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원형의 보고 '광주 사직동'](15) 광주공원에 깃든 의로움 항일운동에 이어 4·19, 5·18까지…‘광주정신’ 발현지

2017년 09월 06일(수) 18:51

광주공원 충혼비.

오늘날 광주공원은 광주정신인 의로움이 함축된 장소다.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기 위한 의병의 본부가 있었고, 광주학생항일운동의 근원지였으며, 독재 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학생들의 함성이 잠들어 있는 곳이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광주 정신의 발현지이기 때문이다.

노성태 국제고 수석교사(역사)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남도에서는 노사 기정진의 손자이자 제자였던 송사 기우만(1846-1916)이 1896년 1월 장성에서 거병한다. 거병 직후 나주를 들른 기우만은 의진을 광주 향교로 옮긴다. 그가 광주 향교로 의진을 옮겼던 것은 광주가 갖는 지리적 이점과 충의의 고장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기우만 의진이 광주향교에 주둔하자 광주 향교 재임을 맡았던 박원영 등 다수가 이에 참여한다.

장성의 기삼연도 300여 의병을 이끌고 와 합류한다. 이 때 고종은 남로선유사 신기선을 파견해 해산을 종용하자, 기우만은 “고종의 해산조칙을 거절할 수 없다”고 하면서 해산하고 만다. 광주향교에 의진을 둔 남도 최초의 기우만 의병은 고종의 해산 조칙에 의해 해산됐지만, 일제를 몰아내겠다는 의지는 의로움의 실천이었다.

광주공원 충혼탑에서 5층 석탑 쪽으로 가는 오른쪽에 호남 제일의 의병장이었던 함평 출신 심남일 의병장을 기리는 ‘의병장 남일 심공 순절비’(義兵將南一沈公殉節碑)가 서 있다.

심남일 순절비.

의병장 심남일(1871-1910)의 본명은 수택이며 호남 제일의 의병장이라는 뜻을 담아 지은 ‘남일’은 호다. 남일은 어려서부터 담력이 크고 사서삼경에 능통했다.

성장해 서당 훈장과 향교의 전교를 지낸 전형적인 유생이었다. 기삼연의 호남창의회맹소가 해체되자 1908년 잔여 병력을 모아 대장이 된 후 함평을 근거지로 나주, 영암, 무안, 강진 등 전남 서남부 지역을 장악하며 일제 및 일제의 앞잡이를 응징했다. 1909년 9월부터 실시된 일제의 전라도 의병 격살 작전이었던 이른바 ‘남한폭도대토벌작전’ 때 체포 된 후 이듬해 대구감옥에서 순국한다.

함평 출신인 그의 순절비가 광주 공원에 세워진 연유가 감동이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돼 국가 유공자가 되자, 그 손부 되신 분이 꼬박꼬박 받은 연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은 후 광주향교로 가져온다. 이에 감동받은 유림들이 돈을 보탠다. 고향 함평을 바라보며 심남일 의병장 순절비가 광주공원에 세워진 이유다.

1907년, 의병에 처음 나서면서 지은 선생의 다음 시는 또 우리들의 가슴을 때린다.


“초야의 서생이 갑옷을 떨쳐입고/ 말을 타고 남도를 바람처럼 달리리/ 만약 왜놈을 소탕하지 못한다면/ 맹세코 모래밭에 죽어 돌아오지 않으리”


광주는 서울·마산과 더불어 4·19 혁명 전국 3대 발상지 중 하나다. 또한 광주는 4·19 혁명의 단초가 된 3·15 부정 선거에 대한 전국 최초의 항쟁지이기도 했다.

류동운 열사 순교비.

공원 운동장에서 계단을 올라 충혼탑으로 오르기 직전 왼쪽에는 광주 4·19혁명을 기리는 ‘4·19의거 영령 추모비’가 서 있고 그 건너편에는 4·19문화원이 있다. 이 영령 추모비는 의거 2주년이 되던 1962년 4월19일, 당시 목숨을 바친 이들을 추모하고 4·19혁명의 뜻을 잊지 않기 위해 세워진다. 맨 중앙에 4·19를 양각하고 우측에는 4·19혁명 당시의 시위 모습을, 좌측에는 조지훈의 다음 시를 새겼다.


“자유여 영원한 소망이여/ 피 흘리지 않곤 거둘 수 없는 고귀한 열매여/ 그 이름 부르기에 목마른 젊음이었기에/ 맨 가슴 총탄 앞에 헤치고 달려왔더이다/ 불의를 무찌르고 자유의 나무의 피거름되어/ 우리는 여기 누워 있다/ 잊지 말자, 사람들아/ 뜨거운 손을 잡고 맹세하던/ 아 그날 4월19일을”


대한민국 민주주의 토대를 마련한 4·19혁명은 1960년 3·15 부정선거가 원인이었다.

선거가 부정으로 얼룩지자, 금남로에서는 ‘곡(哭) 민주주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전국 최초의 3·15 부정선거 규탄시위가 전개된다. 동아일보는 당시 시간을 12시45분께로 옛 전남일보는 12시50분께로 쓰고 있다. 그리고 마산에서는 15시 30분 선거 무효를 선언한 후 시위가 시작된다.

이 날 광주 시위는 당시의 동아일보와 전남일보, 조선일보에 보도됐지만, 7시께 일어난 마산의 2차 시위 당시 경찰의 발포로 시위 학생들의 피해가 속출한 마산항쟁에 묻히고 만다.

광주공원 5·18 사적비.

1천여 군중이 합세한 광주의 3·15 민주주의 장송 시위는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해 선거 무효를 선언한 전국 최초의 시위였고, 장총의 개머리판으로 후두부를 맞아 금남로에 흘린 조계현의 피는 4·19 혁명의 첫 피였다.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흘린 피는 5·18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이후 민주, 인권의 광주정신이 된다.

또한 광주공원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훈련장이자 시민군 편성지였다. 5월21일 전남도청 앞에서 자행된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많은 사상자가 나오자 오후 4시께 자위수단으로 인근 시군 지역에서 총과 탄약을 가져와 시민군을 편성하고 사격 훈련을 실시한다. 그리고 지도부가 결성돼 24일 도청으로 통합될 때까지 시민회관을 본부로 삼고, 시내를 순찰하고 시민군 차량에 번호를 써서 등록하는 등 치안 업무를 맡는다. 공원 입구 계단을 오르다 해태상을 지나면 당시의 모습을 기리는 5·18사적지 표지석이 서 있다.

4·19의거 영령 추모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수많은 열사들이 민주주의에 제단에 몸을 바친다. 지금 어린이 헌장탑이 서 있는 곳 아래에 있던 신광교회 목사의 아들 류동운(당시 20세)도 그 중 한분이다. 마지막 도청을 향하면서 “나는 이 병든 역사를 위해 갑니다”란 일기를 남기고 5월27일 도청에서 숨을 거둔다. 지금 그곳에는 그를 기억하는 작은 비 하나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일제가 만든 광주 공원은 일제의 흔적만이 있는 곳은 아니다. 이제 일제가 만든 흔적은 사라지고, 대신 광주 정신을 잉태한 조형물들로 가득 차 있다.

충혼탑, 4·19의거 영령 추모비, 심남일의병장 순절비, 5·18사적지비 등이 그들이다.