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재준 박사의 책으로 세상읽기] 가난한 부부의 소소한 행복 빈처 현진건 지음 창비8천원 |
| 2017년 03월 19일(일) 19: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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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핑곗거리로 삼고 있는 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난 것과 독립운동가 후손은 3대가 어렵게 지낸다고 스스로 우격다짐해 보지만 실상은 구차한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그동안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주식(株式)도 해봤지만 신통치 않고 오히려 빚만 잔뜩 늘어날 뿐이었다.
어려운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나 역시 신혼집 마련하기가 힘들었다. 전셋집은 커녕 월셋집도 언감생심이었다.
다만 집사람의 혼수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신혼부부 대상의 은행대출을 받아 겨우 전셋집 하나 장만했다. 시간이 흘러 근검절약한 아내 덕분에 작은 아파트 한 채 마련하고, 안분지족(安分知足)하고 살고 있는데 요즘 들어 둘째 아들이 우리집이 가난하다고 극성을 부린다. 매번 나의 월급을 궁금해 하고, 자기 학원비가 얼마 드는데 생활비가 부족하지 않는지, 돈의 사용처를 시시콜콜 물어본다. 그리고는 자기는 ‘흙수저’라고 일침을 가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이웃 아파트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더니 거실도 훨씬 넓고, 가전제품도 고급스럽다고 침 튀기면 재잘거린다. 아들의 말에 수긍하기 뭐해서 집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설득해 봤지만 별 소용이 없다.
아들이 타협안으로 제시한 것이 흙수저는 맞긴 맞는데 은과 금이 조금 섞여 있는 것으로 애써 아빠를 위로한다.
현진건의 ‘빈처(貧妻)’는 일제강점기 1921년 1월 개벽 7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가난한 아내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단편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가난한 무명작가다.
2년 동안 별 소득이 없었기에 그의 아내가 집에 있던 가구나 의복들을 하나둘씩 전당포에 맡기고 힘겹게 생활한다.
그는 친척이 가지고 온 양산(洋傘)에 관심을 보이는 아내에게 괜한 자격지심에 “막벌이꾼한테나 시집을 갈 것이지, 누가 내게 시집을 오랬어! 저따위가 예술가의 처가 다 뭐야!”라며 심술을 부린다. 하지만 이런 다툼 속에서도 아내는 변함없이 그의 성공을 마음속으로 깊이깊이 믿어주고 응원해준다.
어느 때에는 글을 쓰다가 마음에 맞지 아니해 쓰던 것을 집어던지고 화를 낼 적에 “왜 마음을 조급하게 잡수셔요! 저는 꼭 당신의 이름이 세상에 빛날 날이 있을 줄 믿어요. 우리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 것이 장래에 잘 될 근본이야요”라며 위로와 격려를 해준다.
어느 날 장인의 생신날을 맞이해 초라한 옷차림의 아내 걱정에 처갓집 가는 내내 발걸음이 무겁다.
장인댁에 도착해 잘사는 처형의 비단옷 행색과 수척한 아내의 모습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상심하고 낙담한다. 결국 울적한 마음에 연거푸 술을 마시고 만취한다.
다음날 부부는 처형의 눈 위에 멍든 것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작은 행복을 느낀다. 처형의 남편이 미두(米豆)투기로 돈을 딴 뒤 어떤 기생을 얻고, 집안 사람들을 들볶고 걸핏하면 처형을 때린다는 것이다. 며칠 후 처형이 집에 놀러 온다. 그녀는 남편을 졸라서 받은 100원으로 신발도 한 켤레 사오고, 각종 옷감들을 자랑스레 보여준다. 그리고 남편의 흉을 보기 시작한다. 이러한 광경에 그는 “밉살스러우니 추근추근하니 해도 물질의 만족만 얻으면 그것으로 위로하고 기뻐하는 처형의 생활이 참 가련하다”고 생각한다.
선물 받은 신발을 신어본 아내의 표정에는 기쁨이 가득하다. 이런 모습에 나도 어서 출세를 해 비단신 한 켤레쯤은 사주고 싶다는 말을 꺼내자 아내는 “얼마 안돼 그렇게 될 것이야요!”라고 힘 있게 말한다.
아직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무명작가를 아내가 인정을 해주고 있는 것에 감격한다. 그는 마음속으로 ‘아아, 나에게 위안을 주고 원조를 주는 천사여!’하면서 두 팔로 덥석 아내의 허리를 잡아 가슴에 바싹 안았다. 두 사람의 눈에는 그렁그렁한 눈물이 물 끓듯 넘쳐흐른다.
사람들은 결혼을 하면 다들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중에서 경제적 문제는 행복의 커다란 걸림돌이 되기 마련이다. 필자도 돈 때문에 부부싸움을 자주하고, 갈등의 골이 크게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모든 원인의 제공자는 나였다. 하지만 사업실패와 잦은 이직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살뜰히 챙겨주는 아내의 내조에 힘입어 매번 일어서는 용기를 얻었다. 사랑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가장 큰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