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병채 박사의 신 해양실크로드] 수많은 이야기 품고 있는 해양실크로드 거점 [신 해양실크로드] 남인도의 마하발리푸람 (3) |
| 2017년 03월 21일(화) 1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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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보니, 작은 마을인데도 깔끔하고 예쁘다. 암반으로 이루어진 뒷산의 등대를 중심으로, 남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관광도시여서 그런지 깨끗하고 서구화된 레스토랑이나 숙소가 많다. 한겨울인데도 날씨가 덥다. 동네 구경에 나섰다. 집집마다 대문이 참 예쁘다. 대문 앞 땅바닥에 힌두교 그림을 그려 놓은 집이 많다. ‘꼴람’이라는 기하학적인 그림이다. 원색 물감으로 햇빛에 선명하다. 멋지다. 북인도에서는 보지 못한 풍경이다. 큰 길로 나가니, 빨간 사리를 입은 단체객이 참배하러 떠난다. 길가 가게에서 여자들 웃음소리가 요란해서 돌아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바로 달려와서는 사진을 찍자고 한다. 할일 없는 여행자는 흔쾌히 허락했다.
작은 해변 마을이지만, 석조 문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돌 조각품 가게가 아주 많다. 줄줄이 이어진 가게의 모습이, 마치 마을 전체를 조각품으로 만들고 있다. 하나하나가 너무나 정교하게 잘 다듬어진 물품들이다. 이 많은 조각품들을 대체 누가 사 갈까? 너무나 많은 판매 가게다. 1천5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선조들의 돌 조각 재능은 오늘에도 후손들에게 이어져서 면면히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이 모여드나 보다. 작은 마을이나, 조각을 연구하는 미술대학까지 있다고 한다.
유적지 인근은 노점상으로 붐빈다. 각종 공예품이며 그림, 사진 등을 사달라고 졸라댔다. 모두 단단한 화강암을 깎아 만든 것들이다. 휴양·관광의 거점이기도 하다.
▶힌두교 성지이자, 성지순례의 출발지
현재는 시바 신 사원의 성지이자, 성지순례의 출발지이다. 인도인들에게 정신적인 고향인 것이다. 마을 전체가 고대 유적들로 꽉 차 있다. 거의 ‘시바 신의 사원’이다. 힌두교 사원이다. 모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아르주나 고행상, 동굴사원(만다파), 수레사원(파이브라타스), 해안사원 등이다. 나라시마바르만 1세(630-668) 때 많은 유적이 건립됐다. 한결같이, 하나의 통 바위를 깎아서 만들었다. 정말 놀라운 작업이다. 부드럽고 유연한 조각기술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지금도 인근에는 조각해 파는 상점들이 즐비했다.
바닷가를 떠나 힌두 사원과 조각들을 순례했다. 북인도 사원들에서 보이던 극도의 정교함과 끝없는 반복은 없다. 다만 간결한 선과 여유로운 담백함이 특징이다. 이것이 남인도 드라비다의 문화의 정수란다. 똑같은 힌두 신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오히려 인간적이다.
고대 팔라바 왕조 때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다. 배후도시로 칸치푸람이 버티고 있었다. 당시에 칸치푸람은 남인도의 중심지였다. 특히, 4-9세기에 ‘팔라바 왕조’시대에 가장 번성했다. 당나라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에도 기록돼 있다. ‘비자야라야 왕(850-871년)’과 ‘라자라자 왕(985-1014년)’때는 번성이 극에 달했다. 남인도 전역을 물론이고 스리랑카 북부까지 지배했다. 대제국이었다. 역사적인 거대한 사원들을 건립하는 등 남인도 문화가 절정에 이르렀다. 막가한 해군력으로 ‘해상무역’을 독점했다. 이전까지 독점 무역을 하고 있던 ‘아랍 상인’ 세력을 꺾고, 중동 및 그리스 상인들과 활발히 교역을 주도했다. 동으로는 벵골 만을 지배했다. 7세기(630-728)에는 동남아까지 강력한 위세를 떨쳤다. 캄보디아 앙코르왕국, 인도네시아 스리비자야왕국, 베트남 참파왕국 등을 세우고 지배했다. 또한, 이 시대에 “중국에까지 사신을 파견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칸치푸람은 세계 대제국의 중심지였고, 마하발리푸람은 동서교역의 중심무역항이었던 것이다. 해가 떠오르는 이곳 벵골 만은 인도인에게 영광의 역사가 기록된 바다다. 벵골 만의 파도는 그 때나 지금이나 이곳 해안을 넘나들고 있었다.
▶ 중국까지 사신을 파견했던 제국
마을을 지나 바닷가로 간다. 인도양의 벵골 만이다. 해변 모래 위로 소떼가 지나간다. 어디서 만나든 바다는 넓은 품으로 사람을 맞아준다. 아무렇게나 바지를 적시며 자유를 만끽한다. 벵골만의 넉넉함이 여유를 안겨준다. 여행이 주는 특별한 선물이다.
500여년간 남인도의 중심에 서 있던 고대 항구다. 한때 이곳을 통해서 중국에까지 사신을 파견했다. 달마대사도 이곳을 출발해 중국 광저우를 거쳐 한반도 남단 달마산까지 왔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혜초도 다녀갔으며 임진왜란의 영웅인 김시민의 아들과도 관련이 깊은 곳이다.
아름다운 사원! 옛 동서교역의 거점! 비슈누가 마하발리라는 거인을 무찌른 신화에서 이름을 따 이름 지어진 항구! 해안가에 앉아 벵골 만을 바라본다. 파도 소리, 평화로운 해질녘의 바다다. 통나무 몇 조각을 묶어 만든 배들이 길게 모래밭에 묶여 있다. 바람이 많이 분다. 무언가 많은 것을 생각하고 싶었는데, 말문이 막힌다. 구름 사이로 작게 내비친 하늘의 색깔이 지독히 파랗다. 빛나는 햇빛에 나뭇잎들이 흔들린다. 지금은 그저 한적한 작은 어촌이지만, 과거 한 때 동서양을 연결하는 교역의 심장부였다.
우연히 마주친 한 금발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예술적 감성과 해박한 역사지식을 가진 여자였다. 이 아름다운 곳을 겨우 몇 시간 머물다 사진 몇 장 찍고 떠나느냐고 나를 가엾어 했다.
그녀의 말이 맞다. 저녁 지는 해를 보며 신전에 올랐다. 노을에 비친 바다가 을씨년스럽다. 몇몇 여행자가 바위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마하발리푸람! 이번 여행에서 가장 떠나기 싫었던 곳. 잘 모르고 짰던 여행계획 때문에 잠시 스치고 지나가야 했던 곳.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 고대 우리나라 문화에 영향
가끔 길에서 ‘아빠’ ‘엄마’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마냥 정겹다. 우리와 똑같이 들판의 풀을 풀이라 하고, ‘이리 와’는 ‘잉게 와’라고 한다. 타밀어! 한국말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런가 하면, 사람도 우리와 닮은 게 많다. 북인도와는 달리 쌀을 주식으로 한다. 모내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여기가 한국이 아닌가하는 착각이 든다. 약과나 송편과 비슷한 음식도 먹는다. 자치기 놀이를 하며 아기가 태어나면 금줄을 친다. 댕기 머리나 쪽 찐 머리를 한 여인들의 모습은 우리 어머니,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친근하고 따뜻한 마음씨에 정감이 가는 곳이다. 어쨌거나 우리의 정서다.
달마대사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멀지 않는 ‘칸치푸람’이란 옛 수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림사에 가서 명상(meditation), 한약재(medicine), 무술(martial art)의 3M을 전파했다. 우리나라에까지 왔다는 설이 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달마대사가 선불교를 전하려, 배를 타고 ‘해 뜨는 동방의 나라(한반도)’로 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여하튼 그는 우리나라 불교의 기틀인 조계종의 토대를 줬던 사람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 거리에서 달마대사와 흡사한 얼굴을 자주 접하고 보니, 감회가 새롭게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김수로 왕에게 시집 간 허황옥가 타밀 사람이라고 여기서는 말한다. 허황후 능에 있는 ‘쌍어문’이 바로 ‘판디아 왕조의 국가문양’이다. 선박에 실고 온 ‘파사 석탑’의 돌 역시 이곳 산지라고 한다.
당시 당나라 현장법사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혜초 스님도 이곳을 다녀갔다. 스님은 중국 광저우에서 배를 타고, 인도 갠지스 강 하구인 쿨카타(캘커타)에서 일단 내린 후 북천축국을 순례한 후, 이곳까지 내려와 남천축국을 방문했다고 적고 있다.
임진왜란의 영웅인 김시민의 아들도 이곳을 왔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일본 전통 역사 사극인 ‘가부키’에 등장한다. 그는 이곳에서 기독교의 마법을 배워 도요토미 암살을 시도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이처럼 이곳은 고대로부터 우리와 활발한 교류를 통해 수많은 전설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