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호소’해야만 하는가 정겨울 문화부 기자

2017년 03월 02일(목) 20:11

지난달 21일 광주시청에서 열린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가 적잖이 놀랐다. 1시간 가량 진행된 간담회의 주요 화두는 바로 ‘돈’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대본과 연출을 맡은 박기복 감독은 줄거리나 내용, 장면 등 영화와 관련된 다채로운 설명을 할 법도 했건만, 예산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목소리에는 절박함과 다급함이 배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올해 5-6월 개봉 예정으로 지난해 5월 첫 촬영, 8월 공식 크랭크인에 들어갔다. 하지만 3월 초까지도 전체 분량의 35%만 촬영이 진행됐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더 이상 촬영할 수 없는 한계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오는 10-11일 5·18국립묘지에서 12시간 동안 진행하는 미디어·퍼포먼스 프로젝트 ‘산자와 죽은자를 위한 미디어 툼스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 프로젝트는 5·18민주화운동으로 희생당한 이들의 넋을 달래고 유가족을 위로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사유진 감독은 “예산은 ‘넘어야 할 산’”이라고 설명했다. 영상 맵핑 등 기술을 구현할 장비는 물론, 퍼포먼스 아티스트, 스태프 등에게 지급할 인건비조차 엄두가 안 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과 ‘미디어 툼스톤’은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을 선택했다. 크라우드펀딩은 자금이 없는 예술가 등이 자신의 창작 프로젝트나 사회공익 프로젝트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익명의 다수에게 투자받는 방식을 말한다. 펀딩을 통해 목표 모금액에 일찌감치 도달하면 다행이다. 그러나 모금 결과가 어떻게 될 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두 작품은 광주정신의 핵심인 5·18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어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37년이 지나 잊혀질 위기에 처한 5·18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으나, 사실상 현장에서는 제작의 기본인 예산 문제로 국민들에게 손을 벌리고 있는 실정이다.

아픈 역사를 지닌 ‘어제’를 바꿀 순 없어도 문화로 ‘내일’을 바꿀 순 있다. 광주시와 5월 단체 등 기관의 도움이 절실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