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사회적 시선’… ‘열정과 냉정’·‘긍정과 부정’이 공존하는 삶 [이영미의 파리문화기행]<6> 프렌치 파라독스

2016년 07월 07일(목) 19:02

▶ 파라독스 #1 - 음식에 대한 시선

미식가들의 나라답게 프랑스 사람들의 술과 담배 소비량은 매우 많다. 노천카페에서 와인, 커피, 담배 그리고 대화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은 유럽의 낭만적인 풍경의 상징이 됐다.

대부분의 식사 메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감자튀김, 바게트와 버터, 치즈와 와인, 그리고 매우 단 디저트는 프랑스인들 식사의 고정된 요소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고칼로리 음식을 섭취하는 프랑스인들에게서 심장혈관 질환이 적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2004. 전남대 건축공학박사 ▶2005-2007 전남대 post-doc/청주대 post-doc ▶2009-2011. 전남대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2014-현재. Paris 8대학, 도시계획 박사과정

비만 인구의 증가와 심혈관 질병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됐던 미국에서 1980년대 이 연구결과가 발표된 후, 질병의 원인을 고열량과 고지방에서 찾았던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면서, ‘프렌치 파라독스란 용어(French Paradox)’가 만들어졌다. 프렌치 파라독스란 미국인들보다 더 많은 콜레스테롤과 포화지방이 함유된 식사를 하는 프랑스인들이 낮은 심혈관계 질환의 발병률을 보인 현상을 말한다.

이런 역설적인 결과를 증명하기 위해 한때 프랑스인들이 식사때마다 빠지지 않고 마시는 레드 와인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와인을 즐기는 나라는 프랑스뿐만 아니므로 와인만으로 이 현상을 증명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미국 학자들이 주목한 것이 바로 음식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음식을 건강 및 체중 증가와 연결짓는 나라는 ‘미국’이며, 음식을 ‘삶의 중요한 기쁨 중 하나’라고 여긴 나라는 프랑스였다. 그들에게 음식과 관련해 건강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고 기쁘게 먹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란 사실이다.

와인과 바게트를 함께 즐기는 식사.

▶ 파라독스 #2 - 명품을 창조하는 사회 & 명품을 소비하지 않는 사회

프랑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등 많은 문화유산들이 있지만, 현대인들의 소비욕망 기호, 바로 명품이지 않을까.

프랑스는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등 명품이 즐비한 나라이다. 그러나 이곳에 살다 보면 우리나라 지하철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그 흔한 루이비통 가방을 지닌 파리 시민을 발견하기 어렵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를 창조하고 있는 파리에서 정작 명품을 소비하는 시민들을 많이 볼 수 없는 것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다.

명품의 가치에 자신의 사회적 위치나 가치를 동일시하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은 결국 타인의 시선에 구속되어있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과시적 소비는 사람들이 상품 그 자체가 아니라 상품이 지시하는 이미지를 돈으로 사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들야르는 소비사회에서 사람들이 단순히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기호를 소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상품소비의 욕망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다른 집단을 향한 동경이고 소외되기 두려워서 대중문화를 소비하고 타인의 방식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나의 주체적 욕망이 아닌 타자의 욕망이다.

<루이비통, hppt://fr.louisvuitton.com/fra-fr/homepage 사이트 이미지>

좀 더 높은 가치를 향한 소비를 통해 다른 사람과 구별 짓기를 원하지만, 내 욕망의 주체는 내가 아닌 타자인 것이다. 결국, 인간은 일상적 행위 속에서 타인과 관계 맺으면서 살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현존재며, 이러한 대중문화에 비판적 시각을 가진 하이데거(M. Heidegger)는 타인의 눈을 의식하며 사는 자기 상실의 모습을 ‘남들의 독재’라고 말하였다. 똑같은 생각과 행동으로 강요받고 그 획일화된 문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대중문화 안에서의 독재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타자의 욕망’, ‘남들의 독재’에 의해 종속된 삶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대중매체에 의한 트렌드 장악력은 한국 사회처럼 강력하지 않다. 드라마나 음악프로그램, CF가 다양하지 않은 프랑스에서는 아이돌이나 유명 연예인을 TV에서 만나기 어려운 미디어 구조이다.

애초 TV 미디어는 욕망과 유행을 선동하는 이미지를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소비하는 문화수용자도 없다. 이러한 특징이 절대적인 이유는 아니겠지만, 거리에서 유명한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이들을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프랑스의 소비풍경에 분명 영향을 끼쳤으리라. 프랑스인들의 소비방식은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신이 선호하는 것에 더 충실하다.

<노동법 반대를 위한 밤샘 농성, www.franceinfo.fr>

자신에게 맞는 소비, 자신의 능력에 맞는 소비를 하는 이들은 타자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 사회와 다른 모습이다.

백화점과 같은 소비문화를 최초로 탄생시킨 도시이면서 수많은 명품 브랜드를 만들어낸 파리는 현대사회에 욕망의 씨앗을 뿌린 곳이다. 그러나 현재 일상성의 독재에 저항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진 소비를 하는 그들의 모습은 또 다른 패러독스가 아닌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그들에게 나는 질투를 느낀다.


▶ 파라독스 #3 - 불합리에 대한 분노 & 불편함에 대한 인내

작년, 루브르 박물관은 소매치기의 극성으로 경찰 증원을 요구하며 휴관한 적이 있다.

루브르 뿐만 아니라 베르사이유 궁전이나 에펠탑 직원들도 마찬가지로 가끔 그들의 요구를 위해 파업을 단행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중교통이 대대적인 파업을 하는 것이 매우 드문 일이지만, 프랑스란 나라는 지하철, 기차, 항공편 모두 파업을 자주 하는 편이다.

올 2016년 상반기는 노동법 관련한 대규모 파업이 가장 큰 화젯거리이다. 프랑스 정부가 그동안의 ‘경직된 노동법’으로 인해 증가된 높은 실업률을 해결하기 위한 명분 아래 노동법 개혁안을 통과 시킨 후, 이에 반대하는 노동단체와 학생들의 반발이 커졌다.

지하철의 운행 중단이 잦아졌고 공항까지 접근할 수 있는 지하철 노선의 파업으로 공항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한 길이 됐다.

정유업체도 파업에 동참한다고 파업 계획을 발표하자 주유소는 2-3시간씩 기름을 넣기 위해 기다리는 차들로 붐비는 진풍경도 생겨났다.

에어프랑스 조종사들의 파업으로 며칠 동안 에어프랑스 편 이용자들은 다른 우회 수단을 이용해야만 했고 고등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하며 학교도 문을 닫았다.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의견을 말하고 싸울 수 있어야 한다고 교육받아온 이들답게, 특정 이슈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명하기 위해서 프랑스에서는 모든 계층 불문하고 늘 크고 작은 파업을 한다.

파업하는 자와 그 외의 사람들을 선과 악, 이분법으로 나누며 파업을 죄악처럼 터부시하는 한국사회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프랑스인들은 현실에 늘 분노하고 시위만 하는 사회 부적응자들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쉽게 분노하는 듯한 이들의 이면에는 또 다른 얼굴도 발견할 수 있다. 거리에는 시위대 행렬로 인해 차가 움직일 수 없어 한 시간째 갇혀 있기도 했다.

파업으로 발생한 불편함은 모두 시민들의 몫이지만 이들 모두 엄청난 불편을 감수하는 듯해 보인다. 물론 노동법 개혁안이 현재 자신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긴 하지만, 이 대규모 파업 이전에도 이들에게 파업은 일상이었고 그로 파생되는 불편함은 면역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의 인내력이 우리보다 더 강한 것일까?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은 내가 내려야하는 정거장을 그냥 지나쳤다. 나의 실수로 잘못탄 것인지 다시 한 번 확인했으나, 나처럼 주변에 많은 이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내가 착각한 게 아니라 지하철이 멈추지 않고 지나쳐 버린 것이다. 그 뒤 기관사 방송이 흘러나온다. ‘미안합니다. 실수로 지나쳐버렸습니다’라고….

대부분의 시민은 침착하게 다음 정거장에 하차하고 다시 돌아갈 기차를 타러 바삐 걷는다.

한국사회였다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이러한 일이 발생했다면, 신문과 뉴스 그리고 SNS에 불만을 성토하는 글들로 도배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파리 시민들의 표정은 매우 침착했다. 늘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목적지를 향해 움직일 뿐이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 뉴스를 검색해 봐도 그날의 해프닝은 뉴스거리가 되지 못했는지 이를 기사화한 신문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불합리한 일에 침묵하는 이들인가? 하지만 프랑스인들이 절대 그럴 일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언제나 불합리하거나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일에는 분노하고 싸울 준비가 돼 있는 비판의식 강한 프랑스인들이 파업으로 인해 오는 불편이나 위의 사례처럼 소소한 사회적 실수에 대해선 흥분하지도 않고 긍정적으로 인내하는 이 모습 또한 아이러니이다.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분노해야 할 때와 고통을 감내해야 할 때, 신속해야 할때와 느긋할 때를 아는 이들의 역설적 모습에서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나아가려 하는 열망과 자존감을 엿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