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제주 올레 2코스(광치기해변-온평포구) 탐라국 시조 ‘삼신인’ 혼례 흔적 찾아서…

2017년 04월 11일(화) 19:17

성산 일출봉 근처 광치기해변 유채밭은 노란 물감을 흩뿌려놓은 듯 아름답게 펼쳐진다.

광치기해변에서 보는 성산일출봉은 언제 봐도 장관이다. 망망대해를 향해 우뚝 솟아 있는 일출봉은 수평과 수직이 만나 이룬 예술품이다. 쪽빛 바다는 암회색 일출봉과 색상의 대비를 이루고, 파도는 해변 모래사장과 만나 유려한 곡선을 만든다. 광치기해변에서 도로를 건너니 노란 물감을 흩뿌려놓은 듯한 유채밭이 드넓게 펼쳐진다. 유채꽃은 고혹적인 향기를 내뿜고, 일출봉은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낸다. 노랗게 핀 유채꽃과 어울린 일출봉의 모습은 제주도 봄 풍경의 상징이 된지 오래다. 봄을 싣고 달려온 유채꽃은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사람들의 가슴을 활짝 펴게 해준다.

유채꽃밭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광활한 호수같은 성산만 내수면이 온전히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내수면 주변에서는 말들이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다.

호수가 된 성산만 내수면은 잔잔하고 한없이 고요하다.

올레길은 내수면 둘레로 이어진다. 성산만 내수면에서는 국제 멸종위기종 1급으로 보호되고 있는 천연기념물 저어새·노랑부리저어새를 비롯해 수많은 철새들이 겨울을 난다. 호수가 되어 버린 내수면은 잔잔하고, 한없이 고요하다. 내수면 안쪽에는 돌담처럼 둑과 석축을 쌓아 만든 양어장이 경지정리가 잘된 논처럼 보인다.

성산만 내수면 주변에 솟은 식산봉으로 오르는데, 후박나무·참식나무·동백나무 같은 난대림과 해송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다. 숲이 울창하고 나무들도 아름드리를 이루고 있어 밀림 속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식산봉은 오조포구 근처에서 화산이 분출되면서 생긴 비교적 작은 오름이다. 40m 높이의 작은 오름인 식산봉 정상에는 전망대가 설치돼 있고, 전망대에 서면 소나무 사이로 우도와 일출봉, 섭지코지가 아름답게 다가온다. 내수면과 잠시 후 만나게 될 오조리 마을과 대수산봉의 모습은 다정한 이웃이다.

큰물뫼오름(대수산봉)에 오르면 제주도 동북부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은 성산일출봉과 우도, 성산읍이 바다와 어울린 모습.

내수면 위에 놓인 데크형 다리를 건너 오조리로 향한다. 오조리 마을은 성산만과 식산봉이 인접해 있고, 일출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이런 주변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마을 이름도 일출봉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햇빛을 제일 먼저 비춘다는 뜻에서 오조(吾照)리라 했다.

120년 된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켜주고, 널찍한 골목길은 넉넉한 마을의 인심을 전해준다. 오조리와 고성리를 지나자 후박나무 가로수가 제주도다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다시 소박한 마을길로 들어선다. 돌담 곁에서는 동백도 펴 길손을 맞이한다.

밭길을 걷다가 대수산봉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간세를 만난다. 옛날에 이 오름 안에 물이 솟아나 못을 이루고 있어서 ‘물뫼’라 했고, 그중 큰 오름을 큰물뫼(대수산봉), 작은 오름을 작은물뫼(소수산봉)라 했다.

큰물뫼오름에 올라서자 제주도 동북부 일원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조망이 된다. 무엇보다도 우도와 일출봉, 섭지코지, 성산만 내수면 등의 풍경이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일출봉아래 광치기해변에는 노란 물감을 점점이 뿌려놨다. 성산읍 고성리와 일출봉 아래 성산리의 건물들도 이 거대한 풍경화 속의 일원이 됐다.

고려시대 삼별초군이 제주도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위해 조정에서 쌓은 환해장성의 일부가 온평리 해변에 남아 있다.

타원형을 그리며 곶을 이루고 있는 섭지코지의 전경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도 이곳 대수산봉이다. 종달오름과 알오름을 지나 종달바당과 일출봉, 광치기해변으로 이어지는 제주올레 1코스도 한눈에 볼 수 있다. 종달마을을 감싸고 있는 지미봉도 푸른 바다와 어울린다.

내륙 쪽으로는 드넓은 평지와 붕긋붕긋 솟은 오름들이 제주도만의 독특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을 만들 때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나르다 치마의 찢어진 구멍으로 흘러내렸다는 흙덩이들이 제주도의 오름이라고 하는 설화가 재미있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100여 차례의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기생화산이 바로 제주도의 오름들이다. 368개에 이르는 오름은 제주도 곳곳에 퍼져 있지만 특히 경사가 급하지 않은 한라산 북동지역에 몰려있다.

솔숲과 삼나무숲을 지나 다시 평지로 내려선다. 역시 돌담이 둘러진 밭길이 이어진다. 밭가에는 곳곳에 제주도 특유의 묘지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바람이 많고 돌이 많은 제주도에서는 묘지에도 돌담을 둘러 조상들을 안온하게 모신다.

삼성혈에서 태어난 세 남자와 벽랑국 왕이 보낸 세 공주가 혼례를 올리기 전 목욕을 했다는 혼인지.

우리의 발길은 혼인지로 이어진다. 사람이 살지 않던 아주 아득한 옛날, 세 사람의 신인(神人)이 한라산 북녘 기슭의 땅으로부터 솟아났다. 이들은 삼성혈에서 솟아났는데, 맏이를 고을나, 둘째를 양을나, 셋째를 부을나라 했다.

고·양·부 삼신인(三神人)이 어느 날 한라산에 올랐다가 섬 동쪽 바닷가에 자줏빛 안개에 싸인 채 떠내려 온 나무상자를 발견하게 된다. 산에서 내려와 상자를 여니, 그 안에는 새알 모양의 옥함이 있고, 관대를 갖추고 자주색 옷을 입은 벽랑국 사자가 옥함을 지키고 있었다. 옥함 안에는 벽랑국 왕이 보낸 푸른 옷을 입은 15-16세 정도 돼 보이는 세 공주가 있었다.

사자는 백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고, 삼신인은 온평리에 있는 연못에서 목욕재계하고 혼례를 올려 ‘흰죽’이라는 굴에서 살았다. 사자가 백마를 타고 하늘로 오를 때 생긴 말의 발자국이 지금도 남았는데, 이곳이 온평리 바닷가 ‘황루알’이라는 곳이다. 또 삼신인이 목욕한 연못은 ‘혼인지(婚姻池)’라 불렀다.

동회선일주도로를 건너 온평리 마을길을 걷는다. 검은 돌담 옆에 빨갛게 핀 동백이 강렬하면서도 처연하다. 검은 돌담과 푸른 밭, 제주도의 일반적인 가옥이 어울린 모습은 가장 소박한 제주도의 생활풍경이다. 길 위에 만난 소소한 풍경과 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나를 소박하게 하고, 겸손하게 해준다.

구불구불 온평리 골목길을 지나 드넓은 바다를 만난다. 해변에서는 환해장성이라 불리는 석성이 바람을 막고 있다. 제주도 해안을 따라 300여리(120㎞)에 쌓여진 환해장성은 1270년(고려 원종 11년) 몽고와의 강화를 반대한 삼별초군이 진도에 들어가 용장성을 쌓고 대몽항쟁을 전개하자, 삼별초군이 제주로 들어가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고려 조정이 영암부사 김수와 고여림 장군을 보내 쌓은 성이다.

이윽고 온평포구에 도착한다. 온평포구에 앉아서 바닷바람을 맞는다. 봄바람을 싣고 온 해풍이 온화하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바다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준다.


※여행 쪽지

▶제주올레 2코스는 광치기해변에서 시작해 식산봉-오조리-고성리-대수산봉-혼인지를 거쳐 온평포구까지 14.8㎞로 5시간 정도 걸린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이나 서귀포 쪽에서 701번 동회선일주버스를 이용해 광치기정류소로 이동(1시간30분 소요)→도로에서 일출봉이 보이는 광치기해변으로 나가면 2코스를 알리는 간세가 있다.
▶종점인 온평포구엔 마땅한 식당이 없다. 온평에서 가까운 고성리에 있는 성산포자연산회센터(064-782-1572)에서는 비싸지 않은 가격에 싱싱한 자연산 활어회를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