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5·18 37주년 윤장현 광주시장 “5월 정신 가치는 인간 존엄성 귀히 여기는 것” 전일빌딩 탄흔 5·18 진실규명 결정적 단초 제공 시민 의견 반영 옛 전남도청 보존방안 건의할것 5월 행사에 ‘문화의 옷’ 입혀 상설화 적극 모색 아픔·어려움 외면하지 않는 광주로 발돋움해야 사진=채창민 기자 ccm@kjdaily.com

2017년 05월 16일(화) 19:58

대담=박상원 편집국장

5·18 광주민주화운동 37주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5월 정신 계승과 5·18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지시한 문 대통령은 18일 5·18 기념식에 참석, 5월 정신 계승 의지를 재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새 정부의 5·18 정책 기조 방향 설정에 윤장현 광주시장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전일빌딩 헬기 사격 등 진실 규명에 주력하고 있는 윤 시장으로부터 37주년을 맞는 5·18의 의미와 5월 정신의 미래 실현 방안, 전망 등을 들어본다. /편집자주

▲벌써 5·18 37주년이다. 당시 안과 주치의로 학살의 현장을 목격했고 이후 5·18과 관련해 꾸준히 시민사회운동을 해왔던 만큼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올해는 37년 만에 광주 5월 항쟁이 새로운 역사의 지평을 갖는 것 같다.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전일빌딩 탄흔이 UH-1H 헬기에서 M60 기관총 사격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 등에 의해 밝혀졌다. 또 제1항공여단 61항공단 202대대, 203대대의 출동 헬기에서 사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헐리우드 영화가 아니고 37년 전 광주에서 비무장 시민을 향해 국가를 지키는 군인이 기총사격을 했다는 점에서 발포 명령자 등 진실 규명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두 번째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역사의 왜곡과 회절을 일삼은 지난 정권과 달리 문재인 정부 들어 진실 규명, 광주에서 요구해왔던 국가 진상보고서 채택,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약속한 5월 정신 헌법 전문 게재를 비롯해 기념식 때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박승춘 보훈처장 해임 등 새로운 계기를 맞고 있다.

▲1980년 당시를 생각해보면 대동정신을 열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다. 37년이 지난 5월 정신의 가치는.

-역사는 결코 지울 수 없다. 광주의 역사는 그 흐름이 있다. 지금의 새로운 정치 상황을 이뤄낸 것은 절제된 시민 촛불 주권 혁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누가 뭐라 하더라도 광주가 그 중심에 섰다고 생각한다. 미완의 민주주의의 완성, 그리고 상식이 통하고 정의가 세워지는 나라를 위해서는 5월 정신은 과거 완료형이 아니고 현재진행형이다. 또 우리가 살아야 할 미래를 만들어갈 새로운 동력이라는 면에서도 그렇다. 국내 상황을 뛰어넘어 생각한다면 5월 정신은 늘 확인해줬듯 인간의 존엄성을 귀히 여기는 것이다. 존엄성이 깨지는 것에 광주 5월은 침묵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함께 해왔다. 5월에서 민주화로, 통일로, 아시아나 제3세계에 대해 광주는 그 아픔과 어려움을 잘 알고 외면하지 않았다.

▲5월 정신, 대동정신의 미래 실현 방안을 고민하고 만들어내야 하는 시점이다.

-우선 전제할 게 진실 규명이다. 국가공인보고서가 나와야 한다. 헌법 게재 등도 5월의 완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일제에 맞섰던 식민통치 항일 독립운동 후손들의 삶을 보면서 매우 안타까워 한다. 그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사회의 어떤 구성원으로 자리잡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만약에 광주의 후손들이 항일독립운동 후손같은 입장이 된다면 온전히 기성세대들의 몫이다. 최소한 차별받지 않도록 만들어줘야 하는 게 전제돼야 한다. 이런 일을 보다 내밀화하는 데는 생명 존중, 사람 중심의 가치가 필요하다. 광주의 가치를 선점해 가는 일들, 한국 사회가 가야 할 길들이 필요하다. 어렵지만 살펴야 되는 것은 살펴야 한다. 소수자, 약자, 발달장애인 문제, 외국인 노동자 문제, 우리 사회가 그들의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윤장현 광주시장이 지난 15일 오후 광주시청 3층 협업회의실에서 박상원 광주매일신문 편집국장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37주년 특별 인터뷰를 가졌다.

▲시민사회운동 시절부터 그래왔지만 시장 취임 이후, 특히 올 들어 5·18 진실 규명에 힘을 쏟고 있는 듯하다. 이유가 궁금하다.

-전두환씨가 회고록에서 자신이 피해자라고 하는 적반하장의 상황을 보면서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역사는 왜곡될 수 있음을 깊이 느끼고 있다. 이미 박근혜 정부 시절 5·18에 대한 왜곡과 의도적인 폄훼는 한계 수위를 넘어섰고 새 정부 들어 폐기된 국정교과서를 통해 5·18의 가치를 훼손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5·18민주화운동은 1997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고 2011년에는 5·18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로 세계 민주화의 상징이 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다. 그럼에도 ‘발포책임자’를 아직 밝혀내지 못했고 전두환, 노태우 등 책임자가 유죄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모두 사면됨으로써 책임자 처벌 역시 미흡하게 끝났다. 그래서 전두환씨가 반성은 커녕 회고록을 통해 오히려 5·18을 왜곡할 수 있는 것이다. 새 정부에서 5·18 진실규명을 통해 국가공인보고서가 반드시 채택되고 5·18이 더 이상 왜곡되고 폄훼되지 못하도록 그러한 발언이나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제정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잊혀져가던 5·18이 전일빌딩 총탄 흔적 보존 문제를 계기로 극적인 반전을 이뤘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전일빌딩을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중 헬기 기총소사 탄흔이 발견되자 시는 발 빠르게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하고 5·18진실규명지원단을 새로이 꾸려 증거수집과 분석을 추진했다. 그동안 군 당국은 ‘헬기 출동은 있었으나 사격은 없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지만 지난 1월 ‘헬기사격 유력’이라는 국과수의 감정결과가 나옴에 따라 37년 만에 군 당국의 주장이 새까만 거짓말이란 게 백일하에 드러났다. 전일빌딩 탄흔이 5·18 진실규명의 결정적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5월 단체를 비롯한 광주시의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대선공약에 5·18진실규명이 반영될 수 있었다. 37년이라는 긴 세월에 묻혀 잊혀져가던 현장들이 다시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야 한다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옛 전남도청 보존과 관련,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민주평화교류원 앞 천막농성이 8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민주평화교류원 문제의 해법은.

-5월 및 시민사회단체가 200일 넘게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데 시장으로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옛 전남도청 복원을 위해 지난해 9월 범시도민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행정이 적극 나서기 위해 시장인 제가 공동 상임위원장을 맡았다. 복원방안에 대해 수개월간 논의를 거쳐 4월7일 최종적으로 큰 틀에서 옛 전남도청을 복원하기로 결정하고 아시아문화전당과 협조해 시민들에게 옛 전남도청을 지난 12일부터 한 달간 임시 개방해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된 최종적인 방안을 확정해 중앙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광주시도 옛 전남도청이 5·18민주화운동 최후 항쟁지라는 역사적 공간, 광주정신이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기억되고 전승될 수 있도록 그 복원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

▲5월만 되면 하는 반복적 행사,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문화적인 것으로, 아니면 상시적이지만 계속될 수 있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윤 시장이 생각하는 사회운동이나 문화운동도 하나의 축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연하다. 거리의 문화는 광주가 엄혹했고, 엄정했기 때문에, 또한 광장의 문화는 저항의 거리였고 저항의 광장이었기 때문에 선뜻 문화의 옷을 입히는 게 두려웠던 게 사실이다. 근래 와서 교감되는 것 같다. 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됐지만 활성화에 한계가 있어 프린지페스티벌을 하고 있다. 그런 일에도 5월 제 단체들과 이해하고 협업하는 일들이 이뤄지고 있다.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5월 행사위에서도 한시적으로 운영하지 말고 상설화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해 축제의 아이템을 두 가지, 참여해서 경험하고 학습함과 동시에 뭔가 발산하고 광주의 맛과 멋, 흥을 다시 안아서 갈 수 있는 그런 형태로의 전환들이 앞으로 금남로에서, 또 민주광장에서 발전될 수 있는 계기로 토론하겠다.

▲문 대통령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지시하고 5·18 기념식에도 참석해 메시지를 줄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에서 꼭 이뤄져야 할 일은 무엇인가.

-5·18이 폄하되고 왜곡되고 하는 큰 이유는 진실 규명, 실체적 진실이 아직 안돼 있어서다. 국가의 공인 조사보고서가 나오지 않고 있다. 제주 4·3은 나왔는데 광주는 청문회까지 하고 나오지 않았다. 그 일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광주시에서 총탄 흔적, 국과수 의뢰하고 아울러 진상조사지원단 만들어 5월 연구학자, 단체들과 함께 실체적 진실을 하는데까지 접근했지만 지방정부는 명백한 조사권, 수사권에 한계가 있다. 이 정도 실체가 나와 있다면 이제 국가에서 해줘야 한다. 이후 그 일들을 계승 발전하는 의미에서 옛 통합병원 자리에 국립트라우마센터 건립과 옮겨진 교도소 자리에 민주인권센터 만드는 일을 통해 교육하고 학습하고 치유하는 정의와 평화를 향한 거점도시로 육성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과거에는 5·18 진실규명을 5·18기념재단이나 5월 관련 단체가 주도했었는데, 민선6기 들어 광주시가 적극 나서고 있다. 실체적 진실 규명이나 계승 발전에 대해 이야기한 만큼 광주시가 주도적으로 동력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지 않나.

-이것이야 말로 거버넌스 모델로 함께 가야할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당사자들의 역사적 위상과 가치가 소홀히 될 수 있는 위험도 있기 때문에 중심에 같이 함께 놓고 시는 방향성 설정에서 공감하고 지원하는 일이 소홀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세월호 참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소홀했던 국가의 무책임에서 비롯됐다. 아픈 역사를 국가가 적극 나서서 청산하지 않으면 또 다시 반복된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들은 강력한 책임자 처벌과 함께 비극의 역사 현장을 그대로 보존해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정의와 원칙이 바로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최우선 과제는 역사 바로세우기다. 이는 5월 단체들만의 힘으로 이루어낼 수 없다. 광주시도 함께 힘을 적극 보태야 한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 진실규명을 위해 전국적 여론형성 및 언론홍보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회 및 행정자치부 등을 방문할 계획이다.

▲전두환이나 지만원 등 특정 인물들에 의한 5·18 진실 왜곡보다 더 큰 문제는 5·18이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일부 보수 세력은 5·18을 진보 세력만 인정하는 역사로 치부하기도 한다. 5·18이 진보 vs 보수 프레임을 깨고 나오기 위한 방안은.

-5·18민주화운동은 1997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중요한 한 획을 그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5·18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명박 정부 시절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5·18과 무관한 ‘방아타령’을 의도적으로 연주하는 등 기념식 행사에서도 크고 작은 갈등이 계속 돼왔다. 보수 세력이 유독 5·18을 인정하지 않고 폄훼하는 것은 점차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국민들이 많아짐에 따라 자신들이 설 자리가 좁아지자 진부한 이념논쟁을 통해 이목을 끌어보고 싶은 것일 수 있다. 헌법전문에 5·18정신의 가치가 명문화되고 기억과 기록을 통한 5·18 역사 잇기 노력이 계속돼 역사가 바로 세워진다면 자연히 5·18은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5·18 37주년을 맞아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시민들이 일궈낸 나라다운 나라가 오랜 침묵을 깬 그날의 진실이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5월의 새 아침을 열고 있다. 더욱 깨어있음으로 치열한 몸짓으로 보통명사로서의 광주의 가치를 놓치지 않고 갈 때 미래도 있다. 어렵고 힘들고 외면받는 사람들 소홀히 대하지 않는 미래의 새로운 가치, 지역과 남과 북을 넘어 아시아, 제3세계까지도 광주가 역사 속에 해야 할 몫이 있다. 이제 5월 이야기는 그만하자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더 의미있게 할 것인가를 같이 생각하고 맞아야 하는 37주년이었으면 좋겠다.

/정리=김재정 기자 j2k@kjdaily.com

/사진=채창민 기자 ccm@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