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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불안한 삶과 희망

‘페스트’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민음사 1만3천원

2016년 12월 11일(일) 19:58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죽음이 난무하는 폐쇄된 공간에 놓인 인간들의 처절함과 고통이 가득하다. 어둠의 그림자는 이웃을 덮치고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들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전염병은 전쟁의 참혹함을 의미한다. 또한 인간의 무지와 과거에 매몰된 구태의연한 삶의 방식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인간들의 헛된 욕망과 거짓된 삶은 결국 도시를 죽음으로 물들인다. 하지만 절망이 깊어질수록 희망의 희미한 불빛은 현실을 극복하는 힘이 된다. 인간에게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이다.

페스트의 저자 카뮈는 “한 가지의 감옥살이를 다른 한 가지의 감옥살이에 빗대어 대신 표현해 보는 것은, 어느 것이건 실제로 존재하는 그 무엇을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에 빗대어 표현해 본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합당한 일”이라는 다니엘 디포를 말을 인용해 소설의 주제를 암시하고 있다.

프랑스의 평범한 도시인 ‘오랑’은 알제리 해안면에 위치한 ‘초목도 없고 넋도 없는 도시’라고 지칭하고 있다. 주인공이자 의사인 ‘베르나르 리유’가 살던 집의 복도에 큰 쥐 한 마리가 불안정한 걸음으로 불쑥 나타나더니 주둥이에서 피를 토하면서 쓰러진다. 그리고 쥐들의 죽음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약 8천마리의 쥐를 수거했다는 뉴스가 발표된다.

시민들의 불안은 절정에 달하고 이후 ‘페스트’라는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기 시작한다. 공포에 질린 시민들은 침울한 도시 안에서 맴돌면서, 오직 지나온 과거만 바라보고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페스트는 도시의 경제생활을 파괴했고 엄청난 숫자의 실업자를 양산한다. 시민들은 바깥세계와 차단당하자 절망적인 행동에 몸을 던진다.

점차 페스트가 모든 것을 뒤덮어 버리고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공포와 반항이 내포된 생이별과 고립의 감정이 넘칠 뿐이었다.

설상가상 도시는 몇 달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서 희뿌연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랑시의 조그만 묘지가 제공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도시는 눈을 크게 뜬 채 잠자고 있는 사람들로 넘치고,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 보는 것은 겉보기에 불과했다. 그들은 아침이 되면 다시 재앙 속으로, 즉 습관적으로 삶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페스트는 고독하면서도 고독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을 공범자로 삼는다. 그는 눈에 띄는 모든 것, 즉 여러 가지 미신, 당치도 않는 두려움, 그 불안한 넋들의 신경과민, 되도록 페스트 이야기는 안 하고자 원하면서 결국에는 그 이야기만 하는 버릇, 그리고 초초해하고 예민한, 요컨대 불안정한 감수성, 망각의 죄로 변형하고 바지 단추 하나면 잃어버려도 안절부절못하는 그들의 감수성, 이 모든 것의 공범자인 것이다.”

오랑 시민들은 이웃을 믿을 수 없다는 것, 나 자신도 모르게 그의 페스트에 감염될 수 있고, 방심한 틈에 병균이 옮을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은 불신과 의심으로 가득했다.

페스트 환자에게 열성을 다하면서 별다른 치료 방법을 찾지 못한 ‘리유’는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도,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더욱 더 피곤한 일이다. 그렇게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피곤해 보이는 것”이라고 절망한다.

시간이 흘러 해가 바뀌자 페스트가 말없이 자신이 나왔던 알 수 없는 어떤 야수의 굴로 다시 기어 들어갈 무렵, 도시 안에는 그 퇴각에 당황해하는 사람이 하나있었다. 경찰에 쫓기고 있는 ‘코타르’였다.

공교롭게도 페스트가 물러나고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 할 때 그는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이유는 불명확하지만 그의 죽음은 새롭게 시작하고자 했던 기회가 사라진 것에 대한 절망감도 작용한 것 같다.

소설의 마지막 문구가 여전히 마음의 울림으로 남아 있다.

“페스트가 사라지자 도시는 흥분의 도가니가 됐다. 하지만 그 기쁨에 들떠 있는 시민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언젠가는 또 다시 인간들에게 불행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