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말해 주는 것을 받아쓰니 한편의 詩가 되었다”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순창·임실 섬진강문학길 (구미교-덕치초등학교)

2016년 04월 26일(화) 19:16
장군목을 지난 섬진강은 용궐산과 벌동산을 감아 돌면서 유유히 흘러온다.
강은 물방울로부터 시작된다. 진안군 백운면 선각산 골짜기에서 방울방울 떨어진 물방물들이 모여 데미샘을 만들었다. 데미샘에 모인 물이 넘쳐흘러 실개천을 이루고, 실개천들이 만나 도랑이 된다. 도랑물은 마을로 내려와 진안의 농경지를 적시며, 여러 골짜기에서 내려온 도랑물과 합류하여 덩치를 키운다. 덩치가 커진 도랑은 섬진강이라는 이름으로 진안 땅을 적시고는 임실과 순창의 산과 들을 굽이돌며 흘러간다.

사람들은 일찍이 섬진강변에 마을을 세우고, 농경지를 일구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하루의 시작도 섬진강과 함께 했고, 하루의 마무리도 섬진강과 함께 했다. 이곳 주민들에게 섬진강은 어머니 같은 존재이고, 하늘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섬진강문학길을 걷다보면 몇 군데의 징검다리도 건너게 된다.
섬진강변의 작은 마을에서 살면서 강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를 써온 시인이 있으니, 그가 바로 김용택 시인이다. 김용택의 시를 낳게 한 섬진강을 따라 걷는 길이 섬진강문학길이다.

순창군 동계면 구미교에 도착하니 어제 내린 비로 강물이 제법 불어나 있다. 구미교 다리 위에 서 있는데 섬진강이 용궐산과 벌동산을 감아 돌면서 유유히 흘러온다. 지나간 겨울, 나무와 풀이 잎을 떨구어버린 사이 외롭고 쓸쓸했던 강은 땅에서 새 풀이 돋고 헐벗은 나뭇가지에 연둣빛 새잎이 돋아나자 활력을 되찾았다. 활력을 되찾은 강물은 촉촉이 내린 봄비 덕분에 춤추는 무희처럼 그 흐름이 경쾌해졌다.

섬진강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는 용궐산은 강물에 얼굴을 씻고 연둣빛으로 화장을 하였다.

용궐산은 연두색 연잎들이 깔끔한 암벽까지 물들여 한 폭의 수채화가 되었다. 강물 위에 놓인 징검다리가 강 건너를 이어준다. 징검다리에 서서 낚시하는 사람도 이미 섬진강이 되었다.

김용택시인이 40여년 전에 심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마을과 자신의 시세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봄을 화사하게 장식하는 것은 봄꽃들이다. 강변 숲길에는 하얗게 꽃을 피운 조팝꽃이 순결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산비탈 곳곳에 핀 산벚꽃은 연두색 바탕에 하얗게 채색을 하였다. 가끔 만나는 연분홍 복사꽃은 화려하기보다는 우아하다. 섬진강가에 핀 꽃들은 스스로 봄꽃축제를 열고 있다. 따스한 바람이 열어준 봄꽃축제는 그 자체가 축복이고, 이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행운이다.

내룡마을 위쪽에는 장군목이 자리를 잡고 있고, 장군목에는 강을 건널 수 있는 현수교가 놓여있다.

장군목은 섬진강 최대 비경지대로 장구목이라고도 불린다. 현수교를 건너 비경을 이룬 장군목 바위지대로 내려간다. 바위지대에는 거대한 요강을 닮은 요강바위가 있다. 높이 2.5m, 길이 4m, 무게 15t에 이르는 커다란 바위에 깊이 2m, 지름 1m 정도 되는 구멍이 뚫려있는 요강바위가 신비하고 오묘하다. 요강바위는 드릴로 잘 다듬은 것처럼 둥그렇고 매끈하다.

김용택시인 생가가 있는 진뫼마을로 건너가는 잠수교가 소박하다.
한국전쟁 때 빨치산 다섯 명이 토벌대를 피해 요강바위 속에 몸을 숨겨 목숨을 건졌다는 얘기며,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이 요강바위에 위에 앉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얘기도 전해오고 있다.

요강바위 옆에는 거북이모양을 한 거북바위도 있어 신비감을 자아낸다. 장군목을 이루고 있는 바위들은 요강바위와 거북바위뿐만 아니라 주변에 널리 깔린 바위들이 섬진강을 더욱 아름답게 해준다. 거인이 걸어 다니면서 발자국을 낸 것 같이 속이 파인 바위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강변 자전거도로를 따라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회룡마을에서 모처럼 논과 밭을 만난다. 마을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섬진강 물길이 회룡마을 앞에서 물돌이동을 이루며 돌아간다. 회룡마을 강 건너 산비탈 높은 곳에는 구담마을이 자리를 잡고 있다. 구담정과 당산나무가 서 있는 둔덕에서 바라보면 휘돌아가는 섬진강의 모습이 아름답다. 이런 풍경을 담아 영화 ‘아름다운 시절’을 찍었다.

장군목 바위들은 거인이 발자국을 낸 것처럼 파여 장관을 이룬다.
강을 건너 회룡마을을 바라보니 조용히 흘러가는 강물소리만 들려올 뿐 마을은 한적하고 고요하다. 잔잔한 강물 위에는 산봉우리와 나무들이 예쁘게 풍경화를 그려놓았다. 강물은 습지에 머물기도 하고, 매끄러운 자갈들과 다정한 친구가 되기도 한다. 김용택시인의 생가가 있는 진뫼마을에서 천담마을-회룡마을-장구목으로 이어지는 섬진강은 자연미가 그대로 살아있어 사람들의 서정적 감성을 자극해준다. 이런 길은 천천히 걸을수록 더 아름답다.

천담마을에 가까워지자 조그마한 들판이 펼쳐지고, 마을은 들판을 앞마당 삼아 평화롭게 앉아 있다. 지금이야 섬진강을 걷거나 하이킹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천담마을이나 구담마을은 좁은 비포장도로에 버스 한 대 들어오기도 쉽지 않은 오지마을이었다.

천담마을을 지나 강변 자갈길을 걷다가 징검다리를 건너간다. 이곳 징검다리도 강물이 넘치지만 신발을 벗고 맨발로는 건널만하다. 강을 건너다가 징검다리에 앉아 강물을 바라본다. 평화롭게 흘러가는 강물에는 억척스럽게 살아온 선조들의 굴곡진 삶이 담겨있다.

천담마을에서 김용택시인의 마을인 진뫼마을까지는 농경지와 민가 한 채 없는 산골짜기를 따라서간다. 진뫼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섬진강을 건너야한다. 김용택시인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이 무수히 건너다녔을 낮고 소박한 다리가 정답다.

낮은 산을 등지고 섬진강을 바라보고 있는 장산리 진뫼마을 앞의 두 그루 느티나무가 새잎을 틔우고 있다. 이 느티나무는 김용택 시인이 27세 때 심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거목이 되었다. 시인은 이 느티나무 아래에서 마을을 방문한 문학기행팀에게 마을에 대한 이야기며 자신의 시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느티나무 안쪽에 시인의 생가가 있다. 시인이 어린 시절 꿈을 키웠고,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시를 썼던 곳이다. 생가 마루에 앉아 있으니 집 앞으로 섬진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낮은 산이 부드럽게 펼쳐진다. “자연이 말해 주는 것을 받아쓰니 시가 되었다” 는 시인의 말처럼 자연과 교감하니 나도 시인이 되는 것 같다.

시인이 근무했던 덕치초등학교에 도착하니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덕치초등학교는 김용택시인의 모교이면서 초등학교 교사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학교다. 운동장가에 서 있는 수십 그루의 벚나무에는 벚꽃이 만개하여 화려하고 예쁘다. 푸른 운동장에 하얀 꽃잎이 군무를 펼친다. 춤추는 꽃비를 맞으며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해진다. 자연과 어린이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이야말로 시인이 되는 길이 아닐까?


※여행쪽지

▶ 섬진강문학길은 김용택시인의 시적 자양분이 되었던 섬진강 상류를 걷는 길로 구미교→장군목→회룡마을→구담마을→천담마을→진뫼마을-월파정-덕치초등학교까지 16㎞ 거리로, 5시간 정도 걸린다.
▶ 가는 길 : 광주-대구고속도로 순창IC→순창IC교차로에서 우회전→기남교차로에서 27번 국도로 좌회전→제일고삼거리에서 24번 국도로 우회전→지북사거리에서 좌회전→운림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1.8㎞ 직진하면 구미교
▶ 임실군 덕치면소재지에서 임실 방향으로 가다가 강진교를 건너기 전 삼거리에 있는 ‘강산에’(063-643-5786)식당의 땅드릅매운탕 (4인 기준 대 45,000원)은 얼큰하면서도 담백하여 인기가 있다. 빠가탕, 메기탕, 닭·오리백숙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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