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400여 년 전, 무릉도원 명당 터에 부처님 진신사리 봉안한 복지(福地) [사찰문화기행] 5대 적멸보궁(1)-강원도 영월 법흥사

2016년 05월 26일(목) 19:52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영월 법흥사 적멸보궁.

아쇼카 순례단, 5대 적멸보궁을 찾아서<2> : 6월11일(토) 오대산 월정사-상원사 (문의 : 062-383-3538)

아쇼카 순례단 - 해설이 있는 사찰순례

아쇼카 대왕은 인도 최초의 통일제국 마우리아 왕조를 열었다. 그러나 수많은 정복과정에서 저지른 살생을 참회하며 불교에 귀의했다.

재위 말년에 부처님 발자취를 순례하며 비폭력을 진흥하고 윤리에 의한 통치를 펼쳤다.

아쇼카 순례단은 사찰순례를 통해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염원한다.

5대 적멸보궁인 법흥사를 찾은 아쇼카 순례단 회원들.

한국의 불교 성지를 순례하는 이들에게 꼭 참배해야할 꿈의 성지가 몇 곳 있다.

첫 번째는 불교를 대표하는 불(佛) 법(法) 승(僧), 삼보사찰이다. 양산 통도사는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어 불보종찰이고, 팔만대장경이 자리한 합천 해인사는 법보종찰 그리고 16국사를 연속으로 배출한 순천 송광사가 승보종찰이다.

두 번째로는 관음성지인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여수 향일암, 강화 보문사이다. 모두가 바닷가에 자리한 천년 기도처로 원력이 이뤄진다고 해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세 번째는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5대 적멸보궁이다. 통도사를 비롯해 설악산 봉정암, 오대산 상원사, 영월 법흥사, 정암사가 그곳이다.

일반적으로 사찰에서 불, 보살을 봉안한 건물은 전(殿)이라 하고 삼성, 칠성 등을 모신 건물은 각(閣)으로 부른다. 그런데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건물은 보궁(寶宮)이라 하여 높여 부른다.

적멸보궁은 부처님 사리를 모신 곳으로, 부처님이 상주하며 적멸의 법을 법계에 설하고 있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기에 보궁에는 또 다른 부처님의 형상이 필요하지 않아 불상이 없다. 다만 불상이 있어야할 수미단에 좌복을 마련해 부처님이 상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징효스님 탑비. 탑비를 이고있는 비희의 꼬리가 인상적이다 .

올해 들어 아쇼카 순례단은 적멸보궁 순례를 기획했다. 이달부터 5회에 걸쳐 다섯 곳의 적멸보궁을 향해 떠난다.

첫 번째 순례길은 강원도 영월에 자리한 사자산 법흥사로 정했다.

남도에서 강원도는 머나먼 곳이다. 5월이지만 일찍 찾아온 열기가 한 여름 가마솥 무더위를 무색케 한다. 다행히도 길이 멀어 버스의 에어컨에 의지해 한 낮의 더위를 넘길 수 있었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원주 적악산(치악산) 동북쪽에 있는 사자산은 수석이 삼십 리에 뻗쳐 있으며, 주천강의 근원이 여기이다. 남쪽에 있는 도화동과 무릉동도 아울러 계곡의 경치가 아주 훌륭하다. 또 복지라 부르는데 참으로 속세를 피해서 살 만한 지역”이라고 했다.

사자산 가는 계곡이 바로 무릉도원이다.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지면서 무릉리가 나오고, 계곡을 따라 더 오르니 법흥리이다.

예나 지금이나 산세의 풍광이 수려해 복된 땅임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에 적멸보궁이 들어선 것은 자장율사(慈藏: 590-658)에 의해서다. 자장은 본래 진골집안이었다. 일찍이 어버이를 여의고 인생무상을 느껴 출가했다. 해골을 바라보며 인생무상을 관하는 백골관(白骨觀) 수행을 했다.

피나는 정진을 하던 때 나라에서는 재상 자리가 비어 그를 불렀다. 그러나 자장은 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몇 차례 명을 내리던 왕은 마침내 부름에 불응하면 목을 베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러나 자장은 “내가 차라리 계(戒)를 지키고 하루를 살지언정, 계를 깨뜨리고 백 년을 살기 원하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목을 베지 못한 신하의 말을 전해들은 왕은 결국 그의 출가를 허락했다.

이때부터 자장은 계율의 스승인 율사로 불렸다. 자장은 선덕여왕 5년(636) 중국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 사리 100과와 부처님 가사 1벌을 받아 신라로 돌아왔다.

자장율사가 수행하던 토굴.

귀국 후 자장은 전국을 다니며 삼국통일과 나라의 안녕을 기도했다. 이때 영축산 통도사를 비롯해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에 흥녕사(지금의 법흥사), 태백산 갈래사(지금의 정암사) 등 5곳의 명당자리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다. 5대 적멸보궁은 이렇게 시작됐다.

무려 1천400여 년 전 일이다. 이들 5대 적멸보궁은 자장율사라는 큰 스님이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잡은 터이니 한반도 최고의 명당임에 틀림없다.

보궁 가운데 하나인 사자산 법흥사는 자장율사가 643년 사자산 연화봉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흥녕사(興寧寺)로 창건했다.

그후 흥녕사는 고려 때 크게 흥성했다. 광주 증심사와 화순 쌍봉사를 창건한 철감선사의 제자 징효절중이 886년 이곳에 선문을 열었던 것이다. 바로 나말여초 구산선문 중 하나였던 사자산문이다.

이후 역사의 부침 속에서도 소실과 중창을 반복하다가 1902년 법흥사로 재건되었다.

법흥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은 적멸보궁 가는 길이다. 큰절에서 산길을 따라 10여분 올라가는 이 길은 양쪽에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붉은 소나무가 으뜸이다.

솔밭이 끝나는 지점에 기암절벽이 솟아있고, 그 아래에 작고 편안해 보이는 구릉에 적멸보궁이 자리해 있다.

온갖 번뇌망상이 적멸한 보배로운 궁인 적멸보궁에서 바라보니 투박한 부도와 무덤형태의 석실분이 보인다.

적멸보궁 안에는 불상이 없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곳이기 때문이다.

사찰 안내서에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으로 부르지만 옛 고승의 부도로 보인다. 부도의 몸신에는 자물통 문양과 사리를 수호하는 인왕상,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그렇지만 실제 부처님 사리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봉안했다고 전한다. 사리의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신통력으로 천길 높이의 사자봉에 봉안한 것이다.

옆에 있는 석실분은 자장율사 토굴(강원도 지방유형문화재 제109호)이다.

이 토굴은 자장율사가 정진하던 곳으로 내부는 가로1m60㎝, 높이 1m90㎝ 정도로 한 사람이 앉아서 정진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자장율사는 석실주변에 가시덤불을 두르고 정진하였다고 전한다.

적멸보궁을 참배하고 내려가는 길에 산신각을 찾았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사자봉에 모셨으니 마땅히 사자봉 산신령을 친견해야할 것 같았다. 그런데 산신각에는 뜻하지 않게 세분의 산신이 자리해 있다. 사자산 산신을 비롯해 좌청룡에 해당하는 백덕산 산신과 우백호 구봉대산의 산신이 함께 모셔진 것이다. 특별히 눈에 띄는것은 백덕산 산신이 할머니 산신이라는것이다.

본래 법흥사가 자리한 사자산은 사재산(四財山)이었다. 산에는 꿀과 흉년이 계속되면 먹을 수 있는 진흙인 전단포, 그리고 옻나무와 산삼이 많이 났다. 깊은 산중이지만 이곳은 지금도 재물이 흥하다. 적멸보궁을 참배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계곡이 좋아 땅이름 그대로 무릉도원이기 때문이다.

보궁 아래에 법흥사 큰 절이 있다.

비교적 넓은 터에 새롭게 단장한 전각이 연이어 있다. 몇 해전만해도 암자분위기였던 사찰이 대찰로 변했다. 예전에는 거주하는 수행자가 많아야 사찰이 커졌지만 근래에는 잠깐 스쳐가듯 다녀가는 이들이 많아도 건물이 늘어나는가 보다. 거주용이 아니라 전시용 인듯하여 아쉽다.

경내에는 여러 전각 사이에 사자산문의 문을 활짝 연 징효보인 대사의 탑비(보물 제612호)와 부도(유형문화재 제72호)가 자리해있다.

징효대사의 행장이 적힌 탑비를 등에 짊어지고 있는 동물은 비희(??라는 상상의 동물이다. 용머리에 거북의 등을 하고 있는 비희는 무거운 것을 짊어지기 좋아한다. 그런데 사찰마다 비희의 뒤쪽 꼬리를 살펴보면 제각각이다. 비희를 조성하던 시기가 힘이 있던 때이면 꼬리에 힘이 있어 바짝 세워져있고, 나라의 기운이 쇠할 때는 꼬리를 아래로 내리고 있다.

고려초, 사자산문이 크게 흥성했던 때여서인지 징효대사의 탑비를 이고 있는 비희는 꼬리가 힘있게 서있다.

본래 사자산문의 시작은 당나라에서 중국 선종의 중흥조인 마조도일 선사로부터 선(禪)법을 전수받은 철감선사이다. 철감선사는 시절인연이 도래하지 않았던지 화순 쌍봉사에서 제자들을 제접했다. 그후 철감선사의 제자인 징효대사가 이곳 사자산에서 법을 폈다. 징효스님의 법을 듣고자 수많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이렇게 해서 사자산문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처럼 사자산문의 근원을 따라가면 화순 쌍봉사가 나온다.

남도땅에서 5대보궁의 첫 순례지로 법흥사를 찾은 것은 이런 연유에서 끌림이 있었나 보다.

법흥사에서 바라본 구봉대산.

구봉대산, 아홉 봉우리에 ‘인생’ 담겨 있어

한국인의 산(山)사랑은 유별나다. 산이 있으면 먼저 오르고 본다. 그렇다고 모든 산이 똑같이 사랑받는 것은 아니다. 유독 더 많은 이들이 찾는 산이 있다. 높거나 경관이 좋아 유명한 명산이다. 하다못해 100대 명산에 들지 못하면 명당이 있는 산이라 하여 찾는다.

법흥사 앞산인 구봉대산(九峰臺山. 870m)이 그러하다. 천하복지 명당인 법흥사 적멸보궁을 에워싸고 있는 우백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홉 개의 봉우리에 대(臺)가 있고 봉우리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래서 구봉대산이다. 아홉 봉우리를 걷다보면 인간으로 태어나 얼기설기 살다가 죽고, 또 태어나는 인생을 보게 된다.

구봉대산의 봉우리 순례는 적멸보궁에서 시작한다. 첫 번째 만나는 봉우리는 양이봉이다. 어머니 뱃속에 잉태함을 보여준다. 여기서부터 9봉까지 능선을 따라 걷는다.

제2봉 ‘아이봉’은 세상에 태어남이고 제3봉 ‘장생봉’은 유년, 청년기를 지나는 과정을 의미한다. 제4봉 ‘관대봉’은 벼슬길에 나아감을 보여주고, 제5봉 ‘대왕봉’은 인생의 절정을 이룬 뜻을 담고 있다. 제6봉 ‘관망봉’은 지친 몸을 쉬어 감을 그리고 제7봉 ‘쇠봉’은 병들고 늙음을 의미하며, 제8봉 ‘북망봉’은 이승을 떠나 북망산천으로 가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제9봉은 ‘윤회봉’이다.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불교의 윤회설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인생은 인연따라 흘러가는 것이니 집착과 욕심부리지 말고 만족하며 살라는 가르침이 담겨있다.

구봉대산은 이야기뿐 아니라 경관이 일품이다. 기묘한 바위와 쭉쭉 뻗은 소나무가 어우러져 장관이다.

이렇게 등산하는 길이는 약 6㎞이고 4시간가량 걸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