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예산 가야9곡 녹색길

‘가야9곡’의 비경, 옥계저수지가 대신하고…

2017년 03월 28일(화) 18:43
가야9곡 하류를 막은 옥계저수지. 저수지 위로 가야산과 주변 마을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조선시대의 인문지리지인 이중환의 ‘택리지’에 따르면 “서산·해미·태안·면천·당진·홍주·덕산·예산·신창 등 가야산이 품고 있는 앞뒤 10고을을 내포(內浦)”라 했다. 내포 땅은 가야산을 중심으로 서쪽의 서산·태안·당진지역은 서해안과 접해있고, 동쪽의 예산 땅은 내륙으로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가야산 자락에 살았던 병계 윤봉구는 옥양봉과 석문봉 동쪽 계곡의 아름다운 비경 9곳을 가야9곡이라 이름 지었다. 조선 영조 때 청도군수와 공조판서를 지낸 윤봉구는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수려한 석문담에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 따서 정사를 짓고 학문에 정진했다. 가야구곡은 조선후기 풍류를 즐기는 충청도 선비들의 문화공간이 돼 내포지역 선비치고 가야9곡을 다녀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가야9곡을 따라 걷는 길이 가야9곡 녹색길이다. 가야9곡 녹색길을 걷기 위해 덕산온천으로 향한다. 가야9곡 녹색길은 덕산온천지구에 있는 예산군관광안내소에서 시작된다. 녹색길은 온천단지내 도로를 따라가다가 광덕사로 이어진다. 가야산 남쪽 자락에 파묻혀 있는 광덕사 주변은 적송 숲이 울창하여 겨울철에도 청신한 기운이 넘쳐흐른다.

광덕사는 고풍스럽지는 않지만 깔끔하고 잘 정돈된 느낌이다. 대웅전과 극락전이 나란히 서 있고, 그 아래쪽 마당에서 9층석탑이 중생들을 맞이한다. 광덕사에서 혼탁한 마음을 정화하고 나서 절집을 나선다.

조선 헌종의 태실. 일제강점기 때 훼손된 것을 2009년 복원했다.
밭 가운데로 난 농로를 따라 가다가 작은 고개를 넘으니 옥계저수지가 푸르다. 길은 옥계저수지 둘레 숲길을 따라 이어진다. 가야구곡 하류에 만들어진 옥계저수지 제방에서 바라보니 가야산과 산자락에 기대고 있는 마을들이 잔잔한 물위에 그림자를 만든다. 제방 아래로 덕산면소재지의 건물들이 내려다보인다. 때마침 덕산면소재지 건물 위로 날아가는 가창오리떼가 장관을 이룬다. 가창오리떼는 금새 옥계저수지 위에서 군무를 펼치더니 이내 저수지 수면위에 앉는다. 옥계저수지에는 수십만 마리에 이르는 철새가 수면 위에 수많은 점을 찍어놓은 것처럼 앉아 있다.

옥계저수지 제방에 가야9곡 중 1곡인 관어대(觀漁臺)라 쓰인 표지판이 서 있다. 관어대는 가야산 골짜기에서 흘러온 물이 한곳에 모였던 곳으로 넓은 개울이 형성돼 낚시하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옥계저수지가 생기면서 관어대는 수몰되고 지금은 넓은 저수지를 관람할 수 있을 뿐이다.

발아래에서는 푸른 저수지가 잔잔하고, 저수지 옆 숲길은 한없이 고요하다. 잔잔하고 고요한 길을 천천히 걸으니 내 마음도 잔잔하고 고요해지는 것 같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를 벗어나 고요한 길을 천천히 걷다보니 마음속에 여백이 생긴다.

가야9곡 중 제4곡 석문담은 작은 폭포와 넓은 담을 이루고 있다.
가야9곡 녹색길을 걷다가 작은 봉우리로 올라서니 조선 헌종의 태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조선 왕실은 아기가 태어나면 태를 백자 항아리에 담아 보관해뒀다가 아기의 무병장수와 왕실 번영을 위해 전국의 명산에 묻었다. 일제강점기 훼손된 헌종 태실을 예산군이 2009년 복원했다.

태실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와 그윽한 솔숲 길을 걷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나는 땅과 교감을 한다. 대지는 만물의 어머니, 그 땅에 의지해서 모든 생물이 살아간다. 사람 역시 대지에 의존하고, 대지의 보살핌 속에서 살아간다.

옥계저수지를 막 벗어나자 가야9곡 중 제2곡인 옥병계가 기다리고 있다. 원래는 옥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가에 병풍같은 바위가 있어 옥병계(玉屛溪)라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바위 앞으로 도로가 뚫리고 둑까지 쌓아 옛 정취는 반감이 되어버렸다.

2대에 걸쳐 왕이 나올 명당이라는 남연군묘.
옥병계를 지나면서부터는 우리는 하천변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제3곡 습운천(濕雲泉)은 제방공사가 끝나는 지점의 조그마한 보다. 두 개의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으로 습지처럼 늘 신비로운 구름이 덮여있었다고 해 습운천이라 불렀다.

습운천 근처에서 길은 다시 숲길로 들어선다.

천변 숲길은 봄을 맞이한 나무들이 길손들을 편안하게 맞이하고, 푹신한 흙길은 가벼운 마음으로 걷기에 그지없이 좋다. 따스한 날씨에 생기발발해진 새들의 노랫소리가 경쾌하다. 흐르는 물소리도 봄기운을 싣고 거침없이 흘러간다.

제4곡 석문담(石門潭)에 도착하자 일행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주변 반석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석문담은 가야9곡 중에서 가장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석문담은 작은 폭포와 넓은 담을 이루고 있고, 폭포 양쪽에 기둥처럼 바위가 솟아있어 석문담이라 불렀다.

석문담을 지나 천변 농로를 따라서 걷는데, 정면에서 가야산 옥양봉이 부드럽게 품을 열어준다.

산자락에는 상가리 마을이 자리를 잡았다. 가야산 산줄기가 삼면에서 감싸고 있는 상가리 마을은 요람속의 아이처럼 포근해 보인다.

가창오리떼가 옥계저수지 위에서 군무를 펼치는 모습이 장관이다.
이제 우리는 남연군묘로 향한다. 남연군묘 앞에 서자 풍수지리에 대한 식견이 부족한 내가 보기에도 예사 터가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가야산 석문봉을 주산으로 하고, 양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산줄기가 좌청룡우백호를 이루고 있다. 좌청룡과 우백호의 가운데로는 동남향으로 까마득하게 전망이 트이면서 60리 떨어진 곳에 있는 봉수산이 안산이 된다.

석문봉에서 이어져온 지맥은 남연군묘 앞에서 끝나고, 청룡맥의 물줄기와 백호맥의 물줄기가 합쳐진다.

남연군묘는 여기에 얽힌 풍수적인 사연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흥선대원군이 지관에게 2대에 걸쳐 천자(天子)가 나올 자리라는 이야기를 듣고, 원래 있었던 가야사라는 절을 불태우고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이장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남연군묘를 쓴 지 7년만인 1852년에 대원군은 둘째아들을 얻었고, 12살 때인 1863년에 이 아이는 고종이 됐다. 그리고 고종의 아들인 순종까지 왕위에 오르고 조선은 막을 내리게 됐다.

남연군묘에서 평지로 내려오니 조그마한 맞배지붕을 한 기와집이 있고, 그 안에 상여가 안치돼 있다. 남은들상여로 진품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있고, 이곳에 있는 상여는 원형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중요 민속자료 제31호로 지정된 남은들상여는 이 상여를 보존해 왔던 마을 이름을 딴 것이다. 남은들상여는 남연군의 묘소를 이곳으로 옮길 때 쓰였던 상여다.

남은들상여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 상가저수지가 나온다. 상가저수지 제방에서 내려다보니 남연군묘와 아래쪽 상가리 마을이 가야산에 파묻혀 있는 모양새다.

가야9곡 녹색길은 남연군묘 건너편 산자락을 따라 상가리 마을회관으로 내려서게 돼 있다. 가끔 만나는 민가는 소박하고, 한봉 벌통이 흙담 앞에 서 있는 모습은 정답기도 하다. 농로를 따라 내려와 상가리 마을회관에 도착한다. 목장승 두 기가 웃음으로 맞이한다. 가야산 줄기가 여전히 마을과 그 속에 깃든 사람들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여행쪽지

▶코스 : 예산군관광안내소→광덕사→옥계저수지→옥병계→석문담→상가리마을회관→상가리미륵불→남연군묘→상가저수지→상가리마을회관(13.7㎞·4시간 소요)
▶ 10분 거리에 있는 수덕사 상가에 식당이 많다. 대부분의 식당이 산채비빔밥, 산채더덕비빔밥, 산채된장백반을 주메뉴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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