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를 그리워하는 섬, 낙월도에서 만난 풍경들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낙월도 둘레길

2016년 03월 15일(화) 19:09

재계미해변의 고운 모래가 아기자기한 바위들과 어울려 운치를 더한다.

낙월도 가는 배를 타기 위해 향화도선착장으로 향한다. 향화도선착장에 도착하니 꼬막껍질을 엎어놓은 듯 조그마한 목도와 닭섬이 바다에서 재롱을 부린다. 닭섬 남쪽에서는 무안군 해제반도가 손짓한다. 향화도와 닭섬, 해제반도 안쪽으로 함평만이 거대한 호수처럼 펼쳐진다.

낙월도 가는 배에 오른다. 육지는 점점 멀어지고 함평과 영광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군유산과 월암산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닭섬을 지나자 멀리서 낙월도가 대각씨도와 소각씨도 뒤에서 살짝 고개를 내민다. 낙월도 북서쪽에서는 송이도가 희미하게 자기존재를 알려온다. 낙월도가 가까워질수록 내륙은 점점 멀어지고 해제반도와 인접해 있는 지도와 임자도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길게 스카이라인을 형성한다.

어느덧 우리를 태운 배는 상낙월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상낙월도 선착장에 도착하니 섬은 소박하고 조용하다. 상낙월도에 올라서자 ‘새우의 고장 상낙월도’라 쓰인 표지석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달이 지는 쪽에 있다고 해 낙월도(落月島)라 부르는 이 섬은 조선시대에는 진월도라 했다.

낙월도 둘레길은 걷는 내내 바다가 시야에서 떠나지 않는다.

낙월도하면 새우젓이 생각난다. 1970-80년대 낙월도 주변 바다는 새우의 황금어장이었고, 낙월도는 인근 임자도 전장포와 함께 전국 새우젓 생산량의 50%를 차지했다. 목돈을 쥐어보겠다고 ‘멍텅구리배’를 탔던 사람들은 고된 노역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부표를 타고 탈출하다가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기도 했다. 1987년 7월에는 태풍 셀마가 강타하면서 무동력선이었던 멍텅구리배 12척이 난파돼 53명의 어부가 사망하기까지 했다.

멍텅구리배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새우를 잡는 어선으로 낙월도의 주요 소득원이었으나 안전문제와 선원들에 대한 비인간적 처우 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정부는 1995년 멍텅구리배를 모두 폐선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배 한 척이 100명을 먹여 살렸다는 멍텅구리배가 폐선된 이후 낙월도의 새우잡이도 쇠락하고 말았다.

하낙월도는 길이 굽어질 때마다 새로운 멋을 보여준다.

상낙월도 선착장에서 북동쪽 임도를 따라 낙월도 둘레길을 걷기 시작한다. 겨울바람 속에서도 낙월도에는 봄기운이 완연하다. 길가에는 드문드문 유채꽃도 피어 있고, 막 대지를 뚫고 나온 풀들이 주뼛주뼛 고개를 내민다.

땅재로 넘어가는 재계미 삼거리를 지나니 몽돌로 이뤄진 재계미 해변이 내려다보인다. 우리는 잠시 재계미 해변으로 내려선다. 300m 길이의 해변에는 어른 주먹 크기의 몽돌이 깔려 있고, 바닷물과 맞닿는 곳에는 결이 고운 모래가 파도를 맞이한다. 고운 모래는 아기자기한 바위들과 어울려 운치를 더한다.

둘레길은 둔덕 같은 야산 비탈을 돌아가고, 후박나무 같은 아열대식물들도 자주 눈에 띈다. 낙월도 둘레길은 걷는 내내 바다가 시야에서 떠나지 않는다. 길의 방향이 서쪽으로 바뀌자 주변의 풍경에도 변화가 온다. 북서쪽으로 송이도·소각이도·목섬·대각이도가 지척에서 손짓하고, 송이섬과 대각이도 사이로 안마도·오도·석만도 등 안마군도들이 멀리서 고개를 내민다.

하낙월도에서 본 상낙월도. 두 섬은 연도교를 통해 하나가 된다.

중간 중간 바다풍경을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데크 전망대를 만들어놨다. 도란도란 얘기하며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파도가 말을 걸어오면, 사람들은 잔잔한 미소로 파도를 맞는다. 길을 걷는 사람들이 주변 자연과 하나가 된다.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는 오랜 세월 파도와 부딪치면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바위들이 자신의 형상을 뽐낸다.

작은 모래사장을 이루고 있는 큰갈마골해수욕장을 만난다. 해수욕장 옆에서는 바다를 향해 가늘게 300m 정도를 뻗어나간 나언머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큰갈마골해수욕장은 백사장이 100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해수욕장이지만 모래가 곱고 양쪽으로 산줄기가 감싸줘 포근하고, 정면으로 적당한 거리에 송이도·소각이도·대각이도 같은 섬들이 있어 쓸쓸하지가 않다.

큰갈마골해수욕장 입구를 지나면 재계미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땅재에 도착한다. 후박나무가 숲을 이룬 경사지 계단을 올라가니 사방으로 전망이 트인다. 무엇보다도 임자도와 지도, 어의도, 해제반도가 하늘과 바다를 양분하면서 풍경화 한 폭을 만들어낸다.

낙월도 둘레길은 기암괴석 위로 나 있다.

상낙월도는 가느다란 고구마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능선길을 걸을 때는 바다를 드넓게 바라볼 수 있다. 하낙월도가 지척에 와 있고, 우리는 목책이 안내하는 부드러운 능선길을 여유있게 걷는다. 상낙월도와 하낙월도를 이어주는 연도교를 내려다보는 순간 오작교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서로를 그리워하던 두 섬은 저 다리를 통해 하나가 됐다.

우리는 상낙월도에서 340m 떨어진 하낙월도로 가기 위해 진월교를 건넌다. 하낙월도에 들어서서 곧바로 오른쪽 산비탈로 올라선다. 하낙월도에서 보는 상낙월도의 모습은 하낙월도를 향해 기어오는 거북 같아 보인다. 이런 모습의 상낙월도가 푸른 바다와 주변의 작은 섬들과 어울린 모습이 장관이다.

낙월도 동쪽해변은 갯벌이 많고, 서쪽해변은 절벽이 많아 사람이 사는 마을은 동쪽 산자락에 둥지를 틀었다. 기암절벽이 아름다운 해변에 작은 몽돌밭이 있어 눈길을 끈다. 당너메라 불리는 곳이다. 하낙월도는 길에서 바라보는 해변의 기암괴석이 운치가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당너메 해변을 지나서 뒤돌아보니 지날 때는 보이지 않았던 해변의 바위들이 무뚝뚝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다가온다. 산봉우리와 해변으로 구불구불 나있는 둘레길은 물이 흘러가듯 유연하다. 주변 풍경은 길이 구부러질 때마다 다른 멋을 보여준다. 하낙월도 남쪽으로 접어들자 주변바다는 임자도와 지도, 해제반도가 주인공이 된다. 하낙월도는 길쭉하게 뻗어 임자도에 닿아보려고 하지만 바다에 가로막혀버리고 만다. 하낙월도에서 임자도까지는 불과 6㎞에 불과하다.

산비탈을 한 구비 돌아가니 작은 백사장으로 이뤄진 장벌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인다. 조그마한 해수욕장 옆을 낮은 언덕이 감싸주고 그 끝에 기바위라는 이름을 가진 바위가 화룡점정을 이룬다.

해수욕장을 감싸고 있는 언덕 뒤로 칠산바다가 펼쳐지고, 육지의 산들은 바다너머로 아득하다. 이런 풍경을 즐기며 걷는 부부의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조용히 귓가에 와 닿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다시 진월교를 건넌다. 낙월면 소재지인 상낙월리는 하낙월리에 비해서는 훨씬 큰 마을이지만 해변 길가에서는 몇 사람의 주민이 그물을 손질하고 있을 뿐 섬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상낙월도선착장에 도착하니 아침에 우리를 태워다준 섬사랑 12호가 기적소리를 내며 선착장으로 들어온다.

※여행쪽지

▶낙월도 둘레길은 상낙월도와 하낙월도 해변을 따라 걷는 길로 상낙월항→재계미→땅재→진월교→당너메→장바레쉼터→하낙월리→상낙월리→상낙월도선착장까지 11㎞로 4시간 정도 걸린다.
▶낙월도 가는 배 시간 : 영광군 염산면 향화도선착장에서 낙월도로 가는 배가 하루 3회 운항된다. 향화항→상낙월항( 1시간 10분 소요) 07:30, 10:30, 14:30(하절기 15:30). 상낙월항→향화항 08:40, 11:30, 15:30(하절기 16:30)
▶낙월도에는 식당이 없다. 향화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설도항에 횟집이 몇 군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