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대 백악기로 떠나는 ‘시간여행’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고성 상족암 공룡길

2017년 02월 28일(화) 18:43

바다로 뻗어나간 능선은 기암절벽을 이루고, 바닷물은 에메랄드빛을 띠어 우아하기까지 하다.

공룡은 인류가 출현하기 훨씬 이전인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인 2억4천500만 년 전부터 2억800만년 전 지구상에 등장해 1억6천년 동안을 살았다. 중생대에 살았던 공룡의 흔적들은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 공룡의 흔적은 대부분 발자국으로 남아있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경남 고성군 상족암 바닷가다. 오늘은 인류가 탄생하기 이전 아주 먼 옛날 한반도의 주인이었던 공룡들의 발자국을 만나러 시간여행을 떠난다. 삼천포 시내를 벗어나면 곧바로 고성군 하이면에 접어든다. 상족암의 물때가 오전시간이 만조기라 용암포에서 출발해 상족암 방향으로 걷기로 하였다. 용암포선착장에서는 사량도로 가는 배가 운항된다.

용암포 입구 주차장에서 시멘트길을 따라 맥전포항으로 넘어가는 길을 따라가다가 산길로 접어든다. 길쭉하게 바다 쪽으로 뻗어있는 야산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바다와 맞닿은 언덕에 도착한다. 지척에 사량도가 솟아 있고, 사량도 앞에 말안장을 닮은 안장섬이 붕긋 떠 있다. 사량도는 윗섬과 아랫섬으로 이뤄져 있다. 사량도 윗섬은 설악산 축소판이라 할 정도로 아기자기한 바위로 이뤄진 지리산이 솟아 있다.

사량도를 등지고 있는 바다에는 작은 섬이 육지와 바짝 붙어 있고, 역광에 비친 바다는 윤슬을 이루며 반짝인다.

사량도 옆에는 수우도가 떠 있고, 수우도 서쪽에 창선도와 남해도가 육지처럼 보인다. 섬으로 둘러싸인 바다는 에메랄드빛을 띠어 우아한 느낌을 준다. 이곳 전망바위 주변은 기암절벽을 이루기도 하고, 주름진 바위가 바다로 스며드는 모양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전망 좋은 바위에 앉아 바다와 하나가 된다.

해변에서 언덕을 넘어가니 맥전포항이다. 맥전포항은 1975년 4월1일 국가어항으로 지정됐고, 주변바다에서 멸치가 많이 잡혀 맥전포항에는 멸치가공시설이 들어서 있다. 항구 동쪽과 서쪽 방파제엔 흰색과 빨강색 등대가 뱃길을 안내한다. 맥전포항은 고성지역에서는 가장 큰 항구라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다.

병풍바위로 가기 전 해변에는 육지와 거의 붙어 있는 작은 섬이 있다. 200평 남짓 되는 초미니 섬은 아기자기한 바위와 소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작은 섬 앞 바위에 앉아 있으니 병풍바위 동쪽의 주상절리를 이룬 기암괴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군청색 바다 너머로 잠시 후 만나게 될 상족암과 공룡박물관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사량도와 수우도, 창선도와 남해도 같은 섬들이 푸른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다도해 풍경은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병풍바위 위쪽에 바다 쪽으로 돌출된 전망대로 올라간다. 이곳 병풍바위전망대에 서니 바닥 유리 아래로 바닷물이 내려다보이고, 옆으로는 병풍바위가 기이한 풍경을 이룬다. 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고 해 병풍바위라 했다. 지하에서 분출된 마그마가 급격하게 식으면서 30-40m 높이로 솟은 다면체의 주상절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병풍바위로 불리는 이곳의 주상절리는 길이가 수백m에 이른다.

상족암 근처 바닷가 암반에는 공룡발자국이 선명하게 박혀 있다. 이곳 공룡발자국은 중생대 박악기 화석이다.

주상절리를 지나 제전마을 앞 해변을 따라 걷는데,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바다가 맑다. 맑고 푸른 바다는 잔잔하고 고요하다. 제전마을 해변은 타원형을 이루며 백사장과 몽돌이 섞인 작은 해수욕장을 만들었다.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내며 걸어가니 파도가 조용히 말을 걸어온다. 내 마음이 단순·소박해진다. 단순·소박한 마음이야말로 자연을 닮은 마음일 것이다.

공룡발자국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제전마을에서부터 상족암으로 이어지는 해변길을 걸어야 한다. 커다란 주차장과 몇 개의 횟집들이 있는 제전마을을 지나면 육지 쪽으로는 해식애를 이루고 있는 퇴적암들이 책을 쌓아놓은 듯이 층암을 이루고 있고, 바다 쪽으로는 잔잔한 물결처럼 넓은 암반을 형성하고 있다.

암반에는 공룡발자국이 선명하게 박혀있다. 이곳의 공룡발자국은 중생대 백악기 화석으로 인근 6㎞에 분포하고 있다. 이곳 공룡발자국은 1982년 1월에 발견됐는데, 공룡발자국화석산지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것이다. 1억 년전 중생대 백악기에 중국대륙과 연결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반도는 거대한 호수지역으로 공룡의 서식지, 공룡의 천국이었다. 호숫가 늪지대였던 이곳에 공룡들의 발자국이 찍히고 그 위로 퇴적물이 쌓이면서 수천년 동안 암석으로 굳어졌던 지층이 다시 지표면으로 올라오면서 퇴적층이 바닷물에 씻기자 발자국이 드러난 것이다.

이 지역은 화석의 선명도나 다양성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곳으로 유라시아대륙에서는 최대의 공룡발자국 화석지로 알려져 있다. 고성 공룡발자국은 세계3대 공룡발자국 산지로도 인정됐고, 천연기념물 제411호로 지정돼 있다.

상족암 바다 건너에는 마그마가 분출되면서 만들어진 주상절리가 병풍처럼 펼쳐지는 병풍바위가 장관을 이룬다.

이곳의 공룡발자국은 종류도 다양하다. 네 발로 걷는 목이 긴 소형 초식공룡(용각류)의 둥근 발자국, 두 발로 걷는 초식공룡(조각류) 발자국, 보행렬이 긴 육식공룡(수각류) 발자국 등이 그것이다. 이곳에서는 공룡발자국은 물론 새의 발자국도 함께 발견돼 퇴적 당시 생태환경의 일부를 엿보게 한다. 이곳의 화석은 공룡의 생태와 퇴적환경 그리고, 새의 진화에 대한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평평한 암반 위에 촛대처럼 솟아 있어 촛대바위라 부르는 바위도 눈길을 끈다. 잠시 상족암 뒤쪽 둔덕을 올라가니 공룡박물관 후문이 있고, 이곳에서 다시 상족암이 있는 해안으로 내려서게 돼 있다. 2004년 문을 연 고성공룡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공룡전문박물관이다. 경남 고성군 전역에서는 5천여점의 공룡발자국 화석이 발견됐으니 고성지역은 가히 공룡들의 수도라 할만하다. 고성군에서는 상족암 위쪽 언덕 위에 공룡박물관을 조성하였다.

계단을 따라 상족암으로 내려선다. 상족암에 내려서니 수만 권의 책을 켜켜이 쌓은 듯한 수성암으로 된 층암절벽이 변산반도 채석강 같은 느낌을 준다. 높이 20m, 둘레 150m에 이르는 돌기둥이 바위산을 떠받들고 있어 사뭇 웅장하기까지 하다. 바다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상족암은 그 모양이 밥상다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상족암에는 바닷물에 침식돼 만들어진 해식동굴이 곳곳에 있어 신비감을 자아낸다.

억겁의 세월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모양 앞에 찰나를 살다가는 인간의 모습이란 한 톨의 먼지에 불과하리라는 생각에 미치자 자연 앞에 스스로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해식동굴 속에서 본 바다풍경은 신선의 눈으로 본 세상 같다. 바다 건너편으로 시야를 돌리니 병풍바위가 상족암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이들은 억겁의 세월 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그리워했을 것이다.


※여행쪽지

▶고성 상족암공룡길은 공룡발자국화석과 아름다운 상족암을 감상하며 걷는 길로 용암포주차장→맥전포항→병풍바위전망대→제전마을→상족암→상족암유람선주차장(또는 공룡박물관)까지 8㎞ 거리로, 3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 : 남해고속도로 곤양IC에서 삼천포 방향으로 12.5㎞ 이동(또는 남해고속도로 사천IC에서 삼천포 방향으로 3번 국도)→주문교차로에서 삼천포항 방향으로 7㎞ 이동→삼천포터미널에서 좌회전해 8.5㎞ 이동→월흥사거리에서 우회전한 후 상족암으로 가지 말고 직진해 2.4㎞ 가면 용암포주차장에 닿는다.
▶공룡발자국 입구에 있는 해변마을인 제전마을에 몇 개의 횟집이 있다. 비싸지 않는 가격으로 싱싱한 회를 먹을 수 있다. 공룡횟집(055-834-5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