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 상처가 되거나 위로가 되거나 이현 |
| 2016년 08월 04일(목) 1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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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뜻이나 생각 없이 하늘을 볼 때가 있다.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도 마찬가지다. 무심코 길을 걷고, 무심코 풍광을 보며 무심코 물을 마시다 보면 어느 사이 번뜩,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글을 쓰다 막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생각에 생각을 물며 끙끙대며 애쓰기 보다는, 마음을 비우고 무심히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술술술 풀릴 때가 있다. 무심코 맞잡은 손끝에서도 사랑이 움트고 무심코 보내오는 미소 한 조각에도 가슴이 뛴다. 하지만, SNS에 무심코 올린 사진이 범죄의 표적이 되고 무심코 클릭한 문자하나에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아무런 생각 없이, 무심히 던진 한 마디의 말에 가슴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내가 언제? 그랬어? 그냥 한 말 가지고 뭘 그래.”
얼마 전에 만난 지인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을 하는데 가슴이 먹먹해졌다. 가슴에 시커먼 덩어리가 만들어진지 수 년 만에 듣게 된 말은, 미안하다는 말이 아니었단다. 기가 막히다는 표정과 함께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 가지고 뭘 그렇게 오랫동안 심각하게 생각했냐는 말이었단다. “그냥 무심코 내 뱉은 말이었다고?” 차라리 말이나 하지말지. 그냥 무심코 내뱉었다는 말에 몇날 며칠 수년 동안을 가슴앓이하며 지냈던 시간들이 억울해 화가 치밀고, 그러는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져 자꾸만 눈물이 난다는 지인의 말에 가슴이 아려왔다.
요즘 들어 자주 듣게 되는 트라우마(trauma)는 일반적인 의학용어로는 외상(外傷)을 뜻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정신적 외상’을 뜻한다. 몸에 생긴 아주 작은 상처는 흉터도 없이 낫지만, 상처가 크면 클수록 약을 바르며 치료해도 흉터가 남게 되는 것처럼, 영구적인 정신장애를 남기는 충격이다. 정신적 방어막이 무너져 버린 무방비상태로, 어느 순간 사라졌다가도 과거와 비슷한 상황이나 연관이 있는 상황이 올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 아프게 하는 마음의 상처다. 피부가 찢기고 긁혀 피가 나는 것처럼, 마음이 긁히고 찢겨져 흐르는 마음의 눈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엄청난 사건에 의해서만 발생되는 것은 아니다. 갑작스런 사고와 재난, 학대, 성폭력, 가족의 죽음, 왕따, 수치심을 느낀 경험, 언어폭력, 질병과 음식 등, 크고 작은 일상의 모든 것들이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어릴 적 ‘엉덩이 때리기’의 결과”라는 제목의 연구결과도 있다. 1960-2010년 당시 13-7세 미국 어린이 16만 여명을 최대 50년 간 추적 조사한 결과, 어릴 적 부모로부터 맨손이나 몽둥이로 엉덩이나 뺨, 머리 등을 맞고 자란 사람의 경우 커서 그러한 경험이 없는 이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고 반사회적인 성향을 보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외상에 관한 편견이 많다.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서, 마음이 약해서, 예민해서 등. 상처를 받는 것만으로도 힘든 상황에 또 다른 형태의 편견이 더해지니 상처만 더 커질 뿐이다.
더워도 너무 더운 나날이다.
‘개에 물린 사람은 반나절 만에 치료받아 귀가했고, 뱀에 물린 사람은 3일 만에 치료를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말(言)에 물린 사람은 아직도 현재 입원 중입니다.’ 는 말이 있듯이 그냥, 아무생각 없이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의 말이 얼마나 치명적 상처를 주는지 기억했으면 좋겠다. “삼사일언 (三思一言)”까진 아니더라도 단 한번 이라도 생각한 다음에 말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이 누군가의 가슴을 후벼 파는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