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마당]짚봉산 소요(逍遙) 송미심 수필 |
| 2017년 06월 29일(목)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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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봉산은 옥녀봉이 있는 금당산과 이어지는 나지막한 산이다. 그리 높지 않고 가파르지도 않아 한두 시간 정도 운동 삼아 산책하기에 참으로 좋은 곳이다
계단을 밟고 오르면 편편한 둔덕이 있다. 어려운 일을 견디어 가다보면 어느 땐가 한숨 돌릴 틈이 생기는 인생살이의 달콤한 행복처럼, 그곳에서 힘들어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며 짧은 휴식을 즐긴다.
다시 오르막길로 접어들어 산 정상에까지 걸어 오른다. 그곳 정자의 편편한 마루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힌다. 아래를 내려다보거나 하늘을 올려다본다. 흰 구름이 변하는 모양을 구경하고 도심 속 건물들도 둘러본다.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 밥 딜런의 가사에 나오는 구절처럼 하늘을 무연히 쳐다보던 때가 몇 번이나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쫓기듯 내달려 일터로 가고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기운이 빠지기 전에 몸을 추슬러 반대편 산등선을 따라 서서히 내려간다. 푸른 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철따라 피는 꽃들과 꽃향기가 가득한 산에 숲이 어우러져 있으니 곤충들과 짐승들도 더불어 모여든다.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와 푸드득 날아다니는 풀벌레들의 몸짓에서 살아있는 생명체의 오묘함을 확인한다.
새싹이 돋기 시작한 초봄의 정취도, 무성한 잎이 잔뜩 성성한 여름 나무도, 곱디고운 색으로 채색된 가을 산도, 흰 눈꽃 달고 침묵하는 겨울 자태도 모두 내게 기운을 주는 것들이다.
짚봉산은 나무와 산짐승들만의 놀이터가 아니다. 사람들을 위한 놀이터도 있다. 한길이 보이는 쉼터에 대여섯 종류의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주변에는 휴식을 취할 의자가 있어 운동을 하다 지치면 쉬기도 하고 정담을 나누기도 한다. 나도 운동기구를 이용하여 몸을 푼다.
허리가 아파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어 우울했던 때가 있었다. 남편은 걷기도 힘든 나를 짚봉산으로 데리고 갔다. 맑은 공기와 해맑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기분을 바꿔보라는 의미였다.
가을산은 단풍으로 예뻤고 스쳐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경쾌했다. 허리를 곧게 펴고 활개를 치며 걷는 평범한 일이 소중하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무겁게 등짐 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훌훌 털고 나선 그들의 소탈한 옷차림 덕분인지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 보였다.
잘려나간 나무 둥치에 앉아서 소나무 가지를 오르내리는 청설모를 보았다. 쪼르르 내려왔다가는 폴짝 뛰어 오르고 두 손을 비벼 얼굴을 훔치다가 재빨리 내달리는 청설모는 개구쟁이 같았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혼자서도 잘 놀았다. 자유롭게 움직이고 마음대로 즐기는 청설모가 참으로 부러웠다.
때가 되면 나무들도 낙엽으로 잎사귀를 떨구고 겨울 추위를 맞을 준비를 하는데 일 욕심 때문에 몸을 혹사하지 않았는지, 사람 사이에 얽히고설킨 가슴앓이가 내 스스로 자신을 얽매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새겨보았다.
혹한을 맞아도 슬프지 않을 겨울 산에서 새봄을 기다리는 청설모는 여전히 행복할 터. 혼자서도 재미있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조바심을 털어내기로 했다. 몸도 마음도 호전된 후부터 짚봉산 산보를 즐겨왔다.
끼리끼리 모여 담소를 나누며 산을 오르내리는 이들이 있고 두 팔 휘둘러가며 잰걸음으로 땀을 흘리는 체력 단련가도 있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속삭이는 연인들도 있고, 싸움이라도 했는지 남남처럼 냉랭하게 토라진 사람들도 있다. 여러 군상들의 모습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양상을 인정하고 바라보니 나름대로 재미있다.
구불구불 산길이 참으로 정겹다. 제법 굵직한 나무 그늘을 지나기도 하고 무덕무덕 모여 핀 풀꽃 숲을 거치기도 한다. 서두를 것이 없다. 나는 한 마리의 청설모처럼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자연의 정취를 즐긴다.
길가에 불룩 솟아있는 무덤도 하나의 자연물인 듯 들풀들을 이고 있다. 생사의 의미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은 산길에서 걷고 있는 나도 자연의 한 피조물이 된다. 잡초 무성한 봉분은 세상 욕심이 덧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하다.
짚봉산은 내게 숲으로만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속진(俗塵)을 닦아주는 휴식처이다. 여기저기 들여다보고 살피다보면 자연이 은밀하게 전해주는 가르침이 있다. 그런 짚봉산이 우리 집 가까이 있어 참으로 좋다
<약력> ‘한국수필’ 등단(1997년), 수필집 ‘여덟 봉우리에 머문 눈길’, 23회 광주문학상 수상 (수필), 2016년 광주예총 예술문화상 특별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