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제주올레 20코스

에메랄드빛 바다와 밭담…제주인의 삶 응축

2017년 07월 18일(화) 22:39
제주올레 20코스 출발지인 김녕리는 쪽빛 바다와 울긋불긋한 지붕들이 다정하게 어울려 있다.
제주올레 20코스의 방향을 알려주는 간세 앞에서 김녕리 앞으로 펼쳐지는 바다를 바라본다. 쪽빛 바다와 울긋불긋한 지붕들이 다정하게 어울려 있다. 골목마다 높은 돌담들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돌담 안에는 제주도의 전통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현대화된 제주도에서도 비교적 옛 모습이 잘 남아있는 김녕리 골목길은 고향마을처럼 정답다.

오래된 마을 김녕리에는 예로부터 지하수가 풍부했다. 김녕리 해안을 따라 걷고 있는데, 둥글게 담을 쳐서 만든 샘이 보인다. 바다에서 맑고 차가운 민물이 펑펑 솟아나는 청굴물이다. 청굴물은 밀물 때는 잠겼다가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

바람이 유난히 많아 지붕이 낮고 담이 높은 제주도 주택과 밭담에는 제주인의 삶이 응축돼 있다.
청굴물을 지나니 도대불과 육각정자가 손짓을 한다. 도대불 쪽으로 해안길을 따라가는데 빨갛게 핀 접시꽃이 푸른 바다와 어울려 제주의 여름을 더욱 아름답게 해준다. 김녕동포구와 김녕해수욕장으로 돌아가기 직전 해변 야트막한 언덕에 원뿔형의 도대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도대불 상단에 등잔을 놓고 밤이면 호롱불을 켜놓아 밤에 입항하는 어부들에게 불을 밝혀줬다. 1972년 김녕리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도대불의 기능은 상실됐다.

도대불에서 바라보니 옹기종기 모여 있는 김녕리 마을이 평화롭고, 마을 뒤에서는 멀리 한라산이 듬직하게 버티고 있다. 김녕항 등대는 북쪽으로 펼쳐지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돌아올 배를 기다린다. 도대불을 지나자 김녕해수욕장 백사장이 등장한다.

김녕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 200m, 너비 120m, 평균 수심 1-2m 정도로, 해수욕장으로서는 규모가 작지만 희고 부드러운 모래와 맑고 푸른 바다가 검은 현무암과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답다. 김녕해수욕장은 김녕성세기해변으로 불린다. 외세침략을 막기 위한 작은 성이 있었다고 해서 성세기해변이라고 불렀다. 슬며시 왔다가 말없이 빠져나가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파도는 섬섬옥수 같은 백사장이 그리워 성세기해변을 결코 떠나지 못한다. 여기에 뒤질세라 모래사장을 감싸고 있는 검은 돌들은 해맑은 바닷물과 귓속말을 주고받는다.

덩개해안은 분출된 용암이 천천히 흘러가면서 널따란 바위지대가 형성된 곳이다. 검은색 현무암이 넓은 평원을 이루고 있어 ‘바다정원’ 같다.
해수욕장을 지나면서부터는 해변오솔길을 걷는다. 덩개해안은 분출된 용암이 천천히 흘러가면서 널따란 바위지대가 형성된 곳이다. 검은색 현무암이 넓은 평원을 이루고 있어 ‘바다정원’ 같다. 덩개해안에는 환해장성의 일부가 복원돼 있다. 덩개해안은 염습지를 이루고 있어 소금이 함유된 땅에서 자라는 염생식물이 78종이나 자란다.

내부에 있는 용암이 굳은 표면을 부푼 빵 모양으로 들어 올려 만들어진 투물러스라 부르는 용암언덕을 만난다. 용암이 평평한 땅위를 흘러가다가 앞부분이 먼저 굳어지면서 뒤에서 따라오던 용암이 앞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부풀어 올라 언덕처럼 솟아오른 지형을 만든다. 이때 용암이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들어 표면이 4각형이나 육각형으로 갈라졌다.

잠시 해변을 벗어나 밭담길을 걷는다. 제주밭담은 척박한 돌밭을 개간하면서 골라낸 돌을 밭가에 쌓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겼고, 이는 밭의 경계가 되었다. 밭담은 제주도 전역에 분포돼 있고, 제주밭담 전체를 이으면 2만2천㎞에 이른다. 제주밭담은 길이가 길고 끝없이 이어지는 모습이 흑룡이 꿈틀거리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 ‘흑룡만리’라 부른다. 제주밭담은 2013년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됐고, 2014년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됐다.

전기가 없던 시절 밤늦게 귀항하는 어부들을 위해 불을 밝혔던 도대불.
올레길은 월정리 밭담길을 지나 월정리 마을로 들어선다. 월정리는 규모가 김녕리의 1/4에 불과하지만 초승달 모양의 월정리해변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아름다워 찾는 사람이 많다. 외부인들이 많이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숙박시설과 식당, 카페들이 늘어날 수밖에. 월정리해변에는 높은 건물이 없어 자연과 잘 어울릴 뿐더러 예쁜 카페들로 카페거리가 조성돼 있어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다.

‘달이 머물다 가는’ 아름다운 해변이라는 뜻을 가진 월정리해변은 함덕서우봉해변이나 김녕성세기해변과 달리 해수욕장 한가운데에 모래언덕이나 바위들이 없어 아담하다.

잠시 해변길을 돌아서 마을 안길로 들어선다. 제주도 대부분의 해변마을이 그렇듯이 마을 안쪽에는 밭이 있고, 밭에는 어김없이 검은 밭담이 둘러져 있다. 검은 밭담 너머로 붉고 푸른 지붕의 민가들과 푸른 바다가 바라보인다. 이처럼 해변마을 사람들은 바다와 밭, 양쪽에 기대어 살아간다.

좌가연대에서 한동리 마을로 가다가 올레길을 걷고 있는 외국인 여성 한 분을 만났다. 프랑스 파리에서 왔다는 26살의 이 여성은 심장을 전공한 의사인데, 지난 2월부터 세계여행을 하고 있단다. 영국과 스페인, 독일, 러시아를 거쳐 지난 달 한국에 들어와 서울과 춘천, 부산을 여행하고 현재는 제주올레를 종주하는 중이라고 한다. 스스로 트레킹 마니아라고 밝힌 프랑스인 여성은 제주도의 풍광에 흠뻑 빠졌다고 말한다. 한동리 해변에 도착해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자 외국인 친구는 “판타스틱”하고 외친다. 젊은 여성 혼자서 오지를 가리지 않고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프랑스의 ‘한비야’를 보는 듯하다.

한동리 마을길을 걷는데, 대부분의 가옥이 제주도 전통 돌담집들이다. 바람이 유난히 많은 제주도에서는 억새를 얹어 만든 지붕에 새끼줄로 엮은 끈을 그물처럼 촘촘히 묶었고, 처마 아래쪽까지 돌을 층층이 쌓아 올려 거센 바람을 막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억새지붕은 양철지붕 등으로 바뀌었지만 시멘트를 사용한 돌담벽은 여전하다. 육지의 가옥에 비해 처마가 낮은 것도 바람의 영향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다.

세화포구 방파제에 도착하자 작은 모래톱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 모래톱에 놓인 ‘사랑의 의자’에서 하트(♡) 모양을 하며 사진을 찍는 연인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세화오일시장 앞을 지나니 해변은 약간의 모래가 있기는 하지만 주로 검은 바위로 이뤄져 있다.

세화해변에는 네모형의 단물탕이 두 개 남아 있다. 용천수를 활용한 마을 공동목욕탕이다. 하나는 남탕, 또 다른 하나는 여탕이다. 단물은 민물을 뜻하며, 논짓물이라고도 불린다. 단물탕에는 썰물 때만 들어갈 수 있다. 세화해변에서는 ‘벨롱장’이라 불리는 벼룩시장이 매주 토요일에 열린다. 오래전부터 살아온 주민과 도시에서 귀촌한 이주민들이 저마다 독특한 토산품들을 내놓아 싼 가격에 팔기 시작하면서 벨롱장이 생겼다.

해녀박물관에 들어서자 20코스의 종점이자 21코스의 시작점을 알리는 간세가 기다리고 있다. 박물관 앞 정자에 앉아 있으니 오늘 해변길과 밭길, 마을길을 걸으며 만났던 제주의 살가운 풍경과 문화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여행쪽지

▶제주올레 20코스는 김녕서포구→김녕성세기해변→월정리해변→행원포구→좌가연대→해녀박물관까지 17.6㎞ 거리에 5-6시간 정도 걸린다.
▶제주올레 20코스에는 중간에 식당들이 많다. 월정리해변에는 여러 종류의 식당이 많다. 소박하고 특색있는 음식을 맛보려면 평대리에 있는 평대성게국수(064-783-2466)를 권하고 싶다. 식당주인이 앞바다에서 직접 채취한 성게와 소라로 만든 성게국수(8천원), 소라비빔국수(8천원)는 육지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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