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만물이 소통하는 생명의 소리 따라 부처의 세계로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가야산 소리길

2016년 09월 20일(화) 19:37
홍류동계곡 하류에서 바라본 가야산 암봉들이 거대한 꽃송이 같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지금이야 해인사 입구까지 도로가 나 있지만 옛날에는 해인사를 가거나 가야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홍류동계곡을 거쳐야 했다. 산객은 계곡길을 걸으며 수려한 풍경에 감탄했고, 스님은 맑은 물에 마음을 씻었다. 이런 아름다운 계곡도 해인사로 통하는 도로가 생긴 이후에는 아무도 걷지 않았다. 자동차로 달리며 슬쩍 눈요기만 했던 홍류동 계곡에 해인사 가는 옛길을 복원해 가야산 소리길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니 많은 사람들이 걸으며 행복해한다.

가야산 소리길 입구에 서자 홍류동계곡이 유유히 흘러오고, 멀리서 남산제일봉을 이루고 있는 암봉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소리길을 걷다보면 가야 19경 중 1경인 갱멱원(更覓源)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갱멱원은 무릉도원을 상상하며 가야산을 바라보는 곳이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가야산 정상 부위의 절경들이 점점 가까워진다. 홍류동 하류 계곡 주변에는 산자락에 기댄 농경지와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정겨운 시골풍경을 가야산이 내려다보고 있는 형국이다.

해인사 대적광전과 삼층석탑, 석등이 있는 마당은 사찰의 중심공간이다.
눈앞에 다가오는 가야산의 바위 봉우리들은 거대하게 핀 꽃송이 같다. 소리길 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서부터는 숲길을 걷는다. 울창한 숲, 깔끔한 암반과 맑은 물이 어울린 계곡은 무릉도원에 들어온 듯한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다리라는 의미에서 가야 3경 무릉교라 부른다.

아기자기한 바위의 안내를 받으며 흘러가는 홍류동 물줄기가 감미롭게 노래를 하면 나무들은 가지를 흔들며 행복해한다. 숲에서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어울려 있지만 우리나라 고유의 소나무인 적송의 고고함이 숲의 품격을 높여준다.

억겁의 세월이 조탁해 놓은 바위들은 정갈하고, 물줄기는 예쁜 바위들이 다칠세라 유연하게 바위를 넘거나 휘돌아간다. 거침없이 흐르다가 지칠라치면 소와 담을 만들어 쉬었다간다. 물소리·새소리·바람소리는 우주만물이 소통하고 자연이 교감하는 생명의 소리다.

홍류동계곡 최고 비경 낙화담.
나는 가야산 소리길을 걸으며 원초적인 생명의 소리를 듣는다. 그 생명의 소리가 내 마음 깊숙한 곳까지 전달된다. 부처의 세계로 가는 길이 이런 길이리라.

‘법보종찰가야산해인사’이라 쓰인 편액이 붙어있는 ‘홍류문’이 해인사의 품안으로 들어오는 자동차와 사람들을 맞이한다. 홍류문을 지나자 계곡을 내려다볼 수 있는 데크형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가야 5경 홍류동으로,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아기자기한 바위들과 소, 낙락장송이 어울려 장관을 이루고 있다. 붉은 빛(紅)이 흐르는(流) 골짜기(洞)라는 뜻이 담긴 홍류동은 그 이름에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봄에는 진달래·철쭉 같은 봄꽃이 물에 비치고, 가을에는 단풍든 나무들이 계곡을 붉게 장식해준다. 홍류동에는 농산정으로 들어가는 다리가 놓여 있다.

농산정(籠山亭)은 신라 말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은둔해 수도하던 곳이다. 정자 건너편에는 치원대(致遠臺) 혹은 제시석(題詩石)이라 불리는 석벽이 있고, 여기에 고운의 칠언절구 둔세시(遁世詩)가 새겨져 있다. 정자의 이름도 그 시의 한 구절을 빌어 농산이라 했다.


첩첩 바위 사이를 미친 듯 달려 겹겹 봉우리 울리니

(狂奔疊石吼重巒)

지척에서 하는 말소리도 분간키 어려워라

(人語難分咫尺間)

늘 시비하는 소리 귀에 들릴세라

(常恐是非聲到耳)

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을 둘러버렸다네

(故敎流水盡籠山)


늘 시시비비하며 떠들썩한 세상살이를 잠시 등지고 홍류동 농산정에 앉아있으니 속세의 근심걱정은 사라지고 맑고 그윽한 향기로 채워진다. 이곳은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거닐며 사유하고 때론 은둔하며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던 곳이다.

홍류동에 들어선 농산정, 신라말 최치원선생이 은둔 수도했던 곳이다.
농산정에서 솔숲길을 따라 걷는데 솔향기가 그윽하다. 걷다보면 홍류동계곡을 내려다보며 촛불처럼 불타오르는 암봉들이 펼쳐지기도 한다. 빼어난 문장가였던 최치원과 김종직도, 강희맹도 이 길을 따라 걸으며 시상을 떠올렸을 것이다. 가야 19경은 취적봉, 음풍뢰, 광풍뢰, 분옥폭, 제월담 등으로 줄줄이 이어진다.

길상암 입구에 도착하자 계곡가에 미륵존불, 약사여래불, 불광보탑이 서 있다. 입구에 ‘적멸보궁’이란 글을 새긴 입석이 있지만 길상암은 소나무 숲에 가려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은은하게 들려오는 염불소리가 숲속에 가람이 있음을 알려줄 뿐이다.

길상암을 지나자 홍류동계곡에서 가장 경관이 빼어난 가야 14경 낙화담(落花潭)이다. 낙화담은 기암절벽이 협곡을 이루고, 협곡이 살짝 굽이치면서 신비스러운 담을 만들었다. 가을이면 붉은 단풍이 푸른 담에 비쳐 수채화가 그려진다. 낙화담 상류에서 하얀 물보라를 만들며 흘러내리는 작은 폭포들이 유려하게 흘러와 낙화담으로 합류한다.

해인사로 통하는 고즈넉한 숲길을 따라가면서 산사를 만날 준비를 한다. 해인사 일주문을 통과하자 봉황문으로 곧게 뻗은 길 양쪽으로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전나무, 자작나무들이 좁고 긴 느낌의 진입공간을 만들어준다. 이 진입공간은 세속의 떼를 벗고 성스러운 공간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해인총림’이라는 편액이 붙은 봉황문을 넘어서니 방향이 살짝 틀어지면서 해탈문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이어진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대장경판전에는 수다라장이란 현판이 붙어있다.
진리의 세계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듯 해인사 법당에 드는 길은 일주문에서부터 여러 층의 계단을 올라야한다. 구광루 옆 계단을 올라서자 네모반듯한 해인사 중심마당이 나온다. 마당 뒤 높은 계단 위에 앞면 5칸 옆면 3칸의 대적광전이 육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대적광전 계단 아래 마당에는 삼층석탑과 석등이 서 있다. 대적광전과 구광루, 요사채 등으로 둘러싸인 마당은 외부이면서도 각종 법회와 행사가 열리는 반(半)내부적공간이다.

나는 해인사에 갈 때마다 대적광전 앞에 서서 사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를 바라보며 감탄을 한다. 삼층석탑과 전각들 뒤로 펼쳐지는 남산제일봉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신봉우리에 감싸여 있는 산속의 해인사가 거대한 꽃봉우리 속의 꽃술 같아 보인다.

대적광전과 나란히 비로전이 있고, 두 전각 사이로 돌아가면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대장경판전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 앞에 서게 된다. 해인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대장경판전(국보 제52호)으로 올라간다. 흔히 장경각이라고 부르는 대장경판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팔만대장경(국보 제32호)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기다란 2개의 창고건물이다.

대장경판이 80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는 이유는 장경각의 독특한 설계 때문이다. 대장경판전은 두 건물 사이에 형성된 길쭉한 마당에서 부는 바람이 위아래 크기가 다른 벽면의 살창을 따라 실내로 들어가 대류하면서 대장경판들이 습기에 부식되는 것을 막아준다.

해인사 전각들을 내려다보니 산과 어울린 지붕들이 유려하다. 주변 산과 행복하게 조화를 이룬 해인사 전각들이 나의 마음까지도 아름답게 해준다. 해인사를 나서는데 활짝 핀 해바라기 꽃이 함박웃음을 지어준다.


※여행 쪽지

▶가야산 소리길은 아름다운 홍류동계곡을 따라 해인사까지 가는 길로 대장경테마파크→무릉교탐방지원센터→홍류문→농산정→길상암→영산교→해인사까지 7.2㎞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해인사에서 치인리주차장까지 가려면 30분 정도 추가시간이 필요하다.
▶가는 길 : 광주-대구고속도로 해인사IC→1084번 지방도로를 따라 해인사 방면으로 8.5㎞→가야면소재지 지나 대장경테마파크
▶치인리주차장 근처에는 산채한정식, 산채비빔밥, 더덕구이 등을 먹을 수 있는 식당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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