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에 생각해 볼 것들 김유미 아시안발레단 단장

2016년 01월 28일(목) 18:54

올 겨울은 유난히 따뜻할 것이라던 세간의 애초 예상과는 달리, 재주 많은 원숭이를 상징하는 병신년 첫 달은 온 세상을 잠깐이나마 꽁꽁 얼게 만들어 버린 ‘기록적인 한파’와 언제 그칠지 모르게 끊임없이 내려 쌓이는 폭설로 시작되었다. 지난 몇 주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움직임을 정지시키고, 온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눈덩이로 만들어버릴 것만 같았던 폭설과 한파의 원인이 지구 온난화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북극이나 남극 등의 극지방 성층권에는 소위 ‘폴라 보텍스(Polar Vortex)’라고 불리는 강력한 저기압성 소용돌이 기류가 존재하는데, 이 차가운 기류는 보통 마치 벨트처럼 그 주변을 빠른 속도로 돌면서 한파의 움직임을 제한시키는 제트기류의 영향으로 극지방에 갇혀 있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의 결과로 북극의 기온이 상승하게 되고, 그에 따라 제트기류의 흐름이 느려져 함께 느슨해진 한랭전선이 갑자기 남하하게 되면서 전 지구적인 이상 한파가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한파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은 오래전에 개봉했던 ‘투모로우’라는 영화를 떠올리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날이 갈수록 가속화되어가는 지구 온난화의 결과로 극지방의 빙하들이 녹고 바닷물이 차가와지면서 지구 전체가 빙하로 뒤덮이게 될 것이라는 경고성 예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북반구에 살인적인 한파가 몰아쳐서 뉴욕과 워싱턴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추위에 고립되거나 사망하게 된다. 뉴욕의 도서관으로 피신하게 된 주인공 일행은 도서관의 신문과 장서들을 불태우고 서로 맞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체온을 통해 추위를 피하려고 노력한다.

많은 매체들에서는 전문가들의 말을 빌어 “전 세계가 이상 한파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전하며, “2009년부터 북미와 동아시아, 유럽 등을 순차적으로 혹은 동시다발적으로 한 해도 빠짐없이 한파가 몰아치고” 있고, “내년엔 어느 정도 수준의 초강력 한파가 닥칠 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다시피 그러한 재난이 찾아오면 그동안 인류가 역사를 통해 힘들게 축적해 온 엄청난 지식과 재화는 그저 한 때의 추위를 피할 일회성 불쏘시개로서의 역할만 하게 될지도 모른다. 엄청난 시간과 인적, 물적 자원을 통해 쌓아 올려 온 문명의 바벨탑이 바로 그 문명의 주체들의 부주의와 탐욕 때문에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비극적 아이러니가 바로 우리 코앞에 닥친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기록적인 한파가 전국과 전 세계를 마비시키는 동안 또 수많은 소식들이 텔레비전 뉴스 시간과 SNS의 실시간 소식란들을 달구었다. 총선을 준비하며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라 이합집산하는 정치권, 관광지에 발이 묶인 수 만 명의 관광객, 눈으로 무너진 농촌의 비닐하우스, 화재로 전소한 주택과 창고, 얼어붙은 한강 속으로 침몰한 유람선, 일관적이지 못한 정책으로 월급을 지급하지 못한 유치원, 그 월급을 받지 못한 유치원 교사, 보육비 걱정으로 한숨 쉬는 학부모, 월 몇 만원의 용돈 벌이를 위해 모진 한파 속에서도 폐지를 주우러 집을 나서야 하는 노인들, 법정 인건비에 못 미치는 시급을 위해 새벽 찬바람이 볼을 강타하는 시간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가련한 청춘들...

지구 온난화가 영화 ‘투모로우’를 능가하는 한파로 발전하기 전까지,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