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라산 자락과 금강을 따라가니 절집이 맞이하고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익산 둘레길 1코스(함라산 둘레길)

2016년 02월 16일(화) 18:31

함라 삼부자집과 돌담길. 함라 돌담길은 총 1.5㎞에 이른다.

전북 익산은 금강과 만경강이 감싸고 흘러가면서 너른 평야지대를 이룬다. 두 강이 만들어준 익산의 들판은 충청남도 부여와 논산, 전라북도 군산과 김제의 넓은 평야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익산의 지형은 대부분 지역이 평지를 이루고 있지만 북동쪽과 북서쪽에서는 200-400m의 산들이 부드러운 산세를 형성한다. 금마면·여산면 일대의 미륵산·용화산과 함라면의 함라산은 익산의 대표적인 산이다.

금강둑길을 걷다보면 강 건너 부여의 낮은 산봉우리들이 강물에 비취어 또 하나의 산을 만들어낸다.

익산의 허파역할을 하고 있는 함라산과 금강변, 그리고 미륵산 자락 미륵사지 근처에 조성된 ‘익산 둘레길’은 익산사람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는 길이다. 3개 코스로 이뤄진 익산둘레길 중 우리는 1코스를 걷기로 했다. 1코스는 함라산 자락을 도는 길로 함라산 둘레길이라도 부른다.

함라면 소재지에 도착하자 높지 않은 함라산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농산물이 풍족한 고장이었음을 느끼게 해준다. 이 마을은 스님이 시주를 받는 주발에 해당되는 곳이어서 큰 부를 이룰 명당라고 전해져 내려온다. 이를 뒷받침하듯 함라면소재지에는 만석군을 이룬 세 부자가 살았고, 삼부자가 살았던 고택이 지금도 남아 있다.

고풍스러운 한옥들과 옛 돌담이 함라마을의 품격을 높여준다. 삼부자집을 중심으로 반듯하면서도 조금씩 굽어지는 담장은 다른 지역의 담장에 비해 높고 정갈하다. 함라 돌담장은 그 길이가 1천500m에 달한다. 이런 담장길을 걷다보니 격조 높은 선비촌의 골목길을 거니는 것 같다.

우리는 함열현관아터를 지나 함라산 골짜기로 접어든다. 산길로 접어들자 산세도 부드럽고 울창한 송림이 그윽하여 걷기에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함라재를 넘는다. 함라재는 금강변의 웅포와 평야지대인 함라를 잇는 가장 짧은 고개다. 이 고개는 금강을 따라 들어온 진귀한 상품과 함라의 평야지대에서 생산된 농산품을 지게에 지고 넘었던 고개다.

함라재를 넘어서 함라산 7부 능선을 가로지르는 임도를 따라서 간다. 우리는 평탄한 임도를 따라 산보하는 기분으로 걷는다. 각박한 도시생활을 하다가 도회지를 벗어나 자연 속 숲길은 걷다보면 사람들의 마음도 어느새 자연의 질서에 동화되어 포근해진다.

보물 제825호 보광전 불상 위 닫집에는 섬세하게 운룡이 조각되어 아름답다.

임도를 걷다보면 응달진 곳에 하얗게 눈이 쌓여 있고, 양지바른 곳에는 흙길이 드러난다. 눈길과 흙길이 교차되는 모습을 볼 때면 마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이런 길을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는 모습이 훈훈해 보인다. 산자락에 기대어 마을이 자리를 잡고, 곰개나루라 불리는 웅포가 금강과 잘 어울린다.

농로를 따라 입점리고분군으로 향한다. 익산시 웅포면 입점리 새터마을 위쪽으로 올라가니 낮은 야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에 입점리고분들이 터를 잡고 있다. 21기에 이르는 입점리고분군에서는 금동관대, 금동관모, 금동신발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됐다. 입점리고분은 5세기 중엽 익산지역의 유력한 세력집단의 무덤으로서 익산지역의 백제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입점리고분 앞 고분전시관에는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과 여러 고분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입점리 마을 앞을 지나자 함라산 둘레길은 논 가운데로 난 농로를 따른다. 논길을 한 구비 돌아가니 금강의 제방이 나온다. 금강둑에 설치된 자전거도로를 신나게 달리는 사람들이 강바람에 휘날린다. 제방으로 올라서니 강물이 잔잔하다. 금강하굿둑에 막혀 커다란 호수가 돼버린 금강하류에서는 물 흐름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함라산 7부 능선을 가로지르는 임도숲길은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기 좋은 길이다.

금강변에 자리를 잡은 웅포에는 곰개나루라고 하는 포구가 있었다. 지금이야 드나드는 배가 거의 없지만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고깃배가 드나들어 이곳에 객주도 많았다고 한다. 이곳 웅포는 고려 말에는 최무선장군이 왜군을 물리쳤던 진포대첩의 현장이기도 하다.

나룻터를 지나니 오른쪽 언덕 위에 몇 그루의 아름드리 당산나무와 함께 덕양정이라는 정자가 운치있게 서 있다. 강변에서 잠시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덕양정이라는 현판이 붙은 팔각정자가 금강을 내려다보며 행복해한다. 지금이야 옛 금강의 모습이 많이 변해버렸지만 덕양정에서 보는 금강은 마치 곰이 새끼를 품고 있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지명을 곰 웅(雄)자를 써서 웅포(雄浦)라고 했다. 이곳 웅포 덕양정은 금강 하구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볼 수 있는 일몰명소이기도 하다.

덕양정 위쪽 언덕 위에는 금강정이라 불리는 정자가 앉아 있다. 금강정에 올라서니 덕양정과 금강이 어울린 모습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이렇게 정자 하나가 들어섬으로써 웅포의 풍경은 한껏 격조가 높아졌다. 웅포 위쪽으로는 활처럼 휘어진 강변과 강 주변의 산들이 포근하다.

웅포 언덕 위에 있는 금강에서 본 덕양정과 금강의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강변길을 걷는데 강물 위에 부여 쪽의 낮은 산봉우리들이 강물에 비쳐 또 하나의 산을 만들어낸다.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과 충청남도 부여군 양화면을 잇는 웅포대교가 강물위에 떠 있고, 강변에는 빛바랜 갈대가 바람에 나부낀다. 강변길을 걷다가 숭림사로 가기 위해 함라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낮은 산줄기 아래로 농경지가 펼쳐지고, 산자락에는 마을의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숭림사 골짜기를 따라가는데, 도로를 걷던 지금까지와 달리 조용하고 그윽하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 우리를 맞이하더니 ‘함라산숭림사’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이 등장한다. 일주문을 통과하자 작은 개울 건너로 숭림사가 모습을 드러내준다. 높지는 않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전형적인 산사를 이루고 있는 숭림사는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집처럼 포근하다.

대부분의 건물이 맞배지붕을 하고 있고, 건물도 크지 않아 권위적이지 않고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진다. 숭림사 당우들을 받치고 있는 뒤편 산비탈에서는 적송 숲이 청신한 기운을 내뿜어준다. 숭림사는 익산 미륵사와 같은 때에 세워진 절로 나라의 원찰이었던 미륵사와는 달리 이 지역 사람들의 정신적인 귀의처 역할을 했다고 한다.

보물 제825호로 지정된 보광전에는 지혜의 빛으로 세상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고, 불상 위에는 섬세하게 운룡이 조각된 닫집이 아름답다. 숭림사 일주문을 나서는데 절집들이 고향집 어머니가 그랬듯이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준다. 세상살이가 힘들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힘내라고 일러주는 듯하다.

※여행쪽지

▶익산둘레길은 익산시 외곽인 함라면과 웅포면, 금마면 일대를 걷는 길로 총 67.9㎞에 3개 코스로 이루어져있다

▶그중 1코스를 함라산 둘레길이라고도 하는데, 함라파출소-함라재-입점리고분군-웅포곰개나루-숭림사-함라파출소까지 23.9㎞로 7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 : 서해안고속도로 군산IC → 군산방향 607번 지방도로 성산면소재지에서 27번 국도를 따라 좌회전 → 축산리에서 711번 비장도를 따라 좌회전 → 함라면 함라파출소

▶익산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함라면 소재지로 가는 시내버스가 20-30분 간격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