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를 둘러싼 산줄기, 옛 강과 옛 마을을 그리워하다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횡성호수길 5구간

2016년 08월 09일(화) 19:19
호수 너머 산줄기와 마을, 짙푸른 호수와 산줄기가 겹쳐진 횡성호의 풍경은 한폭의 수채화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한동안 산행을 즐기던 내가 취미생활을 트레킹으로 바꾸면서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걷는 시간이 많아졌다. 부부가 함께 걷고 여행하다 보니 금슬이 좋아지고 생활에 여백이 생겼다. 직장생활 때문에 평소 주말에는 이동거리가 먼 곳까지 가기가 쉽지 않아 강원도 같은 장거리 트레킹코스는 연휴 때나 여름 휴가철을 이용하곤 한다.

올 여름 휴가는 강원도 횡성과 홍천을 택했다. 영동고속도로 새말IC를 빠져나갈 즈음 점심시간이 됐다. 식사는 강원도 토속음식을 택하기로 했다. 막국수 집으로 들어섰다. 강원도 막국수는 식당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메밀국수에다 오이채, 당근채 같은 야채와 잘게 썬 묵은 김치와 김가루, 삶은 계란에 고명을 얹고, 여기에 취향에 따라 겨자나 식초를 넣은 후 육수를 자박하게 넣어 비벼서 먹는다.

호수를 감싸고 있는 산봉우리들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호숫가에서는 배 한 척이 낮잠을 자고 있다.
강원도 현지의 막국수는 비빔막국수와 물막국수를 구분하지 않고 국수와 육수가 같이 나와서 자기 취향대로 육수를 부어먹는다. 육수를 많이 부으면 물막국수, 적게 부으면 비빔막국수가 된다.

흔히 춘천막국수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막국수는 춘천만이 아닌 강원도 곳곳에서 맛볼 수 있는 강원도 토속음식이다. 새말에서 막국수 한 그릇씩 맛있게 먹고서 횡성호로 향한다. 첩첩한 산과 산자락의 옥수수밭들이 산 많고 옥수수 많은 강원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훤칠한 키의 옥수수나무에 갈색수염을 하고 있는 옥수수는 바라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횡성호 망향의 동산에 도착하니 바로 아래로 호수물이 잔잔하다. 횡성호는 섬강을 막아 생긴 인공호수로, 2000년 11월 횡성댐을 완공해 담수를 시작했다.

횡성군 갑천면에서 호수를 이룬 섬강은 횡성읍과 간현유원지를 거쳐 원주와 여주 사이에서 70여㎞의 여정을 끝내고 남한강에 합류한다.

횡성호가 생기면서 중금리, 부동리, 화전리, 구방리, 포동리 등 횡성군 갑천면의 5개 마을이 물속에 잠기게 됐다.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고향을 잃어버린 주민들의 마음을 달래주고자 만든 것이 ‘망향의 동산’이다.

고향을 잃어버린 수몰민들은 이곳 망향의 동산에서 물속에 잠겨버린 농경지를 그리워하며 오순도순 함께 살았던 마을사람들의 도타운 목소리도 듣고, 구방리 마을 한 가운데에 있던 화성초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의 재잘거리던 소리도 상상한다.

망향의 동산에 올라서니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는 망향탑과 중금리 삼층석탑 2기가 서 있다. 갑천면 중금리옛 절터에 있던 삼층석탑 2기는 횡성댐이 만들어지면서 1998년 이곳으로 옮겨졌다. 중금리 삼층석탑은 석탑양식으로 보아 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몰지역에서 옮겨 온 중금리 삼층석탑.
삼층석탑 앞에는 ‘화성의 옛터 전시관’이 있다. 화성은 수몰된 ‘화성들’에서 따온 이름으로 과거에는 횡성현 소재지가 화성들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전시관에는 수몰지역 주민들이 사용했던 생활도구와 농기구들이 전시돼 있다. 전시관은 실향민들에게는 고향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관광객들에게는 과거 농촌생활의 면모를 보여준다.

전시관을 나와 뒤쪽 정자에 올라서니 횡성호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굽이굽이 흘렀을 섬강과 화성들판은 커다란 호수로 바뀌었고, 잔잔한 호수에는 부드럽게 흘러내린 산자락이 겹쳐져 검푸른 물위에 첩첩한 산 그림자를 드리운다.

망향의 동산을 내려와 임도를 따라 횡성호수길 5구간을 걷는다.

횡성호수길은 호수변의 그윽한 숲길을 걷게 된다.
횡성호수길 여섯 개 구간 중에서 제5구간은 횡성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가장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는 구간이다. 게다가 경사가 심하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없이 걸을 수 있다. 우리는 아름다운 호숫가 임도를 따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걷는 행복을 누린다. 길을 걷다보면 길은 자연과 사람을 이어줄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준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함께 길을 걸으며 소박하고 순수한 상태로 마음을 나누기 때문이다.

횡성호수를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잔잔한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첩첩한 산줄기다. 붕굿붕긋 솟아 있는 낮은 산봉우리들은 호수에 바짝 붙어 호수에 발을 담구고, 뒤에서는 어답산 같은 높은 산들이 중첩해서 다가온다. 어답산(御踏山)은 ‘임금이 친히 밟아본 산’이라는 뜻으로, 신라 박혁거세가 태기산의 태기왕을 뒤쫓다가 이 산을 들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임도를 걷다가 나리꽃의 안내를 받아 산길로 접어든다. 횡성호수길 5구간은 호수 가운데로 뻗어나간 낮은 산줄기를 따라 한 바퀴 도는 코스로, 한쪽은 임도이고 다른 쪽은 산길로 돼 있다. 어느 길을 먼저 선택하든 관계가 없지만 우리는 산길로 접어든다. 숲길을 걷는데 매미들이 합창을 해주고 숲 사이로 호수가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횡성호수로 뻗어나간 산줄기는 마지막으로 작은 섬이 되기도 한다.
걷기 좋은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니 사각정자와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쉼터가 나온다. 여기에서 임도를 다시 만난다. 쉼터를 지나자 잠시 잣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산줄기는 높낮이에 따라 호수 쪽으로 가늘게 뻗어나가 작은 섬을 이루기도 하고,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 같은 모습이 되기도 한다.

호수 너머의 산줄기와 산자락에 기댄 마을, 짙푸른 호수와 호수에 길게 발을 뻗은 산줄기들이 겹쳐지면서 횡성호의 풍경은 거대한 수채화 한 폭을 이룬다. 넓고 깊은 호수는 잔잔하고 평화롭다. 호수는 나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말고 잔잔하게 살라고 한다.

다시 정자가 있는 쉼터까지 돌아와 산길이 아닌 임도를 따라서 걷는다. 임도를 따라가는 길은 인생길처럼 구불구불하다. 임도 아래로는 호수물이 소리없이 출렁인다. 길가에 핀 여러 야생화들이 횡성호의 여름을 산뜻하게 해준다. 담백하고 아름답게 피는 원추리와 산도라지 꽃들이 나리꽃과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호반 길을 걷다보니 호수가 말을 걸어오고, 새들은 감미롭게 노래를 불러준다. 나도 어느새 호수가 되고, 새들의 벗이 된다. 내가 호수와 하나가 되자 드넓은 호수와 부드러운 산은 어머니가 돼 나를 포근하게 안아준다. 치열한 경쟁과 고속으로 달리는 도시생활 속에서 오는 각박한 감정이 따뜻한 자연의 품속에서 느리고 부드러워진다.

호숫가에는 1인용 작은 배 한 척이 낮잠을 자고 있다. 우리의 발길은 망향의 동산에서 멈추고, 이제 횡성호와 작별을 할 시간이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들은 유유히 흘렀던 섬강의 물줄기를 가슴에 품고 있고, 망향의 동산은 물에 잠긴 옛 마을을 그리워한다.


※여행쪽지
▶횡성호수길은 아름다운 횡성호반을 한 바퀴 도는 길로 27㎞, 6개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중에서 횡성호수길 5구간은 망향의 동산에서 호수 안쪽으로 길게 뻗어나간 산줄기를 일주하는 길로 4.5㎞ 거리에 2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 새말IC → 옥동교차로에서 갑천면 방향으로 우회전→5.1㎞ 이동 후 삼거리에서 망향의 동산(구방리) 방향으로 좌회전→망향의 동산
▶횡성은 횡성한우와 막국수가 유명하다. 새말IC 근처의 새말막국수(033-343-8709)에서는 메밀국수에다 오이채, 당근채 같은 야채와 맛있게 양념이 된 고명을 얹고 육수를 자박하게 넣어 비벼서 먹는 막국수(6천원)가 맛있다. 메밀전병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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