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물 흐르고, 물따라 샛길이 흐르고, 길따라 사람이 걷는다 [장갑수와 함께 걷는길]대청호 오백리길 1구간 (두메마을길)

2016년 03월 29일(화) 18:57

대청호에는 접시를 엎어놓은 것 같은 작은 섬도 떠 있다.

금강은 전라북도 장수의 신무산 기슭 뜬봉샘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흘러간다. 장수와 진안 땅을 적시며 흐르는 금강은 진안 용담호에 이르러 물길을 멈춘다. 용담호에 머물던 금강은 무주 땅으로 흘러들어 여러 골짜기의 맑은 물을 모아 충청남도 금산 땅으로 이동한다. 금산을 지난 금강은 충청북도 영동과 옥천을 지나면서 또 다시 대청호라는 큰 호수를 만난다.

대청호오백리길은 아름다운 호반을 따라 이어진다.

금강은 백제의 고도 공주를 지나 부여 땅을 적시면서는 백마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금강은 서천과 군산을 가르면서 황해로 흘러들면서 장장 407.5㎞의 대장정을 마친다. 완만하게 굽이치며 흐르는 모습이 비단과 같다고 해서 비단 금(錦) 자를 써서 금강(錦江)이라 불렀다.

사람으로 치자면 허리에 해당하는 금강 중류에 대청호가 자리잡고 있다. 대전시와 충청북도 청주시·보은군·옥천군에 걸쳐 있는 대청호는 저수량 기준으로 남한에서 소양호와 충주호에 이어서 세 번째로 큰 호수다. 1980년 대청다목적댐이 완공되면서 거대한 인공호수로 태어난 대청호는 대전과 청주의 첫 글자를 따서 이름 지어졌다.

대청호는 첩첩이 둘러싸인 산봉우리들과 산줄기를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물길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아름다운 대청호에는 호반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대청호 오백리길’이 조성돼 있다.

신탄진에서 금강을 거슬러 대청댐으로 향한다.

골짜기와 산줄기에 따라 호수의 모양이 달라진다.

한동안 대청호에 머물렀던 금강물이 댐을 빠져나와 원래의 강줄기를 따라 유유히 흘러간다. 대청호 오백리길을 걷기 위해 대청댐 물문화관에 도착했다. 물문화관은 대청댐 바로 위쪽 광장에서 대청호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자리를 잡았다.

물문화관 옆 데크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서 대청호오백리길 걷기가 시작된다. 길은 호젓한 야산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한다. 전망이 트이는 곳에서는 대청호가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고, 호수주변의 첩첩한 산봉우리들은 풍경의 깊이를 더해준다.

능선길은 계속되고 나무 사이로 대청호의 푸른 물결이 출렁인다. 대청호에 바짝 다가서자 호수는 자신의 모습을 스스럼없이 보여준다. 잔잔한 호수는 산봉우리들에 기대고, 주변의 산은 푸른 호수를 감싸 안는다. 수평을 이룬 호수는 붕긋붕긋 솟은 산과 만나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대청호반에 둥지를 튼 이촌마을, 호수가 앞마당처럼 펼쳐진다.

우리는 숲길을 따라 지명산으로 오른다. 산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둔덕 수준의 높이라 힘들지 않게 올라간다. 나무 사이로 청남대가 바라다 보인다.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라고 하는 청남대는 1983년 문을 열어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에게 돌려줄 때까지 대통령 전용별장으로 이용됐다.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청남대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이 산에는 미호동산성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길 아래로 보이는 돌무더기들이 옛 산성의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가파른 산비탈을 내려서니 호숫가에 닿는다. 나뭇가지가 호수 위에 가지를 뻗었고, 햇빛에 비친 호수는 금빛으로 반짝인다. 호수 가운데에는 접시를 엎어놓은 것 같은 작은 섬도 하나 떠 있다. 호숫가 산자락이 작은 섬에 손을 뻗어보지만 물길에 막히고 만다.

보조댐 다리를 건너 도로를 따라서 간다. 2차선 도로는 좁은 마을길로 바뀌고, 길 아래로 20호쯤 되는 이촌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울긋불긋한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촌마을은 낮은 야산에 감싸인 채 대청호를 바라보고 있다. 이촌마을에서 또 다시 작은 언덕을 넘으니 강촌마을이다. 이촌마을은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인데, 도로가에 위치한 강촌마을은 전원주택과 식당, 카페 같은 시설이 들어서 있다. 강촌마을 앞에서도 호수물이 출렁인다.

민평기가옥, 대청댐이 건설되면서 옮겨온 고택이다.

2차선 도로와 마을길이 만나는 삼정동삼거리에 도착하니 고즈넉한 한옥 한 채가 기다리고 있다. 민평기가옥이다. -자형 문간채를 들어서니 ㄱ자형 안채가 단출하게 앉아 있다. 민평기가옥은 삼정동 대청호반에 자리 잡고 있었던 전통가옥이다. 조선 말 고종황제의 승지를 지낸 민후식이 여주에서 삼정골로 이주해 오면서 이 집을 지었다.

삼정동삼거리에서부터는 2차선 도로를 따라서 간다. 도로는 자동차가 자주 다녀 걷기에 불편했는데, 얼마가지 않아 도로 아래쪽에 데크길이 놓여있다. 데크길을 가다가 잠시 오솔길을 돌아서가기도 한다. 길 아래로는 대청호가 잔잔하고 고요하다. 밭가에는 산수유, 매화가 막 꽃망울을 터뜨리려한다. 도로에는 자동차가 다니지만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들도 꽤 많다.

도로변 벚나무 가로수는 4월이면 벚꽃터널을 이뤄줄 것이다. 도로 옆 데크길을 걷다보면 잠시 쉴 수 있는 간이휴식공간도 있다. 호수 쪽으로 길게 뻗어 나온 건너편 산줄기 사이로 깊숙이 들어온 호수는 강줄기 같아 보인다.

갈전동 마을과 갈전동삼거리를 지나 다시 호숫가로 내려선다.

호숫가에서는 길고 푸른 호수가 멀리까지 바라다 보인다. 골짜기와 산줄기 모양에 따라 호수물이 담겨 호수의 모양을 만든다. 물은 담기는 그릇에 따라 자신의 모양이 된다. 그러면서도 물은 절대로 자신의 본질을 잃지는 않는다. 높은 곳으로 향하지도 않고 낮은 곳으로 임하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놀라운 유연성과 넓은 포용력을 가졌다.

나무 사이로 호수가 출렁이는 숲길을 따라가는 길은 호젓하고 그윽하다. 나도 모르게 자연의 일부가 된다. 노랑색 ‘대청호 오백리길’ 리본이 길안내를 해준다. 이윽고 이현동 생태습지에 도착한다. 이현동 생태습지는 억새를 테마로 2013년에 조성된 생태습지공원이다. 억새습지, 미나리·수련·꽃창포 등이 자라는 수생식물학습장, 산책로와 광장으로 이뤄져 있다.

이현동 생태습지 위쪽에는 대청호 두메마을이 자리를 잡고 있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산골마을이었던 이 마을은 댐 건설로 주변에 물이 차오르면서 호반마을이 됐다. 10년 전에 귀농했다는 생물교사 출신의 여성 마을이장이 원주민, 귀농인들과 함께 체험마을 프로그램을 알뜰하게 운영하고 있었다. 마을은 조용하고, 담벼락에서는 홍매화가 꽃망울을 막 터뜨리려 한다. 두메마을에도 이미 봄이 찾아와 있다.

※여행쪽지

▶대청호오백리길은 오백리에 이르는 대청호반을 한 바퀴 도는 길로 21개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청호오백리길 1구간은 대청댐물문화관에서 시작하여 숫고개→지명산(미호동산성)→대청댐보조여수로→이촌마을→삼정동삼거리→갈전동삼거리→이현동억새밭(대청호두메마을)까지 11.5㎞로 5시간 정도 걸린다.
▶난이도 : 보통
▶가는 길 : 경부고속도로 신탄진IC→신탄진로→신탄진 역 앞을 지난 사거리에서 대청댐 방향으로 우회전→대청로를 따라 직진→대청댐(대청댐휴게소) 주차장
▶대청호 두메마을에서 차량으로 5분 거리에 있는 갈전동삼거리 갈밭식당(042-932-3872)의 쏘가리탕(2인 기준 6만원), 빠가탕(2인 기준 4만원), 메기탕(2인기준 3만원)이 인기 있다. 갈밭식당은 대청호오백리길 1구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