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길을 걷다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고창 예향천리마실길 1코스 (읍성성곽길)

2017년 01월 24일(화) 19:07

고창읍성 동문과 성곽, 옛 성곽과 읍성 뒤로 보이는 현대식 건물들이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고창을 상징하는 문화유적은 선운사와 고창읍성이다. 선운사가 전라북도를 대표하는 불교문화재라면 고창읍성은 우리나라에서 원형이 가장 잘 간직된 읍성이다. 고창읍성은 해미읍성, 낙안읍성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읍성으로도 불린다. 그래서 오늘은 고창읍성을 밟을 수 있는 예향천리마실길 1코스를 걸을 참이다. 고창 예향천리마실길 1코스는 고창터미널에서 시작되지만 터미널에서 고창읍성까지는 시내길이라 우리는 고창읍성에서부터 걸으려 한다.

고창읍성 앞에 도착하니 성문 앞에 너른 잔디광장이 조성돼 있고, 주변에는 고창문화의전당과 고창군립도서관, 고창판소리박물관과 신재효고택이 자리를 잡고 있다. 고창읍성으로 들어서려는데 성밟기 풍습을 형상화한 ‘답성놀이상’이 눈길을 끈다. 고창읍성에는 여자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밟으면 무병장수하고 죽어서 극락에 간다는 전설과 독특한 성밟기 풍속이 전해온다.

우리는 옹성과 북문이 아름답게 어울려있는 고창읍성으로 들어선다.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모습과 같다고 해 이름 붙여진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고 성문을 향해 달려오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고창읍성의 정문 역할을 하는 북문은 2층 누각 형태로 공북루라는 편액이 붙어 있다.

고창읍성 정문격인 북문, 북문 앞의 옹성과 어울려 아름답기 그지없다.

우리는 성벽 위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성을 밟고 걷는 기분이 우여곡절 많았던 우리의 역사 위를 걷는 것 같다. 성 안쪽에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솔숲에도 오솔길이 있어 솔숲길을 걷는 사람도 있다. 이른 오전 솔숲으로 스며드는 햇살이 사뭇 신비롭다.

조선시대 읍성들은 평야 지대에 양면으로 돌을 쌓아 만들어졌고, 성문 위에는 누각을 지어 적을 감시하고 전투를 지휘했으며, 성안에서는 관민이 함께 생활했다. 그러나 고창읍성은 성안에 관아만 두고 주민들은 성 밖에서 생활하다가 유사시에는 성안으로 들어와 함께 싸우며 살 수 있도록 했다.

사적 제145호로 지정된 고창읍성은 높이가 4-6m이고, 둘레는 1천680m이며, 면적은 18만 9천764㎡에 이른다. 일명 모양성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고창지역이 백제 때 모량부리, 모양현으로 불리던 것에서 유래한다. 동쪽으로는 고창의 진산인 방등산이 둘러싸고 있으며, 동·서·북의 세 개의 문과 여섯 군데의 치, 두 군데의 수구문, 옹성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북문에서 천천히 성곽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동문에 도착했다. 적을 방어하고 공격하기 위해 쌓은 옹성은 동문과 어울려 더욱 아름다워졌다. 각기 다른 크기의 자연석을 잘 맞춰 쌓은 성벽은 모자이크 같다.

고창읍성 안에는 현재 14동에 이르는 관아 건물이 복원돼 있다.

동문을 지나서 걷다가 뒤돌아보면 옹성 뒤로 성곽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고창읍내의 건물도 내려다보인다. 성곽은 물이 흐르듯 유연하게 이어지고, 성위를 걷는 우리들의 마음도 덩달아 부드러워진다. 대개 읍성은 평지에 위치해 있는데 고창읍성은 낮은 야산을 따라 이어져 산성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진서루로 불리는 서문 역시 동문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서문 아래로 고창시내가 내려다보인다. 서문을 지나면 고창읍성 앞 잔디광장과 고창문화의전당이 발아래에 와 있다. 북문으로 내려선다. 30분 정도 걸어 고창읍성을 한 바퀴 돈 것이다.

‘성밟기’를 마친 우리는 성안에 있는 관아건물을 둘러보기 위해 안쪽으로 향한다. 성내에는 동헌, 객사 등 22동의 조선시대 관아 건물과 두 개의 못, 네 개의 샘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전쟁과 화재 등으로 없어졌다가 1976년부터 복원되기 시작해 현재는 14동의 관아 건물이 있다. 성안에는 1960년 5월부터 1986년 11월까지 고창여중·고등학교가 있었다. 학교가 있었던 자리는 옛 모습에 가깝게 복원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우리는 성곽을 한 바퀴 돌고, 성안의 관아를 만나고 나서 북문에서 동문으로 가는 성곽 바깥 길을 따라 걷는다. 세월의 떼가 묻은 성곽은 고창읍내의 현대식 건물들과 대비를 이루며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준다. 성곽길을 걸으며 옛 것을 배우고 익힘으로써 새 것을 알게 된다는 온고지신을 생각한다.

노동저수지 건너편의 낮은 야산이 물 위에 잔영을 이룬다.

성벽을 이루고 있는 암회색 바위를 푸른 잎의 소나무들이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이끼 낀 성벽은 푸른 소나무의 무게감을 더해준다. 성곽을 따라 걷다가 동남치 근처에서 모양성과 헤어져 전불길이라 불리는 오솔길로 들어선다. 잔잔한 파도처럼 완만한 야산능선을 따라 가는 길이 고즈넉하다. 솔향 그윽하고 부드러운 오솔길은 정다운 사람과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기에 그지없이 좋다. 걷는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능선 고갯길에서 남쪽 골짜기로 내려서니 골짜기 깊은 곳에 김기서강학당이 자리를 잡고 있다. 김기서는 학문이 깊고 효성이 지극한 선비로 중종 3년(1508)에는 광릉참봉을 지내기도 하였다. 김기서는 중종 14년(1519)에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 등 신진사림들이 대거 숙청당하자 전불사라는 절이 있었던 이곳에 들어와 두문불출하고 후진을 양성했다. 김기서강학당은 명종 3년(1548)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기서강학당에서 다시 고개를 넘어 화산마을로 내려선다. 깊숙한 골짜기에 위치한 화산마을은 비어 있는 집들이 많아 쓸쓸하기까지 하다. 화산마을을 지나 호동마을에 도착하자 몇 그루의 느티나무에 둘러싸인 정자가 발길을 붙잡는다.

취석정(醉石亭)이라 불리는 정자로 노동저수지 위쪽에 위치해 있다. 앞면과 옆면 모두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취석정은 담장 안에 7개, 담장 밖에 3개의 커다란 바위들이 있어 취석정이란 이름을 지었다. 이 바위들은 고인돌이다. 취석(醉石)은 욕심없이 한가로이 살아간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중국 도연명이 술에 취하면 집 앞의 돌 위에서 잠들기도 했다는 고사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호동마을에서 포장된 길을 따라 10분 정도 내려가면 노동마을이 나오고, 노동마을 앞에서는 노동저수지가 푸르다. 저수지 건너편의 낮은 야산이 물위에 잔영을 만든다. 잔잔한 저수지 위로 가끔 철새들이 날아들고, 주변은 한적하고 고요하기만 하다.

노동저수지 위쪽에 있는 취석정, 중국 도연명이 술에 취하면 집앞의 돌 위에서 잠들기도 했다는 고사에서 따온 이름이다.

노동저수지 제방 아래로 내려오니 겨울철이라 텅 빈 논 뒤로 고창읍성이 바라보인다. 낮은 야산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성의 모습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성곽 위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도 이미 성곽과 하나가 됐다. 오래된 향기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엄마 품처럼 포근한 기운을 전해준다.

※여행쪽지

▶고창 예향천리마실길은 고창읍을 둘러싸고 있는 옛길로 7개 코스 65.4㎞에 이른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코스가 1코스 ‘읍성성곽길’인데, 고창터미널→하거리당산→고창읍성→전불길→김기서학당→화산마을→노동저수지까지 13.3㎞로 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고창읍성의 정취를 충분히 맛보려면 성곽 위를 따라 한 바퀴 돌고, 성안의 관아건물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이 경우 40분 정도 추가시간이 필요하다.
▶ 가는 길 : 서해안안고속도로 고창IC 2.1㎞→고창터미널(광주 방향에서는 고창-담양고속도로 남고창IC 4.3㎞→고창터미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