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는 자은도를 그리워하고, 자은도는 증도를 부른다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자은도 해넘이길

2016년 03월 01일(화) 18:57
둔장해수욕장 앞바다의 할미섬과 할아비섬은 자은도 해넘이길이 품고 있는 최고 절경이다.
자은도는 88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신안군에서도 지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우리나라 섬 중에서도 14번째로 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우리는 자은도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압해도로 향한다. 무안을 지나 2013년 12월 개통된 김대중대교를 건너니 압해도다. 무안과 목포 근해에 떠 있는 압해도는 무안과 목포 양쪽으로 두 개의 연육교가 놓여 있다.

압해도 송공항을 출발한 배는 30분 만에 암태도 오도항에 도착한다. 오도포구 옆으로는 2019년 개통 예정인 압해도와 암태도를 연결하는 연도교 공사가 한창이다. 암태도에서는 자은도와 팔금도가 연결되어 있고, 팔금도에서 안좌도가 연도되어 있어 압해도-암태도 교량이 완공되면 압해도·암태도·자은도·팔금도·안좌도가 모두 육지와 연결된다.

자은도로 향하는 차창 밖으로는 갯벌과 농경지가 펼쳐진다. 암태도의 농경지를 바라보니 1923년 8월부터 1924년 8월까지 1년 간 치열하게 전개된 암태도소작쟁이가 떠오른다. 암태도를 비롯해 자은도, 심지어 전라북도 고창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농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대지주가 소작료를 7할 내지 8할로 올려 강제징수하려고 하자 이에 반발한 소작인들이 일으킨 쟁의가 바로 암태도소작쟁이다.

우리를 태운 택시는 암태도를 지나 어느새 암태도와 자은도를 잇는 은암대교를 건넌다. 자은도로 들어서니 자은도의 주산인 두봉산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자은도는 섬이지만 다른 섬에 비해 농경지가 많고 토질이 비옥하다. 비옥한 토지에서는 품질 좋은 마늘과 대파, 양파가 생산된다.

우리는 송산정류장 앞에서부터 ‘해넘이길’을 걷기 시작한다. 한운리로 가는 도로를 따라 낮은 둔덕을 넘으니 농경지 너머로 한운해변의 소나무 숲이 바다를 가린다. 밭에서는 마늘과 대파가 추운 바람을 이겨내며 겨울을 나고 있다.

한운선착장 입구에 소나무 두 그루가 일주문처럼 서 있다.
작은 선착장이 있는 한운해변으로 나가는데 아름드리 소나무 두 그루가 일주문처럼 서 있다. 소나무 문을 통과하니 시야가 확 트이면서 바다가 펼쳐진다. 넓지 않은 해안 백사장 뒤로는 갯벌이 드넓게 자리를 잡고 있다. 바다 멀리 증도가 고개를 내밀고 바닷바람은 비릿한 갯내음을 실어다준다. 한운해변에 운치를 더해주는 것은 가까운 거리에 떠 있는 옥도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섬이다.

한운해변을 감싸고 있는 소나무 숲을 따라 걷는데, 파도소리가 바람소리와 함께 화음을 맞춘다. 한적한 겨울바다는 쓸쓸하다. 쓸쓸한 겨울바다는 마음속에 여백을 만들어준다. 이런 여백이 마음을 살찌운다. 나는 쓸쓸한 겨울바다가 좋다.

바다 건너 북쪽에서 증도가 손짓한다. 증도를 가장 가깝게 볼 수 있는 자리에 전망대도 만들어놓았다. 증도는 자은도를 그리워하고, 자은도는 증도를 부른다. 두 섬은 서로를 그리워하기에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

산허리를 돌아가는 임도를 따라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다보면 파도가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고 바람은 살며시 가슴을 파고든다. 달려드는 파도를 해변 바위들이 가로막고, 파도는 바위를 넘어보려고 애쓰지만 결국 물거품만 내고는 다시 바다로 돌아가곤 한다. 불가사리처럼 바다로 뻗어있는 해변은 기암괴석을 이루다가 때때로 모래사장을 만들어 파도를 포근하게 맞아들이기도 한다.

3㎞에 이르는 둔장해수욕장, 넓은 백사장과 포근한 분위기가 매력을 끈다.
바다와 섬이 만나 이룬 신비경을 감상하며 걷는 발걸음에 행복한 기운이 넘쳐난다. 이런 길은 발이 움직이는 대로 천천히 걷는 게 좋다. 결국 내가 걷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린다. 이렇게 무심히 걷다보니 둔장해수욕장 앞바다가 펼쳐진다. 둔장해수욕장을 감싸고 있는 소룡산과 소두리도, 두리도가 다정한 형제처럼 나란히 솟아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둔장해수욕장 앞바다에 떠 있는 할미섬과 이름 없는 작은 섬이다. 두 섬은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의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를 닮았다. 할미섬 옆 무인도를 할아비섬으로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할아비섬은 썰물 때면 물길이 열려 둔장해변과 연결된다. 할미섬 뒤에서는 두리도와 소두리도가 바다에 붕긋 솟아 있다.

해질녘이면 아기자기하게 솟아있는 섬들 사이로 넘어가는 해를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 그래서 이 길을 자은도 해넘이길이라고 불렀다. 3㎞에 이르는 백사장이 타원을 그리고 있는 둔장해수욕장도 한눈에 바라보인다. 체험학습장 해변 앞에 서니 할미섬과 할아비섬이 정면에서 수문장마냥 서 있다. 해변은 둔장해수욕장으로 이어지고, 해변가 솔숲 아래로 드넓게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완만한 모래사장에 바닷물이 들락거리고, 푸른 바다를 부드러운 산줄기가 감싸준다. 그리고 소두리도·두리도·할미섬·할아비섬 같은 작은 무인도들이 망망대해를 가로막아 포근한 느낌을 준다.

한운해변 앞바다에는 작은 섬 옥도가 떠 있어 운치를 더한다.
둔장해변은 사월포까지 이어지고, 사월포 뒤로는 소룡산이 솟아있다. 소룡산은 바다 쪽에 우뚝 솟아있어 섬처럼 보인다. 우리는 해수욕장을 감싸고 있는 솔숲길로 들어선다. 그동안 임도를 따라 걷다가 숲속 오솔길을 걷게 되니 분위기가 훨씬 그윽하고 기분도 상쾌하다. 숲길을 걷다보면 나무 사이로 푸른 바다가 자기존재를 알려오고, 해풍이 다가와 얼굴에 부딪친다.

솔숲길을 벗어나니 사월포 입구 차도다. 여기에서 좁은 차도를 따라 두모마을 정류장까지를 자은도 해넘이길 공식 코스로 지정을 해놓았지만, 우리는 사월포로 향한다. 소룡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조그마한 포구인 사월포에는 다섯 채 정도의 민가가 둔장해수욕장을 바라보고 있다. 사월포 근처 바다는 과거 유명한 새우잡이 어장이었다. 사월포는 20여 년 전만 해도 파시가 설 정도로 호황을 누리던 곳인데, 지금은 예전 명성에 미치지 못한다.

사월포 앞에는 작은 모래사장이 있고, 모래사장 옆에는 기암괴석이 있어 눈길을 끈다. 기암괴석을 통해서 본 둔장해수욕장과 주변 바다는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우리는 여기에서 걷기를 마치고 포구에 있는 소박한 횟집에서 겨울철에 가장 맛있는 숭어회에다 시원한 맥주로 회포를 푼다. 숭어회에 맥주 한 잔 마시고 바라보는 바다가 운치를 더해준다. 순간 행복한 기운이 온몸을 파고든다.

※여행쪽지

▶자은도 해넘이길은 자은도 북서쪽 해변을 따라 걷는 길로 송산정류장-한운리-한운선착장-둔장해수욕장-두모체육공원-사월포입구-두모정류장까지 12㎞에 이른다. 3시간 소요. 난이도 : 하
▶송공여객선터미널에서 암태도 오도항으로 가는 여객선이 1시간 간격으로 운항된다. 30분 소요. 대체로 매시 정각에 출발하지만 계절별로 약간씩 차이가 있으므로 확인이 필요하다.
▶자은도 해넘이길이 끝나는 두모마을 근처에는 식사할 만한 곳이 두 군데 있다. 사월포에 있는 사월포횟집(061-271-3233)은 주인이 인근바다에서 직접 잡은 싱싱한 활어회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두모체육공원 뒤편에 있는 해송가든(061-271-8857)에서는 토종닭코스요리, 토종닭백숙, 오리주물럭, 옻오리 등을 취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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