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지(出身地)와 장소애(場所愛)를 생각해 본다 이정록 전남대 교수·前 대한지리학회장

2017년 05월 30일(화) 18:45

새 정부가 내놓은 인사(人事) 소식이 세간의 화제다. 파격적이고 참신한 인사를 내놓고 있어서다. 국무총리 후보자, 장관 지명자, 차관과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 임명 등이 그렇다. 인사 뉴스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요소가 있다. ‘출신지(地)’다. ‘서울 출신’ ‘광주 출신’ ‘전남 나주 출신’ 등이 그것이다. 이런 현상은 외국도 마찬가지다.

왜 출신지를 알려줄까. 여기엔 까닭이 있다. 하나는 출신지가 당사자의 가치관·성향·태도를 가름할 수 있는 준거라는 점이다. 출신지가 도시인가 농촌인가, 내륙인가 해안인가에 따라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견해다. 다른 이유는 인재를 전국에서 골고루 쓴다는 탕평이다. 임명권자와 동향(同鄕)이 아니어도 우수한 인재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등용한다는 통합 리더십을 보여주는 정치적 메시지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그렇다.

출신지라는 장소(場所)가 개인 정체성에 영향을 미칠까. 지리학자는 이에 동의한다. 장소가 인간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논리다. 영국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는 이를 ‘장소성(장소의 정체성)’으로 설명했다. 장소는 각각 다른 장소성을 갖고 있고, 장소성이 개인의 사고방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해안지역 출신은 바다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바다와 떨어진 내륙지역 출신은 반대다. 열대지역 출신은 눈을 동경하고 스키장을 좋아한다. 눈 때문에 매년 농사를 망쳤던 다설(多雪)지역 출신은 눈을 좋아하지 않는다. 농촌 출신이 농업과 농민에 우호적인 태도를 갖는 것도 장소성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영국 지리학자 앨러스테어 보네트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저서에서 장소는 인간 정체성 형성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지적했다. “사람의 근본적인 관념과 애착은 아무 곳에서나 만들어지지 않는다. 특정 장소에서 맺은 관계 속에서 그런 인식이 형성된다”(‘장소의 재발견’, 2015, 책읽는수요일)고 했다. 자기가 살았던 장소에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생기고 여러 자연적·사회적 관계 속에서 정체성이 만들어진다는 견해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준 장소를 사랑하는 생물 종(種)’이 인간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인간은 특정 장소에 특별한 느낌을 갖는다. 이를 미국 지리학자 이푸 투안은 ‘장소애(topophilia)’라고 했다. 사람이 특정 장소에 느끼는 정서적 유대감을 장소애로 표현했다. 태어난 곳, 살았던 곳, 초·중·고나 대학을 다녔던 도시, 신혼여행지, 첫사랑을 고백했던 곳 등에 특별한 감정을 갖는 건 장소애 때문이란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든 장소에 그런 감정을 갖는 건 절대 아니다. 특정 장소에 아무런 유대감이 없는 경우가 훨씬 많아서다. 특정 장소를 가봤다는 이유로 그곳에 특별한 느낌이나 감정을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장소애의 가장 대표적 유형은 고향 인식이다. 고향 사랑 말이다. 국어사전에는 고향을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으로 정의한다. 태어나서 자란 곳, 특히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는 청소년기를 보낸 곳은 특별하다. 관계 속에서 많은 추억이 축적된 곳이라 그렇다. 우리가 타지에서 동향(同鄕) 사람을 만나면 특별히 반가운 것은 장소애의 또 다른 발로(發露)다. 같은 장소성을 공유하기 때문에 정서적 유대감과 일체감을 갖기가 보다 용이해 그럴 테다.

그렇다면 출신지와 장소애 간 통계적 관련성은 어느 정도일까. 인사 뉴스에 등장하는 출신지와 그 사람이 갖는 고향 인식 간 상관관계 말이다. 여러 자료를 뒤졌지만 이를 분석한 결과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관계를 쉽게 유추할 지표는 있다. 출신지를 자기 고향으로 인식하느냐 여부다. 청소년기를 보냈거나 부모가 지금도 출신지에 거주하고 있으면 그곳은 고향이다. 본인이 출신지에 지금도 거주하면 더 할 나위가 없다.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지금도 동창회를 나간다면 출신지와 장소애 간 높은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증표다.

반면에 이런 경우를 출신지를 고향으로 분류하면 안 된다. 출신지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았거나 부모를 따라 일찍 떠난 경우다. 태어나 유년 시절만 보낸 곳을 고향으로 간주하는 건 곤란하다. 사춘기를 보내지 않은 곳엔 마음속 깊이 간직한 추억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고향이라기보다는 출신지일 뿐이다. 출신지와 고향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물론 태어난 곳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으면 출신지와 고향은 일치한다. 인사 뉴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출신지에는 그런 함정이 있다.

인사 뉴스에 등장하는 출신지보다는 출신 고등학교를 유념해 봐야 한다.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사춘기를 보내야 장소애가 싹트고 남다르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렐프의 ‘장소성’ 앨러스테어 보네트가 표현한 ‘장소를 사랑하는 생물 종’ 이푸 투안이 제시한 ‘장소애’ 등 지리학자 관점을 적용하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