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의 파노라마 속에 우뚝 솟은 사리탑…그 곳에 오르는 것이 수행이더라 [사찰문화기행] 5대 적멸보궁 (5) -설악산 봉정암

2016년 09월 22일(목) 19:06

사리탑에서 바라 본 봉정암 전경.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아쇼카 순례단 - 해설이 있는 사찰순례

아쇼카 대왕은 인도 최초의 통일제국 마우리아 왕조를 열었다. 그러나 수많은 정복과정에서 저지른 살생을 참회하며 불교에 귀의했다.

재위 말년에 부처님 발자취를 순례하며 비폭력을 진흥하고 윤리에 의한 통치를 펼쳤다.

아쇼카 순례단은 사찰순례를 통해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염원한다.

10보 1배로 봉정암에 오르고 있는 신도들.

1천400년 전, 신라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와 해동 땅 길지를 찾아 봉안했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곳은 지금도 명찰이 돼 전하고 있다. 이른바 5대 적멸보궁으로 불리는 영축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설악산 봉정암이 그곳이다.

화사한 봄날에 시작한 5대 적멸보궁 순례도 끝이 보인다.

어디에 있던 보궁 가는 길은 쉽지 않다. 세속인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는 곳에 모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멸보궁을 참배하는 것만으로도 곧 수행이 된다. 설악산 봉정암 보궁은 더욱 그러하다.

9월 둘째 토요일 새벽 0시, 광주에서 설악산을 향해 버스가 출발했다. 새벽 6시, 백담사 사하촌인 용대마을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마을버스ㄹ르 타고 백담사로 향했다. 오전 9시, 여기서부터는 오직 두 다리만 믿고 걸어야한다. 험한 산길로 10.5㎞. 산악인이 아닌 어르신도 넉넉잡아 5시간 거리이다.

불상이 모셔져있지 않은 적멸보궁에서 기도중인 참배객들.

출발에 앞서 백담사 법당 앞에서 한 무리가 비장한 각오를 한다. 부산에서 왔다는 어느 사찰의 신도들이 스님과 함께 10보 1배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냥 걷기도 힘들다는 봉정암을 10보 1배라니…. 믿기지 않았지만 출발은 함께 했다. 졸지에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하는 동화 속의 토끼가 되고 말았다.

백담사에서 봉정암으로 가는 길은 두 개의 길이 있다. 백담사에서 1시간 가량 편안한 길을 걷다보면 영시암이 나오고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될 무렵에 두 갈래 길로 나뉜다. 오른쪽 길은 봉정암으로 곧장 오르고, 왼쪽 길은 오세암을 거쳐 봉정암으로 오르게 된다.

봉정암 사리탑.

초행자라면 백담계곡을 따라 오르기를 권한다. 물과 바위, 나무의 기운을 받아 걸을 수 있어 참으로 좋은 산행길이다. 대청봉에서 시작한 계곡은 굽이굽이 선녀가 목욕했음직한 깊은 물웅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계속되는 산세의 웅장함에 탄성을 지르다가 쌍용폭포에 이르고 보니 신선이 된듯하다.

또다시 산길로 접어들어 경사가 70도 이상되어 숨이 깔딱깔딱 넘어간다는 깔딱고개를 오르니 봉정암이다.

당나라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돌아온 자장율사가 양산 통도사와 경주 황룡사에 사리를 봉안하고 금강산에 올라 기도했다. 이레째 되는 날이었다. 갑자기 오색 찬란한 봉황이 나타나 남쪽으로 내려가더니 높은 봉우리 위를 선회하고 바위 앞에서 사라졌다. 자세히 보니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명당자리였다.

자장율사는 그곳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5층석탑(보물 제1832호)을 세웠다. 봉황이 사라진 곳은 부처님의 이마에 해당하는 자리이다. 그래서 절 이름도 ‘봉(鳳)황이 부처님 머리(頂)에 깃들었다’하여 봉정암(鳳頂庵. 644년)이라 부른다.

봉정암 부처바위.

봉황이 날개를 접은 하늘은 동해 바다에서 1244m 높이이다. 부처님 산으로 불리는 무등산(1187m)과 거의 같은 하늘이다.

봉정암 사리탑은 3.6m 규모로 거대한 바위를 기단부로 삼아 16개의 연잎을 조각해 그 위에 탑신을 안치했다. 탑신석인 옥개석은 낙수면의 길이가 짧고 경사가 급해 위로 치솟는 느낌이 강하다. 상륜부는 힘찬 횃불처럼 생동감이 있어 눈길을 끈다. 1781년 기록된 ‘봉정암 중수기’에 따르면, 신라 자장율사가 당에서 모셔온 석가모니 부처님 사리 7과를 이 탑에 봉안했다고 전한다. 그렇지만 불교미술가들은 석탑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한다.

사방이 탁 트인 사리탑 앞에 서면 마음이 활짝 열린다. 온갖 세파에 찌든 마음이 바람에 날려 금방 사라지고 만다. 눈앞에 펼쳐진 대 자연이 참으로 장관이다.

사리탑 서쪽으로 설악산에서 가장 험한 능선 중 하나인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이 펼쳐진다. 바위들이 마치 ‘용의 이빨’처럼 치솟아 있다하여 용아장성이다. 산악인들은 공룡의 등과 같다는 공룡능선을 타지 않고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라고 한다. 어느 것 하나 절경 아닌 곳이 없다.

여기가 지극히 즐거운 곳, 바로 극락(極樂)이다. 세속사람들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나기를 기원한다. 불교에서 정토세상을 주관하는 부처님은 아미타 부처님이시다. 아미타 부처님의 또 다른 이름이 무량광(無量光), 또는 무량수(無量壽)이다. 자장율사도 이곳 봉정암에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고 아미타 삼존불을 모셨다고 한다.

사리탑을 호위하는듯 서있는 곰바위

빛고을로 불리는 광주(光州)도 극락의 다른 이름이다. 극락강을 건너면 무량광 부처님(아미타불)이 상주하는 서방정토 극락세상이다. 무량광 부처님이 계시는 고을, 줄여서 광주이다. 그래서 극락세상인 광주에는 유난히 불교에서 유래된 땅이름이 많다. 무등산, 금당산, 염주동, 서방시장 등등이 그러하다.

그래서일까. 봉정암 사리탑 옆에 펼쳐진 용아장성의 쭉쭉 솟은 바위가 무등산 서석대를 연상케 한다.

오후 5시, 봉정암 참배를 마치고 적멸보궁으로 내려가려는데 ‘석가모니 불’ 정근소리가 들린다. 백담사에서 함께 출발한 10보 1배 팀들이다. 스님을 필두로 3-4명의 불자들이 10보 1배를 하고 뒤에서 신도들이 정근을 하며 따랐다. 무려 8시간에 걸친 대장정이다. 올해만 벌써 4번째란다. 도대체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봉정암에는 법당과 요사채가 산재해 있다. 법당은 적멸보궁으로 사리탑을 향해 자리해 있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있어 이곳에도 불상이 없다. 밤을 새워 기도하는 이들로 자리가 빼곡하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봉정암은 순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설악산에 단풍이 물들면 주말에 봉정암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이가 3천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용의 이빨처럼 바위가 솟은 용아장성.

봉정암의 밤은 수행하는 시간이다.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고, 사리탑 앞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다보니 우주의 주인공이 따로 없다. 그렇게 어두운 밤이 지나고 새파란 새벽을 맞는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됐다. 주먹밥을 받아 쥐고 천리 길을 나선다. 모두들 급하다. 쫓아내지 않건만 극락에서 사바세계로 내려가려 한다. 뭣이 중헌디….



설악산 사찰 이름에 얽힌 이야기

백담사, 대청봉 계곡물이 백 번째 머문 자리 오세암, 관음보살이 보살핀 동자

오래된 사찰의 역사는 불과의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중의 사찰은 한번 불이 나면 모든 건물이 한꺼번에 소실되고 만다. 사찰에 불이 나면 화력이 강해서 가까이에 있는 건물들이 남아나지 않는다.

설악산 백담사도 그러했다. 신라 자장율사가 건립한 백담사의 첫 이름은 한계사(寒溪寺)였다.

이후 7차례에 걸쳐 큰 불이나 사찰이 모두 소실됐다. 그때마다 터전을 옮겨 비금사,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영축사 등의 이름으로 중건됐다. 현재의 백담사는 조선 영조 때 자리 잡았다.

백담사는 못(潭)이 많다(百)는 것으로, 거듭되는 화재를 피해보고자 골짜기 흐르는 물의 연원이 길고 깊다는 뜻을 담아 이름 지었다고 한다.

거듭되는 화재로 고민하던 어느 날 밤, 주지스님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났다. 대청봉에서 물 웅덩이(潭)를 세어 100번째 되는 곳에 부처님을 모시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의 자리에 터를 잡고 백 번째 물 웅덩이 사찰, 백담사(百潭寺)라 불렀다.

백담사는 근대에 이르러 한용운 스님이 머물면서 ‘님의 침묵’ 등을 집필하며 독립운동을 하던 만해사상의 산실이 됐다.

오세암도 자장율사가 창건했고 첫 이름은 관음암이었다. 생육신 김시습이 이곳에서 출가했고, 만해 한용운 스님이 머물렀던 유서 깊은 암자이다.

관음암이 오세암으로 바뀐 것은 1643년 설정대사가 중건하면서이다. 당시 설정스님은 관음암에서 고아가 된 5살 조카를 거두고 있었다.

오세암 관세음보살.

설악산은 겨울이 길다. 어느 해, 설정스님은 월동 준비를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탁발하러 나간동안 혼자 있을 어린 조카에게 무섭고 힘들면 법당에서 ‘관세음보살’을 찾으라 했다.

그러나 그해 겨울은 너무 빨리 왔다. 갑자기 밤새 폭설이 내렸다. 설정스님은 이듬해 봄까지 암자에 올라가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러야했다. 긴 겨울을 보내고 암자로 달려간 설정스님은 법당에서 목탁을 치며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는 조카를 보고 놀랐다. 굶어 죽은 줄만 알았던 조카는 관세음보살이 때마다 찾아와 밥도 주고 재워 주고 같이 놀아 주었다는 것이었다.

이에 감동한 설정대사는 어린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암자를 중건하고 오세암(五歲庵)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이야기는 동화작가 정채봉 씨가 ‘오세암’으로 발표했고,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제작돼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아쇼카 순례단 10월 순례 : 10월8일 경북 선산 도리사-모례장자 터 (문의 : 062-383-3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