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모악산 마실길 김제구간 2코스

만물 잉태한 흙의 부드러움…각종 종교시설 터전으로

2017년 08월 01일(화) 18:52
모악산 품에 안긴 금산사는 녹색 연못에 핀 거대한 연꽃 같다.
전북 김제와 전주, 완주에 걸쳐 있는 모악산은 이름 그대로 어머니 같은 산이다. 산의 생김새도 어머니처럼 부드러울뿐더러 뭇 생명을 잉태하는 산이다. 생명을 창조하는 모악산의 어머니 같은 기운은 인간을 구원하려는 종교시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터전이 됐다. 금산사와 귀신사 같은 사찰은 물론 오래 된 교회와 성당, 원불교 교당들이 모악산 자락에 터를 잡았다. 민족종교인 증산교의 교주 강증산이 득도해 증산교를 창시한 곳도 금산사 아래 구리골이다. 나는 모악산을 찾을 때마다 영적구원을 받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모악산 기운을 따라 산자락을 한 바퀴 도는 길이 ‘모악산 마실길’이다. 모악산 마실길 김제구간 2코스 출발지점인 금산사주차장에 도착하니 여름철이라 주차장은 한산하다. 주차장 건너편 능선을 따라 오르기 시작한다. 이 길은 금산사를 거치지 않고 능선길을 따라 모악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금산사주차장에서 능선으로 오르는 길, 산길을 걷다보니 자연스럽게 산과 하나가 된다.
무더운 여름 날씨지만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초등학교 1학년과 3학년 아이도 엄마, 아빠와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산을 오른다. 저 아이들을 보니 지금은 둘 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우리 두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산에 데리고 다녔던 기억이 떠오른다.

산길은 울창한 숲길이어서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고, 나무가 품어내는 시원한 기운이 더위를 식혀준다. 산길을 걷다보니 자연스럽게 산과 하나가 된다. 인간만큼 적응력이 뛰어난 동물도 드물 것이다. 복잡한 세상에서 부딪치며 살다가도 자연 속에 들어오면 금방 자연에 동화되니 말이다.

고도가 조금씩 높아지면서 나무 사이로 지붕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금산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금산사는 요람 속 아기처럼 모악산의 품안에 포근하게 둥지를 틀고 있다.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산세를 형성하고 있는 모악산은 동쪽에 대원사와 수왕사를, 서쪽에 금산사·청룡사·귀신사를 품고 있다.

이곳 조망처에서는 모악산 정상과 금산사, 청룡사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모악산 품에 안긴 금산사는 녹색 연못에 핀 거대한 연꽃 같다.

금산사는 전북의 최대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다. 유서깊은 사찰답게 금산사는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국보 제62호 금산사 미륵전을 비롯해 금산사 노주 등 11점의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17세기 경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귀신사 대적광전(보물 제826호).
흙을 밟으며 걷는 길은 한없이 부드럽다. 흙의 부드러움은 만물을 잉태하는 터전이 된다. 흙에 뿌리내린 나무와 풀들은 흙이 비바람에 씻겨가는 것을 막아주는 보호막이 돼준다. 흙은 식물을 키우고, 성장한 식물은 흙을 보호한다. 흙을 밟고 걷다보면 어머니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도 흙의 부드러운 속성 때문이다.

조그마한 도통사라는 절 입구를 지나 100m 정도 오르면 모악산 정상으로 가는 길과 백운동마을을 거쳐 귀신사로 가는 길이 갈린다. 모악산 마실길은 여기에서 백운동마을 방향으로 이어진다. 임도로 접어들어 잠시 걸으니 백운동마을이 나타난다.

백운동마을은 해발 300m 가까운 산비탈에 자리잡은 옛 마을로 지금은 대부분이 떠나고 여섯 집만 살고 있다.

백운동이라는 명칭은 이 마을이 높은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어 항상 흰 구름에 둘러싸여 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백운동 주민들은 1960년대부터 산비탈 밭에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쳐서 소득을 올렸다. 그러나 양잠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어 이제는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따서 수익을 올린다. 50년 생 오디나무가 산비탈 밭을 푸르게 장식하고 있다.

마을 뒤에 자리를 잡은 귀신사는 속세와 동떨어진 사찰이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하는 사찰이다.
귀신사 입구에는 홀어미다리가 있는데, 여기에 얽힌 사연이 눈물겹다. 귀신사 홀어미다리의 주인공은 남편을 일찍 보내고 홀로 어린 남매를 키운 여인이다. 여인은 늘그막에 건넛마을에 사는 홀아비를 만나 정을 나눴다. 밤마다 사라지는 어머니가 이상해 뒤를 밟던 아들은 어머니가 홀아비를 만나러 오가는 길에 개울물에 옷이 젖는 것을 보고, 남몰래 다리를 놨다. 훗날 이 사실을 알게 된 동네 사람들은 아들의 효심을 칭찬하며 홀어미다리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귀신사는 처음 듣는 순간 귀신을 연상하는데, 한자로 읽으면 ‘믿음으로 돌아가라’는 뜻을 가진 귀신사(歸信寺)다. 부처에 귀의했던 초심을 유지하며 살라는 뜻이리라.

민가와 동떨어진 산속에 자리를 잡은 산사와 달리 귀신사는 마을과 함께하고 있다. 그래서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고 언제든 찾아가면 기쁨과 슬픔을 함께해줄 것 같다.

마을을 지나 귀신사로 들어서는데 일주문을 대신해서 느티나무가 중생들을 맞이한다. 정갈하게 쌓은 돌담은 승속을 구분하는 형식적 경계선일 뿐 사찰로 들어서는데 부담이 없다. 돌계단을 따라 올라서니 곧바로 법당인 대적광전과 여러 당우들이 나타난다.

귀신사 마당에 들어서니 비구니 사찰답게 경내가 정갈하게 가꿔져 있다. 부드러운 주변 산세와 어울리게 대적광전을 비롯한 주요 당우들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귀신사는 금산사의 말사다. 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이 창건해 국신사(國信寺)라 했으며, 국신사(國神寺)로 표기하기도 했다.

17세기 경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대적광전(보물 제826호)은 부처의 광명이 어디에나 두루 비치게 한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다. 적광전에는 소조비로자나삼존불상(보물 제1516호)이 모셔져 있다. 불상은 흙으로 조성한 소조불로 기법이 뛰어나다.

대적광전 뒤쪽에 명부전, 영산전 등이 자리를 잡고 있고, 명부전 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삼층석탑이 의젓하게 서 있다. 귀신사 삼층석탑은 높이 4.5m에 이르는 석탑으로, 귀신사의 창건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층석탑 앞에는 귀신사 석수가 있다.

석수는 사자상으로 머리를 치켜들고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조각이 매우 사실적이다. 사자 등 위에 구멍을 파고 대나무마디 모양의 돌기둥을 세웠으며, 그 위에 다시 40m 높이의 남근석을 세워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사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경우다.

삼층석탑과 석수가 있는 이곳에서는 귀신사의 당우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사찰 아래로는 청도리 마을과 농경지들이 평화롭다. 속세와 동떨어진 사찰이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하는 사찰로서의 면모가 그대로 보여준다.

모악산 마실길 김제구간 2코스를 걸으려면 아직도 먼데, 일행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한여름 날씨에 더 이상 걷고 싶지 않은 눈치다. 귀신사에서 오늘 일정을 마치기로 한다. 뙤약볕에 푹푹 찌는 날씨가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한 셈이다.


※여행쪽지

▶모악산 마실길은 모악산 자락을 한 바퀴 도는 길로 김제구간 2개 코스, 전주구간 1개 코스, 완주구간 2개 코스로 이뤄져 있다. 김제구간 2코스는 금산사주차장→백운동마을→귀신사→싸리재→금평저수지→금산사주차장까지 13.3㎞ 거리에 4시간 정도 걸린다.
▶금산사주차장 근처에는 산채정식, 산채비빔밥을 하는 식당이 많다. 밥도둑게장마을(063-548-5288)의 꽃게탕, 꽃게무치, 꽃게장도 인기 있다. ‘아! 옛날’(063-542-0199)은 토종닭과 오리로 하는 요리(백숙, 주물럭)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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