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사업에서 주민이 어떻게 소외 되는가? 한유진 |
| 2016년 05월 12일(목) 1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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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장로가 한창 번성하던 시절 이 동네에 와 보고는 깜짝 놀랐다. 도심의 한 복판에 시계가 멈춘 마을이 있었던 것이다. 호남신학대 뒤쪽에는 울창한 야생의 숲이 있었고, 숲속을 걸어 다니다 보면 여기저기서 이야기가 툭툭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산책로에는 세월이 묵은 나무 계단들이 있었는데 한쪽이 썩어있기도 했지만 가파른 계단을 숨차게 오르면 기분이 좋아졌다. 작곡가 정율성이 바람을 만끽하며 쉬었을 것만 같은 벤치, 김현승 시인이 생각에 잠겨 걸었을 것 같은 좁거나 넓어지는 골목들. 이 작은 마을에 살았던 그들처럼 영감을 얻으면서 살고 싶어서 14년 전 이사를 단행했었고 지금껏 살고 있다.
그러나 양림동이 근대역사마을로 지정된 이후 점차 이야기가 사라지고 있다. 이야기 때문에 주목 받았던 동네가 이야기가 사라지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그것들이 밀려난 자리에는 큰 도로가 생기거나 주차장이 들어서거나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한 부대시설들이 채워졌다. 새로 생긴 건물들은 갈수록 높아져서 단층의 오래된 한옥들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얼마 전 서울 사는 친구가 전화했는데 “야, 네가 사는 양림동 전국 뉴스에 나왔더라”고 한다. 2015년부터 시범 관광지역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 관광객의 숫자 놀음은 압박에 가까워질 것이다. “지난 한 해 양림동에 몇 명이 왔나?”가 양림동을 말하는 지표가 된 지 오래다. 양림동이 유명해질수록 점점 매력을 잃고 떠날 궁리가 드는 이유는 뭘까? 누가 양림동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기획자 중심 마을사업 vs 펭귄마을
양림동을 박제하듯 못박아두자는 생각은 당연히 아니다. 주민의 생활 편의도 고려해야 하고 근대문화역사마을로서의 새로운 단장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누가 주체가 되어 동네를 바꿀 것인가? 당연히 마을 주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돈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사업비가 큰 곳에는 그만큼 기획자들이 모인다. 양림동 같이 마을 사이즈에 비해서 연간 사업비가 큰 곳은 말할 것도 없다. 사업비의 규모에 맞게 굉장한 정보수집 능력을 발휘하여 그들은 마을에서 가장 박식한 전문가가 된다. 관이나 매체와 소통하는 능력도 있어서 외부에서 온 그들이 결국 마을을 요리하게 된다. 그들은 몇 년 마을에 머무는 것으로 주민의 이름을 획득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주민 소외가 일어나는 것이다. 마을에서 진짜 살던 사람, 주민의 목소리는 투명하게 잊힌다.
그런 면에서 뜨거운 감자 양림동에, 2014년 ‘양림포럼’이 탄생했을 때 늦은 감은 있었지만 반가웠었다. 드디어 기획자들과 주민들과 구청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사업의 주체로서는 아니지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견 수렴과정을 갖는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오랜 시간 토의하고 합의를 거쳐서 진행을 하는 단 하나의 성공사례를 만들자는 것이, 희망이었다. 결과는 아쉬웠다. 사업이 많이 진행된 시점이라 물길을 돌리기 어려운 점도 있었고, 이익이 첨예하게 부딪혀서 진일보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점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아쉬웠던 것은 주민의 목소리가 빠진 회의가 되었다는 점이다. 마을 주민들은 생업에 바빠서, 전문적이지 않아서, 참여를 꺼렸다. 주민이 소외될 수밖에 없는 여러 구조들이 있는 현실 속에서, 주민 스스로 깊은 관심이 없는 것이 소외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양림동의 ‘펭귄마을’은 주목할 만하다. 주민들이 기획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펭귄마을 이장님한테 왜 펭귄마을이냐고 물었더니, 친한 동네 형님이 다리를 저는데 그 모습이 뒤뚱뒤뚱 펭귄 같아서, 그를 상징화했다고 한다. 생각부터가 아기자기하다. 놀라운 것은 멀리서 양림동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사업비를 쏟아놓은 그곳보다 펭귄마을을 먼저 찾는 다는 것이다. 느리게 가는 미학이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