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의 친구의 친구 주홍
치유예술가·샌드애니메이션 아티스트 |
“엄마, 세상은 다 연결돼 있어요!” 여섯 살 아들이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며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상이 다 연결돼 있다고?” 어렸을 때부터 로봇 태권브이를 잘 그리더니 조금 이상하게 그려지면 태권브이의 친구라고 말한다. 조금 더 이상하게 그려지면 ‘태권브이의 친구의 친구’라고 말한다. 아이는 그림이 망치는 법이 없다. 얼룩말을 그리다가 공룡같이 그려지면 공룡도 얼룩말도 아니니까 ‘얼룩말의 친구의 친구’가 된다. 모든 작품이 더 추상적으로 변형되면 친구를 한 번 더 붙여서 ‘얼룩말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아이의 그림 속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 친구들은 모두 연결돼 있고 공작새의 친구의 친구가 있는가 하면, 도마뱀의 친구의 친구들, 용의 친구의 친구들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을 연결시켜버리는 그림을 그리는 아들에게 물었다. “왜 이 친구들이 모두 붙어 있는 거야?” 그랬더니 얼룩말이 얼룩말로만 있으면 떨어져 있는데, 얼룩말의 친구의 친구들이기 때문에 다 연결돼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흔히 한 다리 건너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인연에 대한 말을 종종 한다. 그런데 아이의 그림은 더 심오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과 동물, 꽃, 곤충, 물고기 등 세상의 모든 것들이 ‘친구의 친구의 친구’라는 주제로 연결돼 그려진다.
나는 오랫동안 매일 명상을 하며 깊은 내면과 교류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예술에서 창조적 영감의 세계는 일상의식을 초월해 얻은 어떤 것이 예술가의 손을 빌어 드러난 것이다. 중국불교 선종의 선禪지식이 화두를 타파해 경계를 이루었다는 것은 ‘진아眞我(인도에서는 아뜨만이라고 함)’ 즉, 참 나를 만나서 세상의 근원과 접속된 것을 경험한 것이다. 불립문자의 경계인 우주의 근원을 마주하게 되고 시공간을 초월한 합일의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을 선가禪家에서는 ‘깨달음’이라 부르는데, 아이들의 그림에서 그 무분별지의 경지를 만날 수 있다.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면 내 눈에 갇힌 세상을 정면에서 3차원으로 인식하며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눈을 감고 세상을 바라보면 3차원 너머의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 아이들의 그림에는 3차원을 초월한 세계가 표현된다. ‘천진함’을 통해서 온 우주가 함께 끌려나오는 것이다. 평소에 눈을 감고 호흡을 지켜보며 자기 자신과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 사람은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사람을 만나면 그 눈빛과 자세, 움직임만으로도 내면에서 타인과 소통이 되고 있다. 그래서 앞에 있는 사람이 무엇이 필요한지 금방 알게 되고 현실에서 가능하도록 함께 펼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잠잘 때 꿈을 꾼다. 혼자서 꾸는 꿈이다. 그러면 현실은 꿈이 아닐까? 장자는 꿈에 나비가 됐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깨어보니 현실이 꿈인지 꿈속에서의 나비가 현실인지 알 수가 없다는 장자의 ‘호접지몽’ 이야기를 빌리지 않더라도 현실도 꿈은 꿈이다. 여럿이 동시에 꾸는 꿈이 현실인 것이다. 그래서 함께 꿈꾸면 현실이 된다. 이 ‘여럿’에는 온갖 동식물과 사물들이 다 포함된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인간 인식의 틀이라는 한계 내에서 이 세계를 창조하고 있고, 그것을 물질, 덩어리, 삼차원의 시공간으로 개념화하고 감각을 통해 확인하며 존재한다고 강하게 믿고 있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존재를 규정하기 위해서, 혹은 생존을 위해서 각각 개념을 달리하고 자타를 구별해야 한다. 현실에서의 자타의 구분은 생존과 관련된 이기적 자아가 작동해야 가능한 것이고, 그 자아가 강할수록 현실에서는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소통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자아를 초월해야 내면의 소통도 가능하고 타자와의 소통도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우리는 이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생존으로 치닫도록 강력하게 프로그래밍 돼있는 인간이 어떤 방법으로 진정한 소통의 세계에서 만날 수 있을까? 그래서 천재들은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을 택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죽으면 끝이 날까? 그렇지 않다. 한 번의 꿈에서 깨어난 것이든지 다른 꿈을 꾸는 것이 된다. 그래서 다시 욕망의 구조에 끌려오게 된다. 이것을 생로병사의 피할 수 없는 구조로 본 사람이 2600년 전 인도의 싯다르타라는 왕자였다. 붓다는 ‘안아뜨만(무아)사상’을 편 인류의 스승이다. 우리는 인식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다. 감옥인 줄도 모르고 그 안에서 다시 감옥으로 끌려오는 삶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나는 천진한 마음으로, 매일 이곳이 욕망으로 구조화 된 감옥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며 깨어있는 인간으로 숨 쉬고 있다. 모두 연결돼 있지만, 개체인 이 세계에서 청정한 인간으로 살아가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