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원형의 보고 '광주 사직동'] (11) 사직동의 인물 忠·藝·仁의 정신 ‘후대의 귀감’…지역 자산으로

2017년 07월 19일(수) 19:18

사랑의 식당으로 평생 소외된 이웃을 돌봤던 허상회 원장을 기리는 ‘분도와 안나’ 개미꽃동산. 전상의 장군 영정. 독립운동가 최한영 선생의 활동 모습.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최한영 선생. 나전칠기 명인 김기복 장인. 이준수 악기장. 관덕정에서 시위를 당기는 김석제 명인.

/구용기 사직문화보존시민모임 대표
광주 문화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사직동이 자랑스러운 것은 이 곳을 터전으로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인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흔적과 정신은 지역의 자산이 돼 오늘도 살아 숨쉬면서 후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광주의 3충신’…구동 출신 전상의 장군

1575년 구동에서 태어난 전상의 장군은 29세(1603)에 무과에 급제해 광해군 10년(1618) 임금의 호위와 대궐의 경비를 총괄하던 내금위 어모장군을 맡았다.

1879년 간행된 광주읍지의 충신전에 14인의 충절이 기록돼 있으며 이중 국가로부터 정려를 받은 의병장 고경명 장군, 김덕령 장군, 전상의 장군을 광주의 3충신이라 칭했다.

인조반정의 정치적 박해로 평안도 개천군수로 좌천됐지만, 정묘호란 때 후금의 3만 대군에 맞서 부족한 무기와 병력으로 안주성에서 5일간 전투했다. ‘전상의 장군 실기’에 “장군은 마지막 순간에 임금이 계시는 한양을 향해 갑옷을 단정히 고쳐 입고 4배를 올린 후 칼을 뽑아 목을 찔러 백상루 아래로 떨어져 자결했다. 오랑캐들도 서로 쳐다보고 놀라며 충신열사의 시체는 일반 병사와 함께 둘 수 없다 하고 백상루 앞에 묻어두고 표를 해 뒀다”라고 기록돼 있다. 인조 5년 1월21일 순국했으며, 2월7일 자헌대부 병조판서가 추증됐다. 그 해 7월26일, 그의 시신은 무등산 아래 평두산으로 모셔졌고 임금은 예조정랑을 파견해 예장으로 장례를 지낸 후 사패지 30리를 하사해 그 충절을 기렸다.


독립운동가 최한영 선생

1899년 5월15일 전남 광주군 부동방면 사직리(현 서동)에서 태어난 최한영 선생은 광주 근대역사의 세찬 풍랑 속에서 항상 시민들과 함께 했다. 공립광주보통학교(현 서석초)와 광주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도청에서도 근무했던 선생은 1916년 정상호·강석봉 등과 함께 신문잡지종정소를 운영하면서 윤독회(輪讀會)라는 독서모임을 했는데 ‘왜경’에 의해 독서회는 해산됐다. 이후 일제의 눈을 피해 삼합양조장을 만들어 주색에 빠진 젊은이들로 위장하고 청년운동을 했다. 그는 동경 2·8독립선언 직후 귀국한 정광호에게 당시 상황과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아, 서동 자택에서 수천부를 인쇄했다. 3월10일 오후 3시 광주천 부동교 아래 작은장에서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광주농업학교 학생들과 시민 천여 명은 최한영 등이 준비한 독립선언문등으로 독립만세 시위를 벌였다. 경찰서 앞에서 왜경에게 체포돼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 받고 옥살이를 했지만 이후 광주에서는 큰 장과 작은 장을 오가며 1달 넘게 만세운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1921년 석방된 후 3·1운동 주역들이 창립한 광주청년회에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이후에도 신간회 등 많은 청년, 사회단체에 참여했다. 해방 직후 국기열, 장재성 등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 1977년 독립운동의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서예가로도 유명해서 단아한 필체는 선비의 올곧음을 느끼게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허백련, 심상엽 등과 함께 1938년 연진회를 창립했으며, 유네스코 백일장 서예 부분 심사위원장을 역임했다. 국궁에도 조예가 깊어 관덕정의 사두를 역임했다.

1980년 5·18민중항쟁 때는 무고한 청년학생들의 희생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어 5월23일 도청에서 수습대책위원장을 맡아 무기 회수와 질서유지 등 유혈사태 수습을 위해 노력했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고, 8월6일 91세로 구동 자택에서 별세해 장례는 광주시민장으로 했으며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사직동을 한 번도 떠나지 않았지만 사직동에서 그에 대한 흔적을 찾기도 힘들다. 후손들과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은 선생의 작은 기념관이라도 만들어지기를 염원하고 있다.


판소리·전통춤 명인 안채봉 명창

어려서부터 사동과 서동에 살았던 안채봉 명창은 열네 살 때 남동에 있던 광주 권번에서 박동실 명창에게 소리를, 박영구 선생으로부터 전통춤을 배워 오태석, 정남희, 조상선, 신숙, 박귀희 등과 함께 광주 국극사에서 남도소리를 계승했다.

오척 단구의 몸으로 변화무쌍하고 경쾌한 소고춤으로 많은 사람들을 웃기고 울렸다. 1988년에는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6호(판소리 서편제)로 지정됐으며 그 후 광주시립국악원과 광주예술고에서 소리와 춤을 가르쳤다.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 권하경 선생,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 이수자 김대규 선생, 광주시 무형문화재(가야금병창) 문명자 선생, 고농선 명창 등이 안채봉 명창에게 사사를 받았다.


건칠공예의 명인 김기복 장인

1940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김기복 장인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 3년 과정의 나전칠기 공예기술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학교를 졸업 후 광주의 대한공예사로 와서, 60년 세월을 광주에서 나전칠기 작품 활동을 하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나전칠기는 목재에 조개껍칠등으로 만든 자개를 이용해 장식을 하는 기법이다. 1980년대부터 삼베에 수십 차례 옻칠을 해 만든 건칠방법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건칠은 가벼우면서도 단단해 수십 년이 흘러도 변형이 없고 원형 그대로 보존되는 특징이 있다. 2010년 광주시 무형문화재 20호로 선정돼 고령의 나이지만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최근에 건강악화로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있다.


소리인생 반백년 방성춘 명창

사직동에서 반백년을 살아온 방성춘 명창은 열세 살에 박채선 명창에게 소리공부를 시작해, 공대일, 정광수, 오정숙 명창에게 사사를 받았다.

1988년 5월21일, 남도예술회관에서 최초로 6시간에 걸쳐 춘향가를 완창 발표했으며, 1991년 6월에 국립중앙극장에서 5시간에 걸쳐 심청가를 완창했고, 그 해 11월에 남도예술회관에서 심청가를 다시 완창 발표했다. 또 2004년 10월 세계소리축제에서 3시간동안 수궁가를 완창한데 이어 2007년 60세의 나이로 적벽가를 완창했다. 2000년 5월 광주시 무형문화재 16호 동초제 춘향가 보유자가 됐다.


‘국악기 지킴이’ 이준수 악기장

대성초 건너편에서 30년 동안 국악기를 만들어 오고 있는 이준수 악기장은 광주시 무형문화재 12호이다.

이준수 선생의 가야금은 목재구입에서 건조, 제작등 작품 하나하나에 혼신을 기울여 만들다 보니 모든 명인들이 갖고 싶어 하는 명기다.

국악기제작은 너무 힘들고 어려운 일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선생으로부터 전수를 받았으나 지금까지 국악기를 만들고 있는 제자는 둘뿐이다. 국악이 홀대받던 시절 끼니걱정을 하면서도 한눈 팔지 않고 외길을 걸어온 선생은 국악기 전수관을 만들어 국악의 본 고장 예향광주 위상을 지키고자 오늘도 묵묵히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활을 만드는 김석제 명인

사직공원에 있는 전통 활터인 관덕정에서 오랜 세월 활을 만들며 국궁의 외길을 걷는 김석제 명인은 관덕정의 고문으로 54년의 활 경력을 가진 명궁(국궁8단)이다. 집안이 4대째 활을 쏘는 국궁명가로도 유명하다. 김석제 고문의 조부(김양근)는 나주 인덕정의 2대 사부를 역임했으며 김석제 명인도 관덕정 사두를 역임했다. 지금도 매일 관덕정 사대에서 국궁활성화를 위한 일념으로 과녁을 겨냥한 시위를 당기고 있다.


나무의 거름이 된 허상회 원장

사직동 KBC방송국 뒤편에는 ‘분도와 안나 개미꽃동산’이 있다.

이곳은 소외받는 이웃을 위해 전 재산을 출연한 허상회·김옥자 부부가 어르신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사랑의 식당이다. 2016년 7월, 81세의 나이로 별세한 허상회 원장은 폐기종 말기진단을 받아 시한부상태에서도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봉사활동을 하며 생을 마감했다.

허상회 원장은 생전에 유언장을 만들어 본인이 사망시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유언을 했으며, 자녀가 생기면 욕심이 생긴다는 신념에 슬하에 자식 한 명을 두지 않았다.

“살아서는 사람의 거름, 죽어서는 나무의 거름이 되겠다”는 신조대로 화장 후 수목장으로 자신의 신념인 나눔의 삶을 마지막까지 실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