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출신 꽃예술 작가 노민영씨, 中상하이국제꽃박람회 대상 수상 “광주, 꽃이 많은 도시로 바뀌고 명품 정원 돼야” 조선말 민가 정원 구현…특유의 단아함 뽐내 자연 조화 한국美 ‘밤가시 초가’ 한한령 뚫어 “2년 전 맥 끊긴 ‘광주봄꽃박람회’ 부활 절실” 사진=김영근 기자 kyg@kjdaily.com

2017년 04월 09일(일) 19:44

프로필 ▲조선대 미술대학 디자인학 박사과정 공공디자인 전공 ▲디자인휴먼 대표 ▲독일 플로리스트 국가공인 자격증 ▲광주시도시정원정책자문관 ▲2015년 방콕 세계플라워디자인 경연대회 3관왕

중국 상하이에서 광주의 저력이 다시 한 번 빛났다. 바로 광주 출신 작가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한국형 정원이 지난달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꽃박람회에서 대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 등 우리나라와 중국 간의 외교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 팀이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주인공은 지난 20여년간 플로리스트로 활동했고 이제는 플로리스트를 양성하는 ‘디자인 휴먼’의 대표인 노민영(43) 작가다.

노 작가는 ‘가든 디자인 뜰’ 대표인 권혁문(43) 작가와 함께 고양시의 지원을 받아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

두 작가는 팀을 이뤄 지난달 24일부터 중국 상하이 식물원에서 개최한 ‘2017상하이국제꽃박람회’에 실내 원예 전시 구역에 초청돼 ‘대한민국 고양시 정원’을 선보였다.

‘고양시 정원’은 고양시에 위치한 ‘밤가시 초가’를 모티프로 한국인의 서정적인 삶을 표현한 한국형 정원이라고 보면 된다. 밤가시 초가의 독특한 지붕과 마당 형태를 응용한 ‘하늘을 담은 우물’과 ‘숯’을 소재로 담장을 조성하고 나무와 꽃을 사랑하는 한국인의 마음을 담았다.

“상하이국제꽃박람회는 고양시국제꽃박람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습니다. 상하이에서 고양시의 국제꽃박람회를 초청했고, 서울에 있는 권 작가가 이 박람회에 저와 함께 참여하고 싶다고 제안했어요. 정원의 시공과 설계는 권 작가가, 디자인 부분은 제가 담당해서 함께 작업했죠.”

노 작가가 박람회에 내놓은 작품의 특성은 단연 ‘한국의 미(美)’다. 전 세계에서 열리는 수많은 정원·꽃박람회에서 예쁘게만 보여지는 작품을 내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노 작가는 정원을 디자인할 때 단순히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연과 어우러지는 형식의 정원을 꾸미겠다고 마음먹었다. 결국 예쁜 것만 추구하다 보면 자연과 조화가 이뤄지지 않아 어색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또 하나 중점을 둔 것은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다. 한국 대표로 국제 대회에 출전한 만큼, 한국 정원의 미를 세계에 알려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밤가시 초가’다.

상하이국제꽃박람회에 출품한 ‘밤가시 초가’ 일부.

“흔히 많은 꽃예술 작가들이 한국 정원을 구현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궁궐 정원을 만듭니다. 저는 궁궐정원처럼 늘 보여줬던 방식이 아닌, 조선 말기에 지어진 민가의 정원을 구현하려고 했습니다. 서민들이 살았던 공간이라 서정적이면서도 한국 특유의 단아함이 매력이죠. 특히 자연과 어우러지지 않아 낯선 정원보다도, 늘 자연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정원이 더욱 아름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향 땅에서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식물을 구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만들기로 계획한 정원에 대한 모티프 설정과 디자인 구상은 끝났지만, 거기에 필요한 식물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밤가시 초가’를 구현하기에는 당시 원하는 식물이 20% 밖에 확보가 안 됐어요. 어쩔 수 없이 현지에서 화훼시장을 다 돌아다녔죠. 다행히도 상하이 기후가 우리나라와 비슷해서 기후에 맞는 식물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초가’의 정원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자연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이끼와 풀이라고 생각했어요. 최대한 자연과 가까운 형태의 정원을 만들어 내야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시장에서 이끼 100판을 달라고 했어요. 시장에서도 그처럼 많은 이끼를 한 번에 팔아본 적은 없더라고요.”

노 작가는 짧은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이끼, 한국의 냉이풀, 큰개불알풀 등을 이용해서 최대한의 디테일을 살렸다. 봄이 되면 자연스레 자라나는 잡풀들을 심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만들어 내 마침내 대상을 수상했다.

“중국과 우리나라가 현재 외교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어서, 대회 참가 전부터 주변 분들께서 걱정을 많이 해 주시더라고요. 하지만 걱정하던 문제는 없었습니다. 원하는 식물들도 상하이 식물원 측에서 직접 공수해줬고요.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수로서 대상을 받아서 더욱 값진 것 같아요.”

노 작가는 플로리스트로서의 삶을 산 지 20여년이 훌쩍 넘은 베테랑이다. 대학 시절 학부 전공을 조경학, 대학원에서 미술 디자인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다. 9년 전 독일로 넘어가 국가공인 플로리스트 자격증도 받았다.

그러던 중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에 코디네이터 전문계약직으로 일도 했었다. 박람회장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원박람회 일을 하면서 국내 참여 작가들을 섭외하는 등 본격 정원 전문가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2014년 서울시청에서 주관한 대한민국 조경문화박람회에 전시·예술 총감독을 맡은 바 있다. 현재는 화훼, 정원, 색채 전문 아카데미인 ‘디자인 휴먼’을 운영하면서 꽃예술 분야의 후학을 양성하고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다.

노 작가가 이처럼 꽃예술 분야의 전문가로서 성장한 것은 그가 나고 자란 고향이 한몫 했다. 노 작가의 고향은 매년 나비축제가 열리는 함평이다.

“아무래도 자연과 가깝게 지내다 보니 디자인을 자연으로 풀어내는 것이 남들보다 더 쉽게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꽃을 만지고 활용하는 속도가 빨랐던 것 같습니다. 독일 학교에서 국제플로리스트 국가공인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 방콕 플라워디자인쇼에서 3관왕을 하기도 했죠.”

‘밤가시 초가’ 작품에서 권혁문 작가와 노민영(오른쪽) 작가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노 작가는 광주시 도시정원정책전문관으로서 일도 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꽃예술 관련 대회를 나가고, 다양한 정원의 우수사례를 관망한 노 작가로서는 광주 내 정원을 볼 때 누구보다 아쉬운 점이 많다.

“광주가 꽃이 많은 도시로 바뀌고 명품정원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새로운 정원을 꾸미는 것보다는 동네마다 있는 근린공원을 대상으로 정원의 관점에서 공원을 리뉴얼했으면 좋겠어요. 큰 나무들은 굳이 건드리지 말고 관목부터 심어서 감성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이죠. 아파트 밀도가 높은 도시에, 사람들이 너무 같은 구조 속에만 있다보니 내 집에서 가까운 근린공원에 갔을 때 힐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환경 온도가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 공공기관, 기업부터 옥상정원을 추진해야 해요. 옥상정원은 학술적으로도 30%의 에너지 효율이 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도 정원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노 작가는 지난 14년 전부터 11년 동안 이어오다 2년 전부터 맥이 끊긴 광주봄꽃박람회가 부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원, 식물, 꽃이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큽니다. 전 세계적으로 식물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상황인데, 시민들이 꽃을 바라보며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시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차적으로는 생산 농가에, 2차적으로는 소상공인들이 박람회라는 무대에서 새로운 꽃의 세계를 우리 문화를 선보이는 자리로 마련해야 합니다.”

한편, 노 작가는 상하이에서의 선전을 마치고 오는 9월 중국 광저우에서 열리는 꽃박람회에도 참석한다.
/글=정겨울 기자 jwinter@kjdaily.com
/사진=김영근 기자 kyg@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