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이 홰치고 용이 꿈틀대는 신령스런 땅에 자리한 으뜸 사찰 [사찰문화기행] 충남 공주 갑사

2016년 04월 28일(목) 18:53

대웅전에서 바라 본 갑사 전경.

아쇼카 순례단 - 해설이 있는 사찰순례

갑사를 찾은 아쇼카 순례단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아쇼카 대왕은 인도 최초의 통일제국 마우리아 왕조를 열었다. 그러나 수많은 정복과정에서 저지른 살생을 참회하며 불교에 귀의했다.

재위 말년에 부처님 발자취를 순례하며 비폭력을 진흥하고 윤리에 의한 통치를 펼쳤다.

아쇼카 순례단은 사찰순례를 통해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염원한다.


근래 들어 갑(甲)이 화두이다. 권력을 갖고 있는 이가 약자들에게 부당한 행위를 하는 갑질논란 때문이다.

갑사 철당간.

그러나 일반적으로 ‘갑’은 좋은 의미로 쓰인다. 불가(佛家)에서도 그렇다. 사찰 이름 가운데 ‘갑’이 들어가는 사찰은 ‘으뜸’ 또는 ‘부처’라는 의미이다.

남도에는 유달리 ‘갑’자가 들어가는 사찰이 많다. 영광 불갑사, 영암 도갑사, 무안 원갑사, 보성 봉갑사 등등.

이들 사찰은 대부분 백제에 불교를 처음 전한 마라난타 존자가 직접 창건한 사찰이다. 첫 번째 부처님 집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남도 밖에도 절 이름에 ‘갑’자가 들어있는 사찰이 있다. 충남 계룡산의 갑사(甲寺)가 그곳이다. 수행가풍과 사찰의 품격이 갑종(甲種)으로 모든 사찰 가운데 첫 번째라는 것이다.

흔히 충남에서는 ‘춘 마곡, 추 갑사’라는 말이 있다. 봄이면 마곡사, 가을이면 갑사의 경치가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꽃피는 4월은 한반도 어디를 가든 다 좋다. 갑사도 마찬가지이다.

갑사는 절 이름보다 계룡산이라는 산 이름이 더 친근하다. ‘닭이 홰치고, 용이 꿈틀댄다’는 계룡산(鷄龍山)은 예로부터 신기한 기운이 흐르는 산으로 여겼다.

백제가 주인일 때는 중악(中嶽)이라 해 나라의 중심이 되는 산이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서악,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묘향산, 지리산과 더불어 3악(三嶽) 가운데 중악으로 신성시했다.

조선 초, 이성계가 계룡산을 중심으로 나라를 새로 세우려 했다. 그런데 어느 노파가 나타나 ‘한양은 이(李)씨 500년 도읍지이고, 계룡산은 정(鄭) 씨가 800년간 나라를 다스릴 곳’이라며 쫓아냈다. 조선시대 힘없는 민중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으로 잡았던 정감록(鄭鑑錄)의 현장이기도 하다.

갑사 오리길가에 핀 황매화.

이처럼 신령스런 계룡산에는 사방에 큰 절들이 있어 기운이 더해지고 있다.

산의 동쪽에 동학사, 남쪽에 신원사, 서쪽에 갑사 그리고 북쪽에 지금은 터만 남은 구룡사가 그곳이다.

갑사가 사찰 가운데 으뜸사찰로 부르게 된 것은 창건설화에서 유래한다.

사중에 내려오는 설화에 따르면 2천500여 년 전, 인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적하고 세월이 흘러 아쇼카 대왕이 탄생했다. 최초로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 대왕은 정복과정에서 저지른 수많은 살생을 참회하며 불교에 귀의했다. 그 후 부처님 법을 널리 펼치고자 큰 서원을 세우고 부처님 사리를 동서남북을 관장하는 사천왕들로 하여금 마흔여덟 방향에 봉안케 했다. 이때 북쪽을 관장하던 다문천왕이 동방 남섬부주 가운데서도 명산인 계룡산의 자연 석벽에 부처님 사리를 봉안했다.

공우탑.

그 뒤 600년이 지난 백제 구이신왕 때(420년) 아도화상이 석벽을 발견하고 천진보탑(충남 문화재자료 제68호)이라 이름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의상대사가 천진보탑 아래에 천여 칸의 당우를 중수하고 화엄학을 폈다. 신라 화엄 10찰의 하나인 갑사이다.

산내암자 신흥암이 들어선 천진보탑에서는 특별한 날에는 방광(放光)을 하는데 그 빛이 하늘을 꿰뚫는다고 한다.

갑사로 가는 진입로는 일주문에서 법당까지 거리가 5리(2㎞)여서 오리길로 부른다. 이 길은 국내 최대 황매화 군락지로 유명하다. 매화는 아니지만 노랑색의 꽃이 매화를 닮아 황매화로 부르는 이 꽃은 초파일을 앞두고 4-5월경에 피어 계룡산의 봄을 화사하게 장식한다.

대적전과 갑사부도.

그렇다고 황매화에 취해 앞으로만 걸어가기보다는 오리길 중간에서 오른편으로 들어서기를 권한다.

갑사로 가는 옛 길이다. 개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높게 솟은 철 당간(보물 제256호)을 만난다.

갑사 철당간은 높이 3m 크기 화강암 지주에 지름 50㎝ 크기의 무쇠 철통 24마디로 연결돼 있다. 높이가 15m인 갑사 철당간은 본래 28천, 28수를 상징해 28마디였으나 철통 4개가 손실됐다.

철 당간 위에는 대적전이 자리해 있다. 대적전 영역은 신라 때 위용을 자랑하던 화엄 10찰의 하나인 갑사의 중심이었다. 정유재란 당시 모든 전각이 소실되고 현재의 대웅전 영역으로 주요전각을 옮겨 중창하면서 대적전은 절의 외각이 됐다.

대적전 앞에는 산내 암자에서 옮겨온 부도(보물 제257호)만이 옛 갑사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갑사 부도는 사자산문의 개산조인 화순 쌍봉사 철감국사 부도 양식을 갖추고 있어 갑사에 사자산문의 후손들이 주석했던 것으로 보인다.

화사하게 핀 봄꽃 사이로 조선초기 범종이 자리한 종각.

대적전에서 왼편으로 개울을 건너 대웅전 영역으로 들어서면 초입에 삼층석탑 하나가 눈에 띈다. 소의 공을 기리는 공우탑(功牛塔)이다.

전설에 의하면 산내 암자인 상 사자암과 중 사자암을 지을 때 소가 건축자재를 실어 날랐다고 한다. 예전에 깊은 산중에 절을 지을 때는 소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절이 다 지어지고 소도 쓰러지고 말았다. 스님들은 소의 넋을 기리기 위해 탑을 세웠던 것이다.

금고와 금고거

공우탑을 지나면 갑사 대종(보물 제478호)을 보호하는 종각을 만난다. 무게 8천근의 대종에는 종의 내력이 담긴 명문이 새겨있어 눈길을 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선조 16년(1587) 7월 북쪽의 오랑캐인 여진족이 침입했다. 나라에서는 병기와 화포를 주조하기 위해 사찰의 종을 징발했고, 갑사의 대종도 녹여지고 말았다. 전쟁이 끝나고 선조 17년 4월에 갑사 종을 다시 조성했다는 내용이다.

갑사 대종은 임진왜란 직전에 조성한 것으로 당시의 범종양식을 대표하는 우수한 종이다.

갑사의 중심전각인 대웅전은 정유재란 이후 선조 37년(1604)에 건립된 갑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대웅전 현판은 현종 10년(1669)년에 쓴 석봉체로 진경시대를 대표하는 글씨이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불과 미타불이 모셔졌다. 삼존불 옆으로 문수, 보현, 관음, 세지보살 등 사대보살이 입상으로 조성돼 있다. 앉아있는 부처와 서있는 보살의 배열이 이채롭다.

또한 법당 뒤편에 있는 쇠북인 금고(金鼓)가 인상적이다. 18세기 중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금고는 조선시대 일반적인 금고와 다르게 서수(瑞獸)와 용을 화려하게 조각한 거( )에 걸려있다.

금고거의 대좌는 상서로운 동물이고, 서수의 등에는 양련과 복련의 연잎으로 몸체인 용을 받치고 있다. 또한 몸체는 두 마리의 용이 구름 위로 날아오르면서 여의주를 앞발로 부여잡는 형상으로 금고를 들고 있다. 갑사 금고거는 현존하는 조선시대 ‘거’ 가운데 조형적으로 가장 우수한 것으로 영조 6년경 진경문화의 절정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갑사는 최초로 승군이 발족한 호국사찰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당시 갑사의 영규대사가 의승군을 결성하려 했으나 대중이 호응하지 않았다. 스님은 대웅전 앞마당에서 3일간 밤낮으로 통곡했다. 마침내 대중스님들의 마음을 움직여 첫 의승군이 결성됐다. 영규대사는 수많은 싸움에 나섰다. 광주에서 일어선 의병장 고경명이 금산에서 고전하자 의병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가 중과부적으로 패해 전사했다.

갑사에는 표충원을 세워 영규대사와 의승군들의 뜻을 기리고 있다.

근래 들어 해남 대흥사를 중심으로 ‘호국 의승군의 날’ 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나라를 위해 분연히 일어선 스님들의 뜻을 되새겨 볼일이다.


해마다 정월이면 제사상 받는 ‘괴목’

나무는 땅의 기운을 가장 많이 받는 생명체이다. 한번 자리를 잡으면 그곳에서 일생을 마치는 것이 나무이다. 그래서 명당을 찾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마을이나 집안에 있는 나무를 살피기도 한다. 풍수가들은 길을 가다가도 오래된 정자나무를 만나면 마을에 들어가 어떤 인물이 나왔는지 확인하곤 한다.

땅에 의지해 사는 생명체 가운데 가장 오래 사는 것은 나무이다. 수령이 수백 년 이상 되는 나무는 경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오래된 나무에는 신(神)의 기운이 흐른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계룡산 갑사 입구에도 신이 된 나무(神木)가 있다. 사하촌 상가가 시작하는 곳에 자리한 거대한 괴목이다.

이 괴목의 수령은 갑사 창건과 같이 무려 1600살이라 한다. 나이만큼이나 괴목과 얽힌 이야기도 많다.

임진왜란 당시, 영규대사가 승병을 일으켰을 때 이 나무 밑에서 작전을 세웠다고 한다. 호국불교의 현장이다.

그러나 괴목이 된 유래가 더 흥미롭다.

300여 년 전, 어느 날부터 갑사 대웅전의 장명등 기름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여긴 스님들이 밤에 법당 한쪽에서 몰래 장명등을 지켰다. 그러자 덩치가 큰 누군가가 법당 안으로 들어오더니 장명등에 다리를 얹어 기름을 바르는 것이었다. 스님들이 기름도둑을 잡고 보니 절 아랫마을에 있는 커다란 나무였다. 길 가던 사람들이 담뱃불로 나무의 뿌리에 상처를 내었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부처님 앞에 있는 장명등 기름을 발랐다는 것이다. 날이 밝아 스님들이 나무를 찾아가 보니 뿌리부분이 타고 있었다. 스님들과 마을 사람들은 나무뿌리의 불을 끄고 주위를 잘 정리했다. 그 후 갑사의 장명등 기름은 없어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마을에 돌았던 역병도 없어졌다. 그 후 스님과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 초사흗날이면 괴목 앞에 상을 차리고 마을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지냈다.

괴목은 아쉽게도 20여 년 전 태풍으로 부러져 현재는 밑동만 남아 있다. 지금도 갑사 스님들과 마을주민들은 나무 옆에 ‘괴목대신(槐木大神)’이라는 명패석을 세우고 해마다 제사를 겸해 축제를 펼치고 있다.


아쇼카 순례단, 5대 적멸보궁을 찾아서<1> : 5월21일(토) 강원도 영월 법흥사 (문의 : 062-383-3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