 있고, 앞에서는 30m 길이로 뻗어 있는 기차바위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이렇게 아기자기한 인왕산을 북한산이 바라보며 행복해한다.
창의문에 도착하기 직전 소박한 모습의 윤동주문학관으로 들어선다. 문학관은 시인의 삶이 그렇듯이 담백하고 정갈하다. 문학관 안으로 들어서니 윤동주시인의 육필원고와 사진자료, 시집 등이 전시돼 있다. 이윽고 창의문에 도착했다. 창의문은 한양도성 북서쪽에 설치된 4소문 가운데 하나로 자하문이라고도 한다.
백악마루에는 백악산이라 쓴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북악산은 이곳 표지석처럼 백악산으로도 부른다. 경복궁을 기준으로 북쪽에 있는 산이라 해 북악산이라 불렀다. 남산 역시 경복궁 남쪽의 산이라는 의미다. 청운대를 지나 암문을 나가 성곽 밖을 걸을 때는 북한산이 가슴에 안겨온다. 북악산에서 바라보는 수려한 풍광은 한양도성이라는 유적이 있음으로써 문화적 가치까지 더해져 걷는 즐거움을 배가시켜준다.
숙정문에 가까워지자 성곽 너머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식당이자 전통문화 복합공간인 삼청각이 지척이고, 전원 느낌이 드는 성북동은 서울시내의 다른 주택가에 비해 여유롭게 다가온다. 이런 환경이다 보니 성북동에는 외국대사관저들이 많이 들어서 있고, 작은 박물관들도 많다.
숙정문으로 내려선다. 원래 숙청문이라 불렸던 숙정문은 한양도성의 북대문이다. 성곽과 숲을 통해서 서울시내의 건물들을 바라보니 시멘트 건물의 삭막함이 상쇄된다. 성북동 안쪽은 대사관저를 비롯해 고급주택이 많지만, 성곽 바로 아래 주택가인 북정마을은 1960-70년대 정취가 풍기는 서민주택이 주를 이루고 있다.
간간이 성곽의 흔적만 남아있는 골목길을 지나니 혜화문이 우뚝 서 있다. 혜화문은 4소문의 하나로 동소문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혜화문 옆 도로를 건너니 끊어졌던 성곽이 다시 이어진다. 인왕산구간이나 백악구간에서는 주로 성곽 안쪽 길을 따라 걸었는데, 혜화문에서 낙산공원까지는 성곽 바깥 길을 밟게 된다.
이 구간에서는 태조와 세종, 숙종 때 쌓은 각기 다른 성벽을 볼 수 있다. 성벽 돌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어느 시기에 축조했는가를 가늠해보면서 걷다 보니 먼 옛날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인왕산이나 백악구간에 비해 길도 완만해 산보하듯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성벽 바로 아래로는 주택들이 있어 동네 골목길을 걷는 기분이다. 암문을 통과해 성안으로 들어가니 한양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이 기다리고 있다. 낙산에서는 사방으로 서울 시내가 시원스럽게 조망된다. 무엇보다도 불꽃이 타오르듯 솟아있는 북한산과 도봉산이 서울을 감싸안으면서 아름답게 펼쳐진다. 안쪽으로는 한양도성을 이룬 북악산, 인왕산, 남산이 서울의 구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동대문으로 내려가는데 성곽 옆의 서민주택과 골목이 고층빌딩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흥인지문(보물 제1호)은 넓은 도로와 고층빌딩 사이에서 외롭게 서 있다. 흥인지문은 도성의 여러 문 가운데 유일하게 옹성을 갖추고 있다. 흥인지문은 홍예문이 있는 석축기단 위에 2층 문루를 올리고 상하층 모두 정면 5칸 측면 2칸에 겹처마 우진각지붕을 얹어 숭례문과 비슷한 모양과 구조를 갖추고 있다. 흥인지문을 나서는데 오랜만에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가 돌아가는 느낌이다.
※여행쪽지
▶한양도성길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도읍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곽을 따라 걷는 길로 총길이가 18.6㎞에 달한다.
▶한양도성길은 백악구간(창의문-혜화문, 4.7㎞/2시간 30분), 낙산구간(혜화문-흥인지문, 2.1㎞/50분), 흥인지문구간(흥인지문-장충체육관, 1.8㎞/40분), 남산구간(장충체육관-백범광장, 4.2㎞/2시간 30분), 숭례문구간(백범광장-돈의문터, 1.8㎞/40분), 인왕산구간(돈의문터-창의문, 4㎞/2시간) 등 6구간으로 나누어져 있어 체력에 맞게 2-3개 구간을 묶어서 걸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