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보성 다향길 1코스 그윽한 녹차향기 득량만에 스며들다

2017년 06월 06일(화) 18:09

논과 밭은 물론 산비탈까지 개간해 녹차를 재배하고 있는 보성차밭. 산비탈 전체가 녹차밭으로 조성된 모습이 거대한 피라미드 같다.

봄이 와서 새순이 돋을 즈음이면 나는 햇차를 기다린다. 녹차는 봄에 올라온 새순을 따서 덖고 비비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녹차는 겨우내 움츠렸던 땅의 기운을 받아 틔운 새싹을 따서 빚었기에 우려낸 찻물 속에는 땅의 생명력이 듬뿍 담겨있다. 녹차 중에서도 곡우 이전에 딴 첫물차를 우전차라 하는데, 이 우전차는 녹차 중에서도 최고로 친다. 엊그제 곡우를 지냈으니 지금쯤 다원에서는 우전차 만드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첫물 수확을 끝낸 녹차밭은 연둣빛 찻잎이 싱그러움을 더해준다. 녹차밭에 가고 싶어 만사 제치고 보성 녹차밭으로 향한다.

다향길은 대한다원 입구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주차장에서 200m 쯤 인도를 따라 가면 봇재에 이른다. 근처에는 봇재다원이 산비탈을 따라 구불구불 녹차밭을 이루고 있다. 산비탈에 조성된 녹차밭은 대규모로 형성된 곳도 있지만 골짜기에는 몇백 평 규모의 작은 녹차밭도 많다. 다른 지역 같았으면 채소나 곡물 같은 일반적인 농작물을 재배했을 밭이나 논이 이곳에는 차밭으로 만들어졌다.

보성 판소리성지는 서편제 창시자인 강산 박유전 명창을 비롯해 정재근·정응민·조상현 등 서편제 계보를 이은 명창들을 기리고 보성소리의 역사와 정통성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만들어졌다.

영천저수지 위쪽 마을 앞에서 바라보니 봇재 근처 산비탈 전체가 녹차밭으로 조성된 모습이 거대한 피라미드를 보는 것 같다. 녹차밭 아래로는 영천저수지가 잔잔하다. 영천저수지 옆에 자리한 영천마을에 도착하니 득음정으로 가는 이정표가 있다. 도로에서 마을 안쪽 계곡으로 800m쯤 들어가면 폭포가 있고, 폭포 앞에 득음정이라 불리는 정자가 있다. 득음정은 국창 송계 정응민 선생의 제자들이 하루 9-10시간씩 연습을 했던 곳이다.

영천저수지 제방 아래로는 해변까지 길게 논이 이어진다. 멀리 이어지는 논에는 대부분 감자가 심어져 녹색물결을 이룬다. 영천저수지를 기준으로 위쪽 논은 녹차밭이고, 아래쪽 논은 감자밭이다. 이곳 보성군 회천면은 감자의 주산지다. 보성 회천감자는 보성녹차와 함께 대표 지역특산품으로 득량만 청정해풍의 영향과 비옥한 토양에서 자라 품질이 뛰어나고 맛이 담백해 다른 지역의 감자보다 높은 가격으로 판매된다.

마을 앞을 지날 때마다 수백년 된 느티나무 고목을 만난다. 영천리 도강마을 앞에서도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도강마을 느티나무 아래에서 앉아있으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마을마다 서 있는 느티나무는 마을의 지킴이이자 마을사람들의 휴식처이고 소통공간이다.

도강마을 아래쪽에는 판소리성지가 조성돼 있다. 판소리성지는 조선후기 명창이자 서편제 창시자인 강산 박유전 명창을 비롯해 정재근·정응민·조상현 등 서편제 계보를 이은 명창들을 기리고 보성소리의 역사와 정통성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만들어졌다. 판소리성지는 정응민선생 생가와 판소리전시관·야외마당, 판소리전수교육관·생활관·야외마당 등 세 블록으로 나눠져 있다. 판소리성지에서는 판소리 체험교실과 판소리교육이 진행된다.

길이 1.2㎞, 폭 60m에 이르는 율포해수욕장은 고운 모래와 100년생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판소리성지 앞 느티나무 아래 정자를 지날 때는 구성진 심청가 한 가락이 들려오는 것 같다. 농로를 따라 걸어가는데, 서쪽에서 일림산이 펼쳐진다. 4월 하순에서 5월 초순에 이르기까지 일림산 능선에는 철쭉이 아름답게 핀다. 일림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걷는다.

제2대한다원으로 향한다. 넓은 감자밭 뒤로 신록을 품은 일림산이 싱그러움을 과시한다. 마을 앞을 지나 일림산 자락에 광활하게 자리하고 있는 녹차밭으로 들어선다. 봇재 근처의 대한다원과 함께 이곳 회령리 제2대한다원은 보성차밭을 대표하는 곳이다.

봇재 근처 녹차밭은 경사가 급한 산비탈에 구불구불한 고랑이 부정형의 정형을 이루고 있다면, 이곳 제2대한다원은 산자락 완경사지에 반듯반듯하게 구획이 정리돼 질서가 정연하다. 다소 따분할 뻔했던 이곳 제2다원을 매력있게 해주는 것은 군데군데 몇 그루씩 서 있는 편백나무들이다. 넓은 녹차밭 군데군데 서 있는 푸른 편백나무들은 평평한 바다에 떠 있는 돛단배 같다. 외로운 듯 서 있는 편백나무들은 소곤소곤 귓속말을 나누는 것 같다.

일림산에 기대고 있는 제2대한다원 앞으로 득량만이 펼쳐진다. 득량만 한 가운데에 떠 있는 섬 득량도가 제2대한다원을 지키는 수문장마냥 정면으로 바라보인다. 첫물 수확을 끝낸 녹차밭에서는 또 다른 잎들이 조용히 고개를 내밀었다. 여기에서 생산된 녹차는 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맑게 해줄 것이다.

제2대한다원. 넓은 녹차밭 군데군데 서 있는 푸른 편백나무들은 평평한 바다에 떠 있는 돛단배 같다.

제2대한다원 가운데로 난 농로를 따라 거닐다가 다시 도로로 내려온다. 일림산 자락에 기댄 마을과 논 가운데에 서 있는 팽나무 고목 한 그루가 도로를 따라 걷는 나그네의 따분함을 달래준다. 수백년 비바람을 견디며 의연하게 버텼을 팽나무는 스스로 아름다운 모양이 됐다.

외래마을을 지날 때는 팽나무숲을 만난다. 외래마을 팽나무숲은 길이가 155m에 이르는 둑 위에 9-15m 높이의 팽나무 18그루, 느티나무 한 그루로 이뤄져 있다. 수령 200-400년생 외래마을 팽나무숲은 천연기념물 제480호로 지정돼 있다.

외래마을을 벗어나 회천 방면으로 지방도로를 따라가니 명교해수욕장이 나온다. 명교해수욕장은 정면으로 득량도와 고흥반도가 바라보여 호수 같은 느낌이 든다. 모래사장 안쪽에는 50-60년생 곰솔숲이 그늘을 만들어준다. 명교해변이 끝나는 지점에 지난해 준공된 득량만권역 활성화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이어 보성회천수산물위판장을 만난다. 위판장 안으로 들어서자 활어를 사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쳐흐른다. 위판장 뒤편에는 방파제와 포구가 있고, 포구에는 작은 어선들이 정박돼 있다.

일림산에 기대고 있는 제2대한다원 앞으로 득량만이 펼쳐진다. 득량만 한 가운데에 떠 있는 섬 득량도가 제2대한다원을 지키는 수문장마냥 정면으로 바라보인다.

위판장 뒤편 방파제에 서니 율포해수욕장이 눈앞으로 펼쳐진다. 보성군 회천면소재지에 있는 율포해수욕장은 사철 찾는 사람이 많다. 보성차밭 관광과 연계해 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길이 1.2㎞, 폭 60m에 이르는 율포해변은 고운 모래와 100년생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율포해변은 공해 없는 청정해역인 득량만을 끼고 있어서 깨끗하고 안온하다.

율포해수욕장은 해수녹차탕을 갖춘 콘도와 인공 해수풀장까지 있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단위 피서지로도 제격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해변 모래밭과 솔밭에는 많은 사람들과 텐트들이 주말을 즐기고 있다. 조용히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내 마음을 씻어준다.


※여행쪽지

▶보성 다향길은 녹차밭과 득량만을 끼고 있는 해변을 걷는 길로 총 42.2㎞에 달한다. 그중 1코스는 보성녹차밭(대한다원 입구) 주차장→영천저수지→판소리성지→제2대한다원→외래마을→명교해수욕장→율포해수욕장까지 16.5㎞로 5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 : 남해고속도로 보성IC→춘정교차로에서 장흥 방면으로 좌회전 7.5㎞ 이동→장수교차로에서 회천 방면으로 좌회전 3.6㎞ 이동→보성녹차밭 주차장
▶보성터미널에서 녹차밭을 경유해 율포해수욕장까지 가는 버스가 30-40분 간격으로 있다. 보성 녹차밭까지 15분 소요.
▶율포해수욕장 근처에는 횟집을 비롯한 식당이 많다. 싸고 싱싱한 회를 맛보려면 보성회천수산물위판장을 이용하면 된다. 이곳 회센터에서 활어를 사면 회를 떠서 2층 초장집으로 배달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