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제일고, 제일 잘나가!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ssnam48@kjdaily.com

2017년 07월 05일(수) 18:43

요즘 식사 자리에 가면, ‘일고가 제일 잘나가!’란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문재인정부 초기내각에 광주일고 출신들이 대거 입성했기 때문이다. 우선 이낙연 국무총리가 서중·일고45회다. 김상곤부총리겸 교육부장관은 43회,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은 48회, 검찰총장후보자로 지명된 문무일 부산고검장은 55회다. 역대 정부 내각에서 특정 고등학교 출신이 총리-부총리-장관-검찰총장 라인업을 형성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호남인사 탕평책 때문에 전라도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호남인물이 각료로 등용되고 있다. 특히 광주일고를 염두에 두지 않았겠지만, 광주일고 출신이 유독 많은 것은 광주일고가 지난 현대사에서 광주의 가장 큰 명문임을 증명한다.

광주제일고(광주일고)는 1920년 개교해 2020년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1929년 11월3일 광주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 출신인 김병현, 서재응, 최희섭, 한국 프로야구 최고스타 선동열, 이종범 등을 배출한 야구명문이기도 하다. 역대 이 학교 야구부 출신 중 150여 명이 프로야구 팀에 들어갔다.

과거 정부에서도 광주일고 출신 인사의 중앙 정부 진출은 적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때 김황식 전 총리, 노무현 정부 때 이용훈 전 대법원장,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낸 임채정 전 국회의장도 모두 이 학교를 나왔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국민의당에도 광주일고 출신이 다수 포진해 있다. 김동철 원내대표와 황주홍·주승용·장병완 의원 등이다.

그러나, 광주일고가 외부에 이렇게 많은 인물을 배출한 명문이지만 지역사회 내에선 특정 학맥이 광주를 좌지우지 한다는 비판에도 여러 번 직면했다. 이 학교 출신들이 지역사회내에서도 많은 영향력 있는 자리에 배치되고 광주·전남의 미래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했지만, 한편 학맥끼리 뭉치면서 비일고인들의 상실감이 컸고, 폐해도 컸다는 것이 지역사회 지적이다. 언론에서는 여러 번 특정학교 지배를 큰 문제로 지적하며, 주요단체장들이 선후배라는 그물망에 얽혀 공생,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을 막아 폐단이 크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 역사를 보면, 권력 실세 인사들이 포진한 학교 동문은 주목을 크게 받았다. 매 정권마다 이른바 잘나가는 고교 동문 인맥이 등장하고, 학맥이 인사를 장악하면서 특혜설도 난무했다. 때로는 비리가 개입되기도 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경북고가 대세였다. 김영삼 정권 시절 경남고와 부산고로 권력 중심이 옮겨졌다. 김대중 정권에서는 광주일고와 광주고, 목포고가 득세했고, 노무현 정권에서는 상대적으로 부산상고와 용산고가 단연 주목되었다. 현 정부 들어서는 광주일고다.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의 명문 경남중고를 졸업해 각계에 포진한 경남중고 동문들도 주변의 관심 어린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경남중고 출신 재계 인사는 수없이 많고, 문 대통령 동기만 살펴봐도 쟁쟁하다. 대통령과 부산시장(서병수)을 배출한 경남고 25기 동기인 재계 인사는 하나금융 김정태 회장, 좌상봉 롯데그룹 중국법인 대표이사, 박영안 태영상선 대표, 정철수 일신화학 대표, 우상룡 GS건설 고문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졸업 이후 문 대표와 개인적으로 연락하거나 친분을 쌓아오지 않았지만 박영안 대표는 재경 경남중고 동문회 임원을 역임하면서 문대통령과 접점이 있다. 문대통령은 재경동문회와 총동창회, 동기모임에는 가끔 참석하지만 그 밖의 동문 소모임에는 참석하지 않고 있다.

지금, 지역사회내에서 많은 광주일고 출신이 퇴직해서 10여년전만큼 특정학교의 네트워킹이 ‘문제’로 느껴지진 않지만, 다시 정부요직에서 ‘일고 라인’이 부각되는만큼 서중·일고동문회를 비롯한 지역사회의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특정고의 인맥이 부정적으로 작용할 경우 전라도·호남의 이미지가 크게 나빠질 수 있다. 조심스럽게 응원하면서 그들이 제 역할을 다하도록 돕는 것이 동문들의 자세다.

영국의 이튼컬리지는 600년 전통의 최고 명문 고등학교다. 영국에서 가장 많은 총리를 배출한 학교이며 졸업생의 30%가 명문인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로 진학을 하는 곳이지만 이 학교가 강조하는 것은 공부가 아닌 협동, 체육, 희생이다. 이튼컬리지에서 절대로 빠져서 안 되는 과목은 체육이며, 특히 팀 활동을 중요시 여긴다. 나라에서 전쟁이 났을 때 가장 많이 죽는 군인들 역시 이튼컬리지 출신이다. 이 학교의 교훈은, ①남의 약점을 이용하는 비겁한 사람이 되지 말아라. ②비굴한 사람이 되지 말아라. ③약자를 무시하지 말고 상대방을 배려하라. ④잘난 척하지 말아라. ⑤공익과 정의를 위한 일에는 누구보다 앞서라.

진정한 명문 학교는 공부로만 평가받지 않는다는 것을 이튼컬리지가 증명하면서 600년 넘게 명문을 유지하고 있다. 자기 안위만 챙기는 사람은 성공한 인생을 살 수도, 행복한 인생을 살 수도 없다.

광주일고가 진정한 명문고로 남으려면, 입각한 인물들이 동창 학맥을 특별히 챙겨서 비판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광주일고 동창들도 입각 인물들이 공익과 정의를 위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격려해야지 업무를 방해하는 어떤 행위를 해서도 안 된다.

문재인 정부의 광주일고 각료 라인은 호남인이 만들어준 것이다. 호남인이 부여한 명분과 실리를 잊지 말라. /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