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사’ 천년사랑이 오늘날 부부애로 이어지다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백제가요 정읍사 오솔길

2016년 11월 01일(화) 18:53

백제가요 정읍사 오솔길을 걷다보면 입암산과 방장산 같은 산들이 한 눈에 조망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노래를 불렀는지는 확실치 않다. 원시사회에서는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가 곧 음악이었을 것이다. 인간이 점차 진화하면서 조잡하지만 원시적인 타악기가 만들어지고, 이런 타악기의 선율에 따라 춤을 추거나 소리를 지르는 형태의 노래가 불려졌다. 언어가 발달하고 문자가 생기면서부터 곡조에 노랫말을 붙인 노래가 탄생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노래가 불리게 됐을까? ‘삼국사기’에 따르면 삼국시대에 이미 가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악지’에는 백제가요로 정읍사를 비롯해 방등산가, 선운산가, 무등산가, 지리산가 등 다섯 곡이 소개돼 있다. 그중에서도 현재까지 가사가 전해지는 가요는 ‘정읍사’뿐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정읍사’는 행상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부른 노래라고 한다.

행상 나가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기다리며 부른 백제가요 정읍사 여인의 망부상.

내장산 단풍으로 널리 알려진 정읍이지만 정읍 사람들에게는 백제가요 정읍사에 대한 자부심이 만만치 않다.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가요 ‘정읍사’를 주제로 ‘정읍사문화공원’을 조성했고 정읍사 여인을 테마로 부부·연인 사이의 천년사랑을 스토리텔링해 ‘백제가요 정읍사 오솔길’을 만들었다.

금슬 좋은 부부나 사랑하는 연인끼리 다정하게 걷기 좋은 길, ‘백제가요 정읍사 오솔길’은 정읍사문화공원에서 시작된다. 1985년 조성된 정읍사문화공원에는 잔디가 푸르고 공원 안에는 정읍시립미술관·정읍사예술회관·정읍시청소년수련관 같은 문화시설도 들어서 있다. 공원에 들어서자 높은 위치에 서 있는 망부상이 인상적이다. 나는 한 계단 한 계단 올라 망부상으로 다가간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두 손을 모으고 다소곳이 서 있는 아낙의 모습을 한 망부상에 올라선다. 오늘도 망부상은 공원의 가장 높은 곳에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표정으로 정읍 시내를 바라보고 서 있다.

전북과학대 정문을 지나 천년고개에 오르니 ‘백제가요 정읍사오솔길’ 이정표가 우리를 산길로 인도한다.

길은 부드러운 능선 숲길을 따라 이어진다. 백제가요 정읍사 오솔길 제1코스는 7개 소구간으로 나눠 부부나 연인이 사랑을 이어가는 과정을 담아놨다. 만남의 길에서 시작하여 환희의 길, 고뇌의 길, 언약의 길, 실천의 길, 탄탄대로의 길, 지킴의 길까지 스토리텔링을 해 조용히 음미하며 걸으려고 한다.

길을 걸을수록 소나무의 크기도 커지고 나무의 품격도 높아진다.

길을 걷다보면 남쪽으로 삼성산과 입암산, 방장산 같은 산들이 해탈한 선승처럼 서있다. 황금색 들판과 산자락에 기댄 마을들은 좌충우돌하며 살아가는 인간세상을 보는 것 같다. 삼성산과 입암산 사이에는 새재가, 입암산과 방장산 사이에는 노령이 있다.

이 고개들은 예로부터 전북과 전남을 잇는 고갯길이었다. 입암산에는 입암산성이 있어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했고, 노령 북사면에 있는 입암면 군령마을은 조선시대 육상교통로인 삼남대로를 지키기 위해 군사들을 주둔시켰던 곳이다.

가끔 주변의 풍광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길은 소나무 일색의 숲길이다. 숲길을 걷다가 북쪽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만난다. 고당산과 망대봉, 칠보산이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그 앞으로 송학마을과 황금색 들판이 자리를 잡았다. 1번 국도와 내장사로 이어지는 도로는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나는 솔향기 그윽한 숲길을 아내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걷는다.

만개한 구절초와 내장산 서래봉이 행복한 조화를 이룬다.

산줄기는 잔잔한 파도처럼 완만하게 이어져 산보하듯 걷기에 좋다. 산길을 걷다가 두꺼비 모양의 두꺼비바위를 만난다. 이 바위를 주민들은 여자들이 시집갈 때 머리를 올린 모습과 비슷하다 해 ‘머리얹은 바위’라고도 부른다.

길을 걸을수록 소나무의 크기가 커지고 나무의 품격도 높아진다. 이렇게 품격 있는 나무가 되기까지는 거센 비바람도 맞아야했고 매서운 추위도 이겨내야 했을 것이다. 마치 인생에 연륜이 쌓이면서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넉넉한 인품을 갖춰가는 것과 같은 현상이리라. 넉넉한 인품을 가진 사람에게 안기면 포근해지듯이 곧게 자란 아름드리나무에 안기니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다.

울창한 시누대 숲길을 지나 내리막길을 따라가자 월령마을이 나온다. 내장저수지 아래쪽 산자락에 위치한 월령마을 앞으로 누렇게 물든 논이 가을풍경을 연출한다. 월영마을에는 세종대왕 스승 이수(李隨) 추모비가 있다. 문정공 이수는 세종대왕 때 황해도관찰사, 이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지낸 인물이다.

내장저수지 아래에는 내장산문화광장이 조성돼 있다. 문화광장은 야외공연장, 정읍시립박물관, 농경문화체험관, 다목적광장, 토산품판매점 등을 갖추고 있다. 내장산문화광장에서 백제가요 정읍사 오솔길 제2코스가 시작된다. 제2코스는 내장저수지 수변로를 따라 한 바퀴 도는 길이다.

내장저수지와 하늘이 누가 더 푸르나 경쟁을 하는 것 같다.

내장저수지 위로 올라가니 호수물이 푸르고 잔잔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호수와 누가 더 푸르나 경쟁을 한다. 호수 뒤로는 멀리 호남정맥상의 추령봉이 바라보이고 내장산 월령봉과 서래봉이 호수 위에 그림자를 비친다. 얼마 후면 저 내장산을 붉게 물들인 단풍이 호수까지도 붉게 채색해줄 것이다.

내장저수지 산책로 옆으로 나 있는 도로를 건너니 내장산조각공원이 기다리고 있다. 서래봉 자락 내장산조각공원에는 전봉준공원이 조성돼 있다. 전봉준공원에는 전봉준장군상과 동학농민혁명기념탑이 서 있다.

전봉준공원을 뒤로 하고 내장산단풍생태공원으로 향한다. 단풍생태공원에 들어서자 하얗게 핀 구절초가 반갑게 맞이한다. 만개한 구절초가 공원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화사하게 해준다. 아직은 시기가 일러 단풍이 붉게 물들지는 않았지만 잔디밭 곳곳에 심어진 단풍나무들이 구절초와 어울린다. 아기자기하게 솟아 있는 서래봉이 단풍생태공원을 바라보며 흐뭇해 한다. 푸른 하늘 아래로 내장산이 흘러가고 내장저수지에는 내장산 봉우리들이 내려와 휴식을 취한다.


※여행쪽지

▶‘백제가요 정읍사 오솔길’은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가요인 정읍사를 스토리텔링한 길로 3개 코스로 이뤄져 있다. 이중 1, 2코스는 걷는 길이고 3코스는 자전거길이다.
△제1코스 : 정읍사공원→천년고개→두꺼비바위→내장터널 갈림길→내장산문화광장(7㎞, 3시간 소요)
△2코스 : 내장산문화광장→내장산조각공원→내장산단풍생태공원→내장산문화광장(4.5㎞, 1시간 30분 소요)
△3코스 : 내장산문화광장→정읍천길→정읍사공원(6.2㎞, 자전거로 30분)
▶가는 길 : 호남고속도로 내장사IC→708번 지방도로 3.7㎞ 이동→신정교차로에서 시청·전북과학대 방향으로 좌회전 4.9㎞ 이동→정읍사 문화공원 주차장
▶내장저수지 근처에는 매운탕과 닭·오리백숙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몇 군데 있다. 그중에서도 호반에 위치한 호수장가든(063-536-4112)이 인기 있다. 매운탕(대 4만원·중 3만원)과 닭백숙(4만원), 오리백숙(4만5천원), 점심특선으로 청국장·된장찌개(7천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