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 무인도 시간 이돈배 시

2017년 08월 07일(월) 19:06

흙거미가 줄을 타고 내려와 길을 안내했다.
밤하늘 북두가 허문 지붕사이로 곰발자국을 찾고 있었다.

부스러기나무에 마른 연기가 무한 틈새로 가물거리고
따스해진 구들이 스르르 잠을 청해 왔다. 다리를 저는 두꺼비가 집에서 내려와
내일 그 시간 뱃머리 놓치면 열흘 후에 온다고 중얼거렸다.

대나무로 뒤얽힌 빗장을 열고 무더운 6월 6일에 겹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조금과 사리가 나란히 놓인 기둥 월력은 간조와 만조 시각을 새겨두고,
그날은 부모님 기일이었거나
물질을 나가 돌아오지 않은 지아비 생일이었거나
넋을 안고 뭍으로 나가는 별빛이 검은 바다를 춤추고 있었다.

밤새 벼랑에는 물소리가 경계를 허물고 지나갔다.
선초향기가 바람을 실어 절애의 혼돈을 일깨워주었다.

동트는 시간 멧새들이 깃털을 안겨주고, 거미들이 줄을 당겨 풍랑을 조심하라고 아침인사를 왔다.

어린 거미들에게 밤에는 외출을 삼가라고 당부했다.

<해설> 무인도 탐험을 소재로 동화 한편을 읽는 것처럼 묘사가 섬세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대부분의 시가 감정을 드러내거나 생각을 표출하는 주지주의 정서를 담고 있는데 반해 이 시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약력>공저시집 ‘이상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일신, 1994)로 작품 활동시작, 시집 ‘황새의 눈’,‘궁수가 쏘아내린 소금화살’ 등, 평론집 ‘자연의 음성과 사물의 감각화’ 등 서은문학상, ‘문학미디어’ 평론상, ‘한국문학비평학회’ 학술상(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