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자조의 지방정치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ssnam48@kjdaily.com

2017년 07월 26일(수) 19:28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는 1961년 5·16쿠테타로 폐지된지 30년만에 1991년 부활됐다. 이때 모든 지방의원들은 부활된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부여하며 무보수 명예직으로 주민들에게 봉사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그러다가 1996년 법 개정으로 무보수 규정이 삭제되면서 지방의원들에게 의정비 명목의 보수가 주어졌다. 올해 경우, 대략 광역의원에게는 5천만원, 기초의원에게는 4천만원 정도 연봉이 주어졌다. 각종 수당이나 해마다 이뤄지는 해외시찰 등 지방의원에게 직접 들어가는 부대비용도 상당하다. 애초 지역을 위해 무보수로 일하는 걸 명예로 알겠다던 지방의원들이 20년후 고액 연봉의 권력기관으로 탈바꿈하였다.

그러나 그에 맞는 역할을 다하고 있나. 광주·전남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50%를 겨우 넘길 정도이거나 파산직전, 몇몇 지자체는 자체 수입으로 공무원 봉급을 줄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고액 연봉의 지방의원들이 연봉만큼의 일을 해내고 있느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권력이 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권력의 칼을 휘두르다 어느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례가 많아 지역민에게 봉사하기 보다는 스트레스의 주범이 되기도 한다. 최근 3년간 광주전남 자치단체장의 비리나 선거 출마 후보의 선거법 위반 등으로 치러진 재·보궐 선거비용이 67억여원이나 된다. 광주·전남 지역도 자치단체장, 도의원, 기초의원 등이 비리로 연루돼 현재 구속 및 수사 중이거나,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민선6기 들어 광주·전남 재보궐선거 집행액은 2014년 7억6000만원, 33억, 2015년 6억9000만원, 8억7000만원, 2016년 6억7000만원, 1억6000만원이다. 선출직 공직자의 공직선거법 위반 및 불법행위 등으로 인한 재·보궐선거가 관례처럼 되풀이 되면서 주민들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막대한 세금이 재·보궐선거 비용으로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선거법 위반 뿐 아니라 부정·비리, 혼탁 양상도 끊이질 않고 있다. 지역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자치단체장과 집행부를 견제하고 감시·감독해야 할 지방의회 의원들의 비뚤어진 행태는 도를 넘고 있다.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위원들과 법인카드로 수십만원대 식사를 한 것도 모자라 이른바 ‘카드깡’으로 만든 현금을 일부 불참석 위원들에게 되돌려줘 경찰 수사를 받는가하면, 건축 과정에서 허위로 서류를 꾸며 공사비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보조금을 받아 챙긴 사례도 있다. 취직을 시켜준다며 이권에 개입하고 막장수준의 감투싸움으로 고소고발이 끊이지 않는다.

외유도 비난 받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인 지방의회가 부활한지 26년째를 맞지만 의원들의 ‘외유(外遊)성 해외연수 논란’은 단골 메뉴다. 최근 충북도의회 의원들이 충북지역 사상 최악의 수해가 난 상황에서 관광 일정으로 채워진 외유를 떠나 물의를 빚고도 그 행태를 지적한 언론과 국민 탓을 해 공분을 산 바 있다. 여기저기서 지방의회 해외연수 시스템을 전면 개조해 근본적인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연수가 아닌 여행으로 시민들의 혈세를 낭비했다면, 예산을 반납하게 하는 등 사후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내년에 또 다시 지방선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제가 본격 실시된 지도 거의 30년이 되어가는 만큼, 지방정부·지방의회의 위상과 역할, 지방정부 수장·지방의회 의원의 자질검증에 대해 각 정당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누구보다도 모범이 돼야하고 양심과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지역사회에 봉사해야할 지방의원이나 지자체장이 끊임없이 비리나 추태를 보이는 것은 아직도 우리의 자치개념이 완전히 정착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우리사회가 주민을 위한 사회로 발전하려면 먼저 지역을 대표해서 지역살림을 꾸려가는 지방의원들의 자질부터 확고하게 정립돼야 하고 지방자치의 기본정신이 올바르게 뿌리를 내려야 한다.

서구에서는 아직도 무보수 의원들로 지방자치를 해나가는 곳이 많다. 일본에서는 연 340엔의 고정 보수 대신 회의에 참석하는 날만 3만엔의 수당을 주는 제도로 바꿔 관련 예산을 절반 이상 절감한 지방자치단체도 있다. 재정압박을 받던 나고야 시장은 시의회 반대를 시민들의 힘으로 물리치고 시의원 정수를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 시의회를 해산시키는 혁명을 단행하기도 했다.

지금처럼 지방선출직 지자체장·지방의원들의 부적절한 비리가 계속 나오면 우리 주민들도 분노와 자조의 지방자치 현실을 재고할지 모른다. 오죽했으면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기초의회 폐지가 가장 큰 화두였겠는가. 가장 빠른 개선은 지방정치인 스스로가 반성과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검열을 해봐야 한다. 지방자치제 부활때의 무보수정신을 잊고 있지 않은지, 고액 연봉과 예우를 받을 만큼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문재인정부가 최근 국정운영5개년 계획을 밝히면서 4대혁신과제의 하나로 내세운 것이 ‘자치분권’이다. 국가의 고른 발전, 풀뿌리 민주주의정착을 위해 지방분권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지방정치를 운영하는 지자체장과 지방의원들의 자질이 지역민의 공분을 살 정도로 엉망이라면, 대통령과 정부가 아무리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에 힘을 실어주어도 지방분권에 걸 맞는 의미있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고비용 저효율 지방정치는 구조조정 되어야 한다. ‘적폐’라는 말을 듣기 전에 가뭄보다 심하게 타들어가는 주민들의 원성을 잘 듣기 바란다. /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