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꼬리 3년 묻어도 황모 안 된다

박연오
경제부장

2016년 02월 29일(월) 19:57
오는 20대 총선에 적용될 4·13 총선 선거구 획정안이 담긴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를 통과, 오늘 본회의 상정을 목전에 두면서 말 많던 ‘총선 그라운드’가 일단락됐다. 지난해 7월 획정위가 출범한 점을 고려할 때 무려 7개월만이다. 여야간 지리멸렬한 이해관계 끝에 도출된 획정표는 큰 틀에서 그동안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특히 선거구별 인구편차(2대 1)을 맞추기 위해 5개 지역구에서 구역조정이 이뤄졌고, 12개 지역에서는 자치 구·시·군 경계가 허물어지는 이른바 게리맨더링(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에게 유리한 자의적 선거구 획정) 현상도 야기됐다.

문제는 입법기관의 구성원으로써 법을 더욱 준수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법을 무시했다는 사실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4년 10월 30일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회의원선거제도의 인구편차에 문제가 있다며 공직선거법 관련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사회적 혼란을 우려해 지역주민의 인구편차 기준을 3대1 이하에서 2대1 이하로 적용토록 했다. 투표가치의 평등은 국민주권주의의 출발점인 만큼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보다 우선해야한다는 점이 헌법재판소의 취지였다.

이때 헌법재판소는 공직선거법 개정시한을 2015년 12월 31일로 정했다. 따라서 국회는 2015년 12월 31일까지는 지역주민의 인구편차를 2대1 이하로 하는 지역선거구획정을 확정해야 했다. 그러나 두 달 동안이나 그 책무를 이행하지 못하다 선거일이 임박해오자 창졸간에 처리를 해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입법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렇게 마음대로 해도 되는지, 그래도 부끄럽지 않은지….

바로 이게 현 19대 국회의 단면이다. 19대 국회는 여러 측면에서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듣고 있다. 최근 쟁점법안을 놓고 벌이는 여야의 하릴없는 싸움은 기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을 가일층 더했다. 느닷없는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인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47년 만에 등장했다. 마치 무슨 대단한 기록에라도 도전하듯 더민주당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시간을 늘려가며 무제한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마치 지난해 상영된 국내 영화 ‘어셈블리’를 모방한 듯한 느낌 속에, 여당은 “국회가 무슨 기네스북 도전장이냐”며 비난으로 맞서는 형국이다.

이러다 보니 국민 여론은 현역 의원들에게 등을 돌리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여론기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4월 총선에서 지역구 현역 의원에게 투표하겠다는 응답은 22.2%에 그쳤다. 반면 현역 의원이 아닌 다른 후보에 투표하겠다는 응답이 52.4%로 집계됐다. 현역 의원과 맞붙을 상대 후보가 정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나온 유권자의 이 같은 선택은 정치권이 얼마나 불신을 당하고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그래서 “청치인의 말은 믿을 수 없고, 개 꼬리 3년 묻어놔도 황모 안 된다”고들 하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한국개발연구원이 발표한 ‘사회적 자본 실태 종합조사’에 따르면, 전국 1천500명 성인으로부터 우리 사회 각 부문의 신뢰도를 0점에서 10점 만점 기준으로 점수를 받은 결과 국회와 정당에 대한 평가 점수는 2-3점에 불과했다. 사회 전반의 신뢰도 평균(4.8점)에 크게 못 미친다.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도 점수가 4점인 점을 감안하면, 정치권을 바라보는 일반 국민의 시선이 얼마나 싸늘한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오죽하면 국민들 사이에서 “19대 의원들은 한 명도 뽑지 말아야 한다.”고들 하겠는가. 기실 국민들은 “누가 국회의원이 되든 뭐가 달라지겠냐”며 사실 별 관심도 없다. 지금과 같은 행태라면 다음 국회라고 해서 별반 꼴이 달라지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국민들은 노무현 정권을 이명박 정권으로, 이명박 정권을 박근혜 정권으로 교체시켰다. 그러나 정권만 바뀌었지, 정작 그 어느 정치세력도 제대로 바뀌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그러다 보니 개혁과 변화를 선거 때마다 부르짖게 되고, 해공 신익희 선생의 “못 살겠다 갈아보자”의 구호 대신 “바꿔”를 선거 때마다 외치는 것이다.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을 뽑는 제20대 총선에 전국적으로 1천542명이 예비후보 등록을 마쳐 무려 6.3대 1의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3선 이상 중진 의원 50%, 초·재선 의원 30%를 정밀 심사에 포함시킨 뒤 이 중 일부를 공천에서 탈락시킨다고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현역 의원을 교체하거나 정치신인 아무나를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당선횟수가 중요하지 않다. 인물됨을 갖추고, 진정 국민을 위할 줄 아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미국의 작가 ‘제임스 클라크’는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훌륭한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고 했다. 지금 한국사회는 ‘새로운 정치’로 표현되는 정치개혁을 갈망하고 있다. 그 갈망을 진정한 개혁으로 코페루니쿠스적인 대전환을 시키려면 유권자들이 단호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선거란 누구를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다’고 했던가. 최소한 ‘패거리정치’를 조장하는 정치지도자와 부도덕한 함량 미달의 국회의원만은 꼭 배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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