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서의 선거 한유진 문화기획자

2016년 04월 07일(목) 18:58

내용보다는 율동 선거, 공약보다는 이미지 메이킹.

남광주 시장 인근 쭈꾸미 집에서 막걸리 한 잔을 하기 위해 모처럼 친구들과 만나는 날,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 꽉 막혀서 보니 한 후보가 선거 운동중이다. 이런 저런 토론회에서 뵌 적도 있는 분이지만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로고송을 크게 틀어놓고 운동원들이 줄지어 서서 같은 색깔 옷을 입고 음악에 따라 율동을 하면서 그 분 이름을 외친다. 선거 운동원 중 한 분이 그 일대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날의 풍경.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이었지만 선거 캠프는 쉬지 않고 바쁘게 도는 중이었다. 술이 한 순배 돌았을 즈음, 앞서의 후보 사모님이 운동원들과 함께 쭈꾸미 집에 인사를 하러 들렀다. 테이블마다 돌면서 명함을 돌리고는 식사를 하려는지 우리 건너 테이블에 막 자리를 잡았는데, 이어서 다른 후보가 인사 하러 왔다. 우리 중 누군가가 속삭였다.

- 참 난감하게 됐군.

그런데 두 진영에서는 우려와는 다르게 반갑게 인사 하면서, “애쓰십니다. 선전하십시오.”라고 격려를 했다. 세련된 매너였다. 아까 말을 꺼냈던 친구는,

- 하긴 페르소나가 저 정도는 돼야지 정치 하지.

하고 말했다. 그 얘길 듣고 있던 다른 친구가 은근한 말투로 말했다. 아내가 의원이라서 비슷한 처지(?)에 놓인 적이 있었으니 이 풍경에 대한 색다른 견해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 저 역할 쉽지 않아. 낯 선 사람에게 명함 돌리는 것. 근데 왜 가족까지 나서야 하는 걸까? 그 친구 얘기가 맞다. 선거에서 가족은 중요하다. 가족 공동체가 똘똘 뭉쳐서 움직여야 더 건강한 가족처럼 여겨지고 올바른 사회 구성원으로 비춰진다. 가족을 지지하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한 사람처럼 취급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다른 생각을 펼칠 수도 있고 다른 정당을 지지 할 수도 있어야, 더 건강한 개인이 되고 사회 구성원이 될 테니까. 최근 모 후보의 미모의 딸이 화제가 되면서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를 대신해 입법할 사람들을 뽑는 일에서 초점을 흐리는 그런 현상들에 지나치게 대중 쏠림 현상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도 민주주의 축제에 참여하자. 이번에는 경제가 아닌 내 관심과 맞는 공약을 찾아서.

후보 이름을 외치는 로고송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 가는데 우리는 의외로 후보들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후크송처럼 인간의 무의식에 이름만을 새겨 넣는 로고송은 어떤 개연성도 없이 재생된다. 과거의 행적도 모르고 공약도 모르는데 그래도 어디선가 들어봤기 때문에 친밀감을 느껴서 찍는 것이다. 로고송이 노리는 것은 그것이다. 무의식적인 한 표 행사. 그래서 공보물 한 번이라도 읽어보고 투표했으면 하는데, 한 장짜리 공보물도 없이 비례대표를 낸 정당들도 있다. 언론보도도 거대 정당의 활동에만 머물고 군소 정당들에 대해서는 정보를 접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투표용지의 번호 순서를 비롯해 선거의 다양한 측면에서 형평성을 얘기하는데, 그 중에서도 정보의 형평성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4월 13일은 선거일이다. 그러나 8일부터 9일까지 사전투표가 실시되니까 가까운 곳 아무데서나 투표하면 된다. 지방에 있는 분이 서울 출장을 갔다면 그곳에서 해도 좋다. 이번 선거에도 나는 꼭 투표할 것이다. 왜냐? 이 사회의 갑들에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일 테니까. 그리고 나는 나름대로 경제가 아닌 문화에 대한 긴밀한 관심들을 평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