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운동가 이기홍 선생 굴곡진 삶 ‘한 눈에’ 딸 이경순씨 아버지 구술 정리 내일 DJ센터서 출판기념회 정겨울 기자 jwinter@kjdaily.com

2016년 12월 05일(월) 19:35

민족운동가 고(故) 이기홍 선생. /도서출판 선인 제공

“역사의 피가 마르지 않는 상처의 기록이지요. 한국 근·현대사에 꼭 있어야 할 아주 소중한 자료입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올해로 20년이 다 돼 갑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렇게 뒤늦게 유고집을 발간하게 된 데에 유족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민족운동가 이기홍(1912-1996) 선생의 딸 이경순(65)씨는 이같이 밝혔다.

한 평생을 민족의 역사를 위해 싸우고 생을 마감한 민족운동가 이기홍 선생의 구술기록을 정리한 책이 나왔다. 두 권으로 정리된 유고집은 ‘내가 사랑한 민족, 나를 외면한 나라’, ‘역사의 교훈, 우리 민족의 미래’ (도서출판 선인· 각 3만5천원)다.

‘내가 사랑한 민족, 나를 외면한 나라’, ‘역사의 교훈, 우리 민족의 미래’

이 책은 이기홍 선생의 생전 발언, 구술 내용을 기록으로 집대성한 산물이다. 현재 전남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인 딸 이경순씨와 안종철 전 국가인권위원회 본부장이 중심에 섰다. 또 100인의 간행위원들이 물심양면으로 지원, 마침내 지난 6월 책이 완성됐다.

1912년 완도에서 출생한 이기홍 선생은 1929년 광주고보 2년 재학 중 광주학생 독립운동에 참가했다. 이듬해에는 백지동맹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퇴학됐다. 1934년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으로 2년6개월 복역했고, 일제 말인 1939년부터는 거주 제한 조치를 당했다.

“제 기억 속 아버지의 첫 모습은 서대문 형무소를 출감해 광주역에 도착하셨을 때였습니다. 빡빡 깎인 머리와 비쩍 마른 모습은 어린 아이인 제게 너무 낯선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평생을 구금, 체포의 삶을 사셨습니다. 이어지는 구금과 투옥, 보호감찰, 연좌제 등으로 인해 가족 모두가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실제로 이경순씨도 연좌제에 의한 피해를 직접적으로 경험했다고 한다. 일례로, 국내 주요 인사들이 행사 차 광주에 오면 이씨의 집 주변에는 형사들이 여럿 배치돼 종일 이씨의 집 주변을 감시했다고 한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이기홍 선생이 중앙정보부에서 심한 고문을 당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선생의 피 묻은 셔츠를 보고 가족들은 경악했지만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감시와 처벌이 이어지는 폭력적 환경에서 온 가족이 살았던 것이다.

정부의 외압, 오랜 투옥생활로 얻은 노쇠한 몸, 실명 상태에서도 이기홍 선생은 비상한 기억력으로 과거의 일들을 읊조렸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의 기억에만 의존하다 보니 기록으로 남기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아버님은 타계하기 수년 전부터 당신이 살아온 삶을 중심으로 우리 근·현대사를 비롯한 여러 주제에 대해 기록을 남기기 시작하셨어요. 시력은 거의 상실된 상태라 구술하는 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오랜 투옥생활 등으로 노쇠한 아버님의 기억에만 의존하다 보니 말씀이 반복되기도 했어요. 다시 읽고 고치고 그렇게 해서 노트에 기록된 내용 위에 또 다른 종이를 덧대고 내용을 보완, 수정했습니다.”

딸 이경순씨는 책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이기홍 선생이 평소 남겨놓던 기록. 일제시대 당시 악명 높았던 노주봉, 오세영, 이민행 등 앞잡이 형사들에 대한 메모가 적혀있다. /제1권 발췌

“2권 중 제1권은 아버님의 삶에 대한 글쓰기로, 일종의 자전적 글쓰기에 해당합니다. 개인의 일생의 투쟁을 기록해 우리 역사가 외면하고 금기시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죠. 고향 고금도에서의 어린시절부터 광주로 옮긴 이후 86세가 되기까지의 삶을 구술로 기록한 아버님의 글쓰기를 볼 수 있습니다.”

향후 이 책이 역사적 기록, 교육 자료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도 밝혔다.

“구술로 남긴 아버지의 기록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분들의 혼을 불러내 이들의 봉합되지 않은 상처를 대면해 남긴 것입니다. 역사에서 잊혀진 분들을 글쓰기를 통해 남겨둔 것이지요. 희미해지고 흐려진 그들의 투쟁의 역사를 보고 배우면서 치열한 삶과 지혜를 우리 후손들이 직접 기억하길 바란 것입니다.”

한편, 이기홍 선생의 유고집 출판기념회는 7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4층 컨벤션홀에서 열린다. /정겨울 기자 jwinter@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