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새봄을 준비하는 늦가을 단상 박유복 광주디자인센터원장

2016년 11월 24일(목) 19:12

늦가을 풍경이 아름답다. 기온은 이미 겨울로 접어들었지만 거리에서 마주하는 가로수는 아직 늦가을 정취를 진하게 내뿜는다.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사르르 떨어지면 그건 한폭의 그림이다. 한희원작가의 은행나무 그림이 생각나게 하는 풍경이 곳곳에서 연출되곤 한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은행잎은 세밀한 가슴 떨림을 유발하지만 길바닥에 내질러진 이파리는 더욱 쓸쓸함을 자아내며 겨울로의 이행에 저항을 고한다. 저 이파리들이 다 떨어지고 나면 이제 고요의 계절이 된다. 모든 것을 다 벗어던지고 오로지 침잠의 세계를 만든다. 그렇게 해야만 헐벗은 계절을 버티어낼 수 있기에. 외관으로는 생명이 없는 듯 침묵을 유지하지만 안으로는 발랄한 생명의 에너지를 품어내어 새로운 봄을 기약한다. 나무 자체로는 참으로 중요한 시기다. 생명의 발아 못지 않게 유지, 진화, 발전의 단계인 셈이다.

광주디자인센터를 책임지는 장으로 복무한지 벌써 8개월째다. 뭔가를 잘 해보려는 각오로 시작했다. 그리고 금방 뭔가를 잘 할 수 있을 성도 싶었다. 그러나 적잖은 격차가 있었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 일이겠지만 직접 부딪혀보니 이러저러한 고려사항을 제낄 수도 없었다. 때문에 생각했던 바로 움직이고 계획했던 바로 추진되기가 다소의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진 않았다. 계속해서 밀어붙이고 개선해가고 할 터이다. 그러는 중에 느끼는 단상 중 하나. 참으로 공조직은 절대로 놀고 먹는 조직이 아니었다. 잘 되리란 기대 하에 많은 예산을 편성해 광주 디자인 분야를 진흥하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10년 동안 광주·전남북에 쏟아진 돈만 하더라도 무려 1천억원에 가까운 돈이 쏟아부어졌을 거다. 물론 그 지원을 받은 디자인 업계도 열심히 뛰었을 것이란 짐작이 든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를 보면 조금 허전하다.

시샛말로 지역을 대표하는 그럴듯한 디자인기업이 성장한 것도 아니고 디자이너가 양성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명품 디자인이 개발돼 지역 경제를 견인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예산이 투입되고 그에 따른 분명한 결과는 없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모르겠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고민의 고민을 거듭해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할 것인지를 모색해야 한다. 이 문제는 광주디자인센터만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본다. 지역 문화와 문화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펌핑하는 광주문화재단과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도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본다. 우리가 빨리 해법을 찾아 투자한 만큼의 결실을 가져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뭔가 좋은 해법이 없나 찬찬히 뜯어보고 시도해보야 하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안에 답을 가지고 있다. 공적 지원기관은 어떤 식의 지원을 했고 또 지원을 받은 측에선 어떻게 했는지를 살펴보면 답을 나올 성도 싶다. 각자도생으로 자신만 열심히 할게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면서 무엇이 지역의 큰 그림에 도움이 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의 에너지를 한데 모아야 한다. 그리하여, 지원금을 말이 나오지 않게 여러단체나 기업에 쪼개어 적당히 나눠주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 디자인의 패러다임을 바꾸거나 지역문화의 발전에 획을 그을 수 있는 사례에 선택과 집중 방식으로 지원할 수도 있고 신생기업이나 젊은 작가에게 실험적이고 도전을 꾀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주기도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적질을 받지 않는 방법의 지원이 아니라 지적질을 받더라도 지역 디자인계와 문화계의 지축을 긍정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길로 가는 이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줄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시작된 겨울의 농도가 짙어지면 각 기관들은 연초에 지원 공모를 해야 한다. 나무이파리 다 내려놓은 이 시기에 새로 터나올 새싹을 어떻게 맞이할지 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